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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실(2017-11-10 22:02:20, Hit : 543, Vote : 98
 십오야十五夜의 달빛 속에서

십오야十五夜의 달빛 속에서

                                   이현실


   휘영청 대보름 달빛이 통유리 창을 뚫고 실내로 밀려든다. 세상은 물밑처럼 조용하다. 남편은 지금 불콰한 얼굴로 한 조각의 화석을 베고 혼곤한 잠에 빠져 있다. 먼 백악기라도 헤매는지 숨결이 고르지 못하다. 나는 화석을 들여다보면서 천지창조의 카오스 속으로 빠진다.


하늘과 땅을 흔드는 거대한 굉음과 함께 시뻘건 용암의 불기둥이 치솟아 오른다. 세상은 아비규환으로 회오리친다. 암흑의 세상에서 들려오는 저 소리.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순간 사라진다. 어둠의 터널 깊은 곳에서 쿵쿵 지축을 흔들며 다가오는 소리. 흙모래 뒤집어쓴 무수한 빗살무늬의 잎맥들과 은빛 지느러미가 박혀있는 화석이 한꺼번에 진저리를 친다. 수억 년 시간의 풍화작용을 거치면서도 선명한 무늬로 굳어진 파편들. 가만히 귀를 기울여 그들의 노래를 듣고 있다.

   갑자기 끙! 소리를 내며 남편이 돌아눕는다. 그러면서 두 다리를 쪼그리고 둥글게 몸을 말은 모습이 자궁 속 태아의 형상으로 축소된다. 정수리 옆, 흘러내린 은빛 곱슬머리 몇 가닥이 봄 응달의 잔설처럼 부서지는 이순耳順의 남자. 그는 지금 망망한 우주의 어디쯤을 유영하고 있는 것일까. 근원을 알 수 없는 바람 한 줌이 내 마음속을 헤집고 들어온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숨결조차 가누기 어렵다는 열사의 땅, 아라비아 사막 어디를 헤매면서 화석이라도 줍고 있는 것일까?




  

  아파트 베란다 너머 교회당이 보인다. 십자가에 광배처럼 걸려 있는 보름달에 눈이 머문다.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언젠가 그가 들려주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중동지사 근무 시절, 캠프의 투명한 유리창 너머 낮은 야산이 보였어. 항아리만한 보름달이 둥실 솟아올랐지. 사방에는 굶주린 들개들이 긴 목을 빼고 달을 향해 컹컹 짖어대는 소리뿐이었어. 그런 밤이면 괜스레 잠을 설치면서 윗도리 안주머니에 깊게 넣어둔 가족사진을 꺼내어 손바닥으로 쓸어보곤 했어. 오늘처럼 이렇게 달 밝은 밤이면 그때 그곳이 무척이나 그립구먼. 언제 한 번 그곳을 다시 가 보고 싶어”


   흙먼지만 풀썩거리는 열사의 땅에는 늦은 봄부터 초여름까지 광막한 모래 폭풍이 분다고 했다. 거대한 모래바람이 산자락을 쓸고 지나가면 또 하나의 낯선 언덕이 만들어진다던 그곳. 석회질이 많아 한 모금의 물조차 제대로 마실 수 없다고 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랄 수 없을 것 같던 척박한 땅에도 짧은 우기가 스치듯 지나고 나면 키 작은 풀꽃들이 화사하니 꽃망울을 맺으며 자란다고 했다. 여덟 개의 발이 달린 전갈의 꼬리에는 맹독의 독침이 숨겨져 있어서 침대나 신발, 옷 속에 숨어 있던 놈들에게 느닷없이 당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이에 대비한 해독제는 상비약으로 비치되어 있어야 했다. 50⁰에 육박하는 한낮과는 달리 저녁이면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한국의 가을밤처럼 서늘했다. 낮은 모래언덕 위로 정물처럼 걸려 있는 달이 신비스럽도록 밝고 아름다웠다고 했다.



  

  어느 날 밤, 자신도 모르게 달빛에 끌려 차를 몰고 나섰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바위산, 사방은 온통 하얀 모래와 자갈로 뒤덮인 사구의 능선뿐이었다. 속도 제한의 표지판도, 차선도 없는 도로를 질주하던 중, 갑자기 핑그르르 도는 현기증과 함께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내 의식을 회복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인적 없이 낯선 도로의 한복판에서 핸들 위로 엎어져 있었단다. 귀신도 모르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승용차의 엔진이라도 꺼져버렸다면 달빛 교교한 사막의 미로에 갇힌 채 영영 화석으로 굳어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속에 서걱대는 모래 알갱이의 움직임이 느껴질 뿐, 사방은 절대 적막으로 괴괴했다. 그는 광막한 사막 위로 떨어진 한 알의 모래에 불과했단다. 극도의 외로움이 두려움과 함께 몰려왔다. 한 가정의 가장이거나 조직의 일원이 아닌 개체로서의 고독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습기 없이 해맑은 사막의 달빛이 서럽도록 곱게 눈에 부셔왔다.

‘죽음의 섬 저쪽에는 내 청춘의 무덤도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그의 서른 살 푸른 추억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 그곳에의 그리움이 이 밤의 달빛을 타고 그의 꿈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나이가 들면서 가끔 흔들리는 그의 눈빛을 본다. 살아온 여정의 회한이 문득문득 사무치면서 누구의 남편도 아버지도 아닌 오로지 혼자만의 자신이 되고 싶은 그의 외로움일까. 실패와 좌절로 거듭되는 삶의 피로감이 그 외로움의 원류일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로서는 그의 외로움의 근저에 동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 혼자만의 부담일 이치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오랜 날을 그와 나는 서로의 섬에 갇혀 살아왔다. 시퍼런 바닷물 한 가운데 떠있던 섬. 그와 함께 수많은 세월을 건너왔지만 그와 나는 서로 다른 섬이 되어 그렇게 떠 있었다.

한 갑자를 돌아가는 시간의 언덕에 기대어 그에게 말하고 싶다. 부부란 수직의 관계가 아닌 수평의 관계에서 마주 보며 가는 것이라고. 이제 서로의 고단한 어깨의 짐을 내려놓자고. 그를 향해 완강했던 마음의 철문을 조용히 열어두고 싶다




   지상의 달빛은 어느 곳에나 골고루 쏟아진다. 남편의 마음속에서 완강히 혼자가 되어 젖어드는 달, 그의 달빛 한 조각을 나눠서 갖고 싶다. 그가 베개처럼 괴고 있는 화석조각을 살그머니 빼낸다. 혼곤히 잠든 그의 머리를 내 무릎으로 괴면서 그의 은빛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그의 은발 위로 달빛이 부서져 내린다. 그는 여전히 깊은 잠결에 잠겨 있다. 아마도 아라비아 사막의 푸른 달빛을 꿈꾸고 있으리라. 마치 헤밍웨이의 노인이 밤마다 소싯적의 사자 떼를 꿈꾸듯.

청년들은 앞날에의 꿈으로 살고 노인들은 지난날의 회상으로 버틴다고 하던가. 젊은 날의 태양이 아닌 달빛에 젖은 그의 꿈결이 애처롭다. 그러면서도 그의 외로움에 한 치도 다가서지 못하는 내가 무색하고 미안하다. 단지 그의 꿈결 옆에서 달빛이나마 그와 함께 쏘일 밖엔…

   그는 이제 몇 시간 후면 꿈을 털고 일어날 것이다. 새벽 달빛을 밟으면서 자신의 일터로 나갈 것이다. 낮 동안 내내 태양 빛에 퇴색한 달의 음영을 찾으면서 땀방울도 마다치 않을 것이다. 그의 꿈길이 이대로 밤새 깊었으면 좋겠다.



hyunsilpen@hanmail.net





30년 만에 찾은 사진첩
호로고루 엉겅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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