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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2017-04-29 09:39:06, Hit : 1144, Vote : 112
 곱게 늙으셨네요

                            곱게 늙으셨네요
                                                                       이정희

  지난가을에 쌀을 비닐봉지에 넣어서 거실 끝에 놓았다. 모처럼 뻥튀기를 하려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나는 외출 시에 지참할 준비물을 잘 잊어버린다. 건망증인가보다. 그래서 나만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생각날 때 챙겨서 구두 신는 곳에 놓아두면 나갈 때 잊지 않는다. 작은 아들네에 가져갈 것도 매번 이런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노래교실 회원이 서리태 콩을 사라고 했다. 8kg에 8만원이란다. 나는 두 아들네에 나누어 주려고 8kg을 샀다. 작은 아들네는 주었는데, 큰 아들이 바빠서 한동안 내려오지 않아서 콩을 주지 못했다. 그런데 학습관에서 같이 공부하는 지인이 서리태 콩을 또 사라고 한다. 거절 못하는 나는 또 4kg을 샀다. 갑자기 콩 부자가 되었다. 손자와 손녀한테 검은 콩을 먹어야 할머니 같이 흰 머리가 안 생긴다고 했다. 나는 어릴 때 콩을 안 먹었으면서 손자와 손녀에게 콩을 먹이려고 별 방법을 다 쓰고 있다.
  콩을 소비해야 하는데, 밥할 때 쌀과 콩의 비율을 바꿀 수는 없고……. 제주도 산행 때 같은 방을 쓴 회원이 콩을 튀겨 먹으면 좋다고 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뻥튀기를 하는 집을 찾게 된 것이다. 예전에 뻥튀기 간판을 본 적이 있기에 금방 찾을 수가 있었다. 난 나름대로 적당량을 갖고 갔는데 양이 적으니 집에 가서 더 가져오라고 했다. 집이 멀다고 하니 그러면 다음에 오란다. 이런 낭패가…….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으니 근처 쌀가게에 가서 콩을 1kg을 사 오란다. 알려준 대로 쌀가게를 찾아서 검은 콩을 1kg을 샀다. 집에 콩이 많아서 콩을 소비하려고 뻥튀기를 하러 왔는데 또 콩을 샀다. 내가 조금만 영리했어도 이런 일은 없을 텐데……. 뻥튀기 집에는 먼저 온 사람들이 많아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강냉이와 쌀만 튀기는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무 말린 것, 둥굴레 말린 것, 버섯 말린 것들을 가져왔다. 땅콩도 있고 물론 서리태 콩도 있었다. 83세라는 할아버지는 아주 정정 하셨고, 할아버지의 며느리는 상냥하고 예뻤다.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아닌 친정아버지와 딸 같았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있는 나까지 동화되어 미소를 띠게 했다. 사람들은 할아버지께 튀길 것을 맡기고 다른 볼 일을 보러 갔다. 난 다른 볼일이 없어서 난로 옆에서 기다렸다. 오가는 사람들도 보고 그들이 하는 대화에 끼기도 하면서 지루함을 달랬다.
  할아버지가 나보고 “아주머니, 참 곱게 늙으셨네요.”하셨다. 그 소리가 쑥스럽고 조금은 부끄럽기도 했다. “고맙습니다!”하고 대답은 했는데,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보다 한참 위인 분이 “아주머니”라 하시니 어색해서다. 그분의 며느리도 나보고 예쁘다고 했다. 물론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속으로 ‘다음엔 쌀도 가지고 와야지.’했다. 며칠 후에 뻥튀기 집에 가려고 쌀을 비닐봉지에 담았다. 콩을 튀길 때 쌀은 얼마나 가져오면 되느냐고 물었었다. 분명히 2kg 가져오라고 했기에 체중계에 달아서 2kg을 가져갔다.
  그날따라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많았다. 뻥튀기 통속에 들어갈 재료들이 일렬로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이번에도 할아버지는 나에게 쌀을 적게 가져왔다고 하신다. 할아버지네 뻥튀기 기계는 통이 커서 어느 정도는 많이 넣어도 상관없다 했다. 나온 김에 뻥튀기 기계로 땅콩도 볶으려고, 시장에 가서 생 땅콩을 두 봉지 사왔다. 어느새 가게엔 할아버지의 며느리도 나와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또 난로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어떤 아주머니는 쌀을 정말 많이 가져왔다. 그 아주머니는 뻥튀기의 통이 큰 줄 알았나보다. 할아버지가 나보고 다음엔 쌀을 많이 가져오라고 하셨다.

  뻥튀기는 옛날엔 풍구를 손으로 돌렸는데, 지금은 아니다. 할아버지는 그냥 앉아계시기만 한다. 시간만 정확하게 재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 장날에 뻥튀기 아저씨가 오면 집집마다 쌀과 옥수수 말린 것을 가지고 나왔다. 그 옛날, 뻥튀기아저씨는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었다. 뻥튀기아저씨 근처엔 항상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아저씨가 풍구를 돌리던 손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서면, 우린 일제히 손으로 귀를 막았다. 이윽고 ‘펑'소리에 아이들은 우르르 검은 망 옆으로 다가갔다. 쌀은 몇 배로 부풀어서 큰 함지박을 가득 채웠다. 어릴 때의 추억도 즐기고 또 예쁘다는 소리를 또 듣기위해서라도, 이곳에 자주 들려야 될 것 같다. 뻥튀기에 무슨 재미라도 들린 것 같아서 혼자 웃었다.

  지난달에도 땅콩을 볶으러 또 뻥튀기가게를 찾았다. 꼭 1년만이다. 며느리는 안 보이고 할아버지 혼자 뻥튀기 기계를 돌리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놀러 오신 친구와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할아버지께서 나를 보고 “참 곱게 늙으셨네요”하신다. 난 웃으며 “작년에도 나보고 곱게 늙었다고 똑같은 말씀하셨어요.”했다. 할아버지는 기억이 안 나신단다. 할아버지와 친구 분의 일상적인 대화마저 이곳에선 구수하게 들렸다. 할아버지가 볶아주신 땅콩을 두 아들네와 내 몫까지 셋으로 나누었다. 땅콩을 좋아하는 나는 며칠 만에 다 먹어버렸다.
  이번엔 쌀, 콩, 땅콩을 넉넉하게 챙겨서 뻥튀기 할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겼다. 정말 한 치 앞도 못 본다는 말이 실감났다. 주차하기가 어려운 곳이라서 뻥튀기 가게 근처의 세탁소 앞에 주차를 했다. 세탁소 주인아저씨께 뻥튀기 집에 다녀와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주인아저씨가 하는 말은 “뻥튀기 할아버지 돌아가셨어요.”한다. 나도 모르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요? 언제요?”했다. 덧붙여 “며칠 전에도 왔었는데요.”하고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돌아가신지 1주되었어요.”한다. 너무 어이가 없었다. 나 혼잣말로 “정정하셨는데….”하고는 되돌아섰다.
  어른들께 “밤새 안녕하셨느냐?”고 묻는 것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할아버지께서는 아주 건강하셨다. 내가 보기엔 앞으로도 10년은 더 사실 것 같았는데……. 준비해간 재료를 꺼내지도 못하고 그냥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난 쌀이나 강냉이 뻥튀기보다 볶은 땅콩을 좋아한다. 땅콩을 마트나 시장에서도 가끔 사먹지만 뻥튀기할아버지가 볶아주신 것이 훨씬 맛이 있었다.
  뻥튀기의 구수한 냄새는 옛 추억으로 돌려야하나. 아니면?
                                                                  2015년 11월


                              





















                               홍도화
                                                                       이정희     작년 4월20일(일요일) 워킹여행클럽에서 ‘금강 벼루길과 홍도화 축제’트레킹을 간다기에 신청했었다. 4월은 분명 모든 생명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서는 봄이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고 나무들은 새순을 돋우며 잔디는 새싹을 틔우는 계절이다. 4월의 푸근한 봄바람이 불고 있지만, 나의 메마른 마음은 매서운 칼바람을 받는 냥 추위에 떨고 있었다. 들과 산은 황량해 보였고, 내 몸은 한없이 땅 속으로 갈아 앉으려고 했다. 정말 참담했다. 눈을 감았다.
  일행 중 한 명이 “와~~홍도화다”했다. 나는 깜짝 놀라서 창밖을 보았다. 길 양쪽에 붉은 홍도화가 화려함을 뽐내고 서 있었다.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 홍도화를 가까이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다. 아니, 홍도화가 이렇게 예쁠 줄 몰랐었다. 겹꽃은 화려하고 풍성했으며 매혹적이었다. 거기다 홍도화의 붉은 색이 냉랭한 나의 마음에 뜨거운 불을 지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었다.

  금년 4월 25일(일요일), 홍도화(紅桃花)를 또 보려고 집을 나섰다. 작년에 아름다운 홍도화에 반했기 때문이다. 아니, 정신을 빼앗겼다는 표현이 맞다. 올 해도 어김없이 이른 봄부터 마음앓이를 하느라 매사에 의욕도 잃었고 희망까지도 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마음은 피폐했고 뼛속까지 추위를 느꼈다. 딸을 잃은 아픔과 기억이 해가 갈수록 희석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진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아픔을 안은 채 1년 만에 다시 충남 금산군 남일면의 홍도화 길을 찾았다. 홍도화의 아름다움과 뜨거움을 또 보고 싶고 느끼고 싶었다. 마침 ‘홍도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활짝 만개한 홍도화가 따뜻한 봄 날씨와 어우러져 축제장을 찾은 관광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역 농․특산물 판매, 민속놀이 경연, 홍도화길 꽃마차 여행, 먹을거리 장터 등이 부대행사로 운영되고 있었지만, 나는 오로지 꽃구경에 취해 있었다.
  우리들이 즐겨먹는 복숭아(peach)는 복숭아나무의 열매다. 거기에 비해 복사나무의 일종인 홍도화는 꽃을 보기위해서 관상용으로 개량된 것이다. 또 홍도화 열매는 술이나 엑기스로 이용되며 기관지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개 복숭아 비슷한 열매는 매실이나 살구 정도의 크기다. 속껍질 안의 열매는 도인(桃仁)이라 하며 약용으로 쓴다. 홍도화는 장미과의 낙엽소교목이며 전체 복사나무의 10%정도의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희귀한 품종이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봄의 전령사로 4~5월에 피며 꽃말은 ‘사랑의 노예’다.
  여기 홍도마을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홍도화를 주제로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남일면 신정리는 집단적으로 군락을 이루는 홍도화나무 때문에 홍도마을이 형성되었단다. 꽃잎이 장미처럼 겹겹이 둘러 싸여 있다고 해서 만첩홍도화나 남경화라고도 한다.
  봄의 서경(敍景)을 노래한 시가에는 흔히 복숭아꽃이 등장한다.
비올 땐 꽃이 피더니 바람 부니 꽃이 지누나
복사꽃 붉게 핀 날 며칠이나 볼 수 있을까
이 모두 복사꽃의 타고난 운명이니
바람이 무슨 죄며 비가 무슨 공 있으랴
  대동시선에 실린 이소(李芟)의 ‘도화(桃花)’다. 대동시선은 1918년 장지연(張志淵)이 편찬한 우리나라 역대 한시선집(漢詩選集)이다.
  우리의 인간사를 노래한 시(詩)다. 복사꽃이 바람에 떨어지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이치이니 꽃을 피게 한 비(雨)에게 찬사를 보내고, 꽃을 지게 한 바람(風)을 미워할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이 시(詩)는 내 맘을 알고 있다는 듯이 위로를 해준다. 모든 것은 운명이니 마음을 편하게 가져보라는 메시지(message)를 전하는 것 같다.
  
  내가 유독 홍도화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홍도화의 아름다움과에 싱그러운 향기에 취하기도 했지만, 안절부절 못하던 내 마음이 활짝 핀 꽃과 함께 갈아 앉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신기했다. 새싹이 나올 때가 되면 몸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할 정도로 춥고 아프다. 그 아픔은 꽃이 활짝 피면 제 자리를 찾는다. 홍도화는 겨우내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시련을 딛고 일어나 강인한 생명력으로 꽃을 피웠을 것이다. 홍도화의 예쁜 겉모습에 취하기보다는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홍도화를 닮아 좌절하지 않고 굳센 의지로 일어서야겠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홍도화다. 내년에도 홍도화 길을 걷고 싶다. 내년 봄엔 화려한 홍도화가 좀 더 일찍 피었으면 좋겠다. 아픈 내 마음이 빨리 갈아 앉도록…….                                                 2015년 4월

  
                                







                                  사랑초
                                                                        이정희
  베란다에는 사랑초 화분이 2개가 있다. 작년에 내가 쓴 수필‘사랑초’를 읽으신 J선생님께서 집에서 가꾸던 사랑초를 주셨다. 뿌리가 실한 것을 신촌 수필교실로 가져오셨는데, 그날따라 내가 결석을 했다. 일주일을 빈 강의실에서 외롭게 지냈을 사랑초에게 많이 미안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분에 정성스레 옮겼고 물도 듬뿍 주었지만, 많이 시든 상태라서 죽을까봐 내심 걱정이 되었다. 주신 분의 성의를 봐서라도 잘 키우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우리 집엔 사람(人)도 사랑(愛)도 부족해서, 사랑을 먹고 사는 사랑초가 자라기엔 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랬다. 작년까지 우리 집에 있는 사랑초가 생육이 좋지 않았다. 근근이 명을 이어가는 것 같아 내 마음이 아팠다. 딸을 잃은 슬픔이 고스란히 사랑초에게 전해진 것 같아서다.
  사랑초의 공식명칭은 옥살리스(oxalis)다. 사랑초는 옥살리스 가운데서도 보라색 잎의 품종만을 가리킨다. Oxalis는 그리스어로 ‘시다’라는 뜻인데 잎과 줄기를 깨물면 신맛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뱀처럼 독을 가진 동물이 신맛을 싫어하는 줄 알고 옥살리스를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데, 사랑초를 기르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실로 나에게는 큰 수확이다.

  나는 요즈음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아니,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크나큰 사랑을 보내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난 영원히 이런 날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사랑초가 이런 상황을 먼저 알고 신이 난 것 같다. 잎도 무성하고 꽃도 아주 예쁘게 핀다. 나를 보면 의미심장하게 윙크를 한다.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의 집에도 사랑초가 있다. 더 신기한 것은 거기에 있는 사랑초 잎은 어린이의 손바닥보다 더 크다. 우리 집에 있는 것과 비교가 안 된다. 아마 그 사람은 사랑을 줘도 아주 많이 주나보다. 반면에 사랑을 받아도 훨씬 많이 받는 게 아닌지.
  아주 작은 식물이라도 주인의 마음 따라 아주 크게 자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지난달에 혜민스님이 쓰신 베스트셀러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지인이 보내주었다. 책 내용은 우리가 흔히 놓치기 쉬운 아주 작은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꼭 집어서 알려준다. 그 중에서도 ‘내가 내 자신을 사랑하면, 다른 사람도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내용이 눈에 띄었다. 그동안 나는 희망을 잃고 덧없이 살았다고 해도 과언(過言)이 아니다. 항상 죄의식 속에서 웅크리고 살았으니까….
  어리석게도 내가 나를 사랑하기보다는, 사랑이라는 말 자체를 멀리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사랑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마음 속 깊이 못을 박아놓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돌아보고, 부족한 것은 채우고 지나친 것은 덜어내고 깎아내는 것이 아닐까?
  나를 보듬어주고 또 다듬었더니 마음이 저절로 열리는 걸 느꼈다. 두꺼운 얼음 속에 갇혀있던 내 마음이 살얼음으로 변하더니, 이제는 완전히 녹아서 예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정말 아름다운 꽃이다.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내가 웃고 있으니 우리 아이들이 더 좋아한다. 웃음에 관한 속담 중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이 있다. 난 그보다는 ‘웃으니까 행복하다’란 말을 전하고 싶다. 요즈음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보고 예쁘다고, 또 멋있다고 한다. 70이 코앞인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 그냥 웃어넘긴다. 그냥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사랑초는 잎과 꽃의 모습이 낮과 밤이 달라지는 것이 가장 흥미롭다. 햇빛이 비치면 꽃은 활짝 피고, 잎 또한 나비의 날개처럼 펼쳐져 있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되어 탱고를 추고 있다. 저녁의 사랑초는 꽃잎을 움츠리고 나비가 날개를 접듯 얌전하게 포갠다. 단잠에 빠져서 내일 늦게 일어날지도 모른단다. 미인은 잠꾸러기니까….
  어떤 이는 낮에 피는 사랑초는 마당에서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고, 저녁에 움츠린 꽃은 밤이 되어 밀려오는 졸음에 꾸벅꾸벅 조는 아이의 모습이라 표현했다. 이 얼마나 멋진 상상력인가.
  오늘도 날개를 접은 나비가 되어 수줍은 표정으로 나를 훔쳐본다. 그 사랑초가 너무나 고맙고 대견하여 얼굴을 가까이 대본다. 상큼한 향내가 나는 듯하다. 사랑초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아름다운 사랑을 하리라 다짐해본다. 사랑초를 기르기 전에는 난 그저 내 마음에 따라 꽃을 보았다. 어느 날은 아름답게 보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꽃이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고맙게도 우리 집 사랑초는 ‘당신을 버리지 않아요.’라는 꽃말과 같이 결코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대신 더 풍성하게 피어서 나를 기쁘게 해주고 친구가 되어 내 곁을 지켜주겠단다. 정말 다행이다. 그 사람 집에 있는 사랑초도 언젠가는 나에게 사랑의 윙크를 보내지 않을까.
  
  흔히 말하기를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초는 이런 나의 맘을 알고 나에게 힘내라고 응원의 나팔을 불어준다. 눈 감는 그 날까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으리라. 우리 집 사랑초 처럼….
                                                                   2015년 5월

                            봄인 줄 아나 봐
                                                                       이정희
  밀양 재약산 산행하는 날이다. 11월은 김장철이기도 하고, 친지들의 혼사(婚事)가 많은 달이다. 아산불교산악회는 매 달 45인승 버스 2대를 다 채우고도 항상 대기자가 있었다. 이름난 산이나 유명 사찰(寺刹)에 가는 달엔 버스 3대를 운행했다. 하지만 이번 달에는 회원님들이 많이 못 가신다고 했다. 2대를 예약했는데 미리 신청한 사람들도 갑자기 일이 생겨서 취소를 했단다.
  총무님이 얼마나 애를 쓰셨을까 생각하니 걱정도 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는 이렇게 편하게 가는데 회장님과 사무국장님, 그리고 총무님은 잠을 못 잤을 것 같다. 산행 때마다 매번 그랬듯이, 오늘도 반가운 얼굴이 있어서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도 여러 명 있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 우리들은 같은 회원이면서 법우(法友)다. ‘행복으로 가는 길’저자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자리에 존재한다고 했다. 나 역시 지금 이 순간 행복을 느끼고 있다.
  
  표충사 입구에서 사자평, 천황산 혹은 수미봉 올라가는 길은 5개가 있다. 오늘도 나는 A코스 대열에 섰다. A코스는 표충사 입구 매표에서 흑룡폭포, 층층폭포, 재약산, 매표소로 내려오는 코스로 4시간 걸린다고 했다. B코스는 부담 없이 어느 정도 올라가다가 원점 회귀하면 된다.
  올 여름, 백두산에 같이 갔던 작은 아들은 엄마를 걱정하며 100% 힘을 쓰지 말고 60~70%만 이용(?)하라고 신신당부 했었다. 산행 중에 일어난 각종 사건과 사고 소식을 뉴스를 통해 알기도 했지만, 엄마의 안전을 생각해서다. 작은 아들이 고마워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은 했다. 하지만 습관대로 A코스 대열에 끼고 말았다.
  재약산은 능선이 없이 마냥 올라가는 코스였다. 오르막길이라 숨이 차서 빨리 걸을 수가 없다. 나는 걸음을 재촉하는 대신에 숨을 고르며, 뒤도 돌아보고 멋진 경치에 감탄하면서 천천히 걸었다. 잠시 쉬는 동안에 준비해간 간식도 나누어 먹고, 회원들과 사진도 찍었다. 여유 있게 주변을 살피며, 혼자 사색(?)도 하는 호강을 누렸다.
  맑은 하늘빛같이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서인지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낭떠러지의 깊은 골짜기에 고운 단풍과 멀리 평화롭게 보이는 마을을 보면서 탄성도 질렀다. 산은 고운 물감을 뿌린 듯 예쁘게 채색되어있다. 한 폭의 멋진 명화(名畵)다. 나는 철따라 개성 있게 변하는 산야의 아름다움에 반했고, 따라서 나라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만 갔다.
  
  등산로 주변엔 키가 큰 진달래나무가 많이 있다. 꽃 몽우리가 보이기에 “진달래가 봄인 줄 착각하고 있나”하고 나 혼자 속으로 말했다. 말하고 나서 고개를 들었더니 앞의 나무에 진달래꽃 한 송이가 활짝 피어있었다. “어머나, 진달래꽃이 피었어!”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질렀다. 회원들이 폰에 진달래꽃을 담았다. 한 송이의 진달래꽃은 의기양양한 표정이다. 아니! 진달래꽃은 지금이 봄이고, 봄에 꽃이 피는 것은 당연한데 ‘왜 놀라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진달래에게 무어라고 설명해야 하나. 아직 11월이니 더 잠을 자도 된다고 말해줘야 하는데….
  4월에 피는 진달래꽃을 겨울의 문턱에서 만난 것도 예사로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문득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Everything happens for a reason)'
는 힐링(healing)의 한 줄이 생각난다. 4월에 피어야할 진달래꽃이 11월에 핀 이유가 궁금했다. 날씨 탓인가, 아니면 봄날을 기다리는 간절한 열망, 그 때문인가. 일단은 마음속에 접어두었다.

  주차장 식당에 점심을 예약했기 때문에 시간을 맞추어 하산해야한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아쉬움을 접어야 했다. 단체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을 잘 지켜야한다. 조금 내려오니까 계곡에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린다. 한 겨울을 눈 속에 파묻혀서 얼음으로 지내다가 봄날의 따뜻한 온기를 받아 녹은 물이 흐르는 것 같다. 착각이 아닌 꼭 봄날을 보는 것 같다. 어제 내린 비로 등산로의 낙엽도 땅도 젖어있다. 낙엽과 땅도 마찬가지로 눈이 녹아서 젖어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모든 것이 봄에 맞추어져 있다. 내 맘까지 봄이다. 진달래가 봄인 줄 알고 피었고, 계곡의 물이 얼음(氷)과 눈(雪)에서 벗어났으니 나도 당연히 봄을 즐겨야할 것 같다. 나만 봄이라 착각하는 건 아니었다. 뒤따라오는 회원들도 옆 사람에게 “꼭 봄인 것 같아요”하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생각을 해봤다. 재약산의 진달래와 계곡의 물, 등산로의 낙엽과 땅이 산행하는 모든 이에게 즐거움을 주기위해서 나름대로 각본을 짠 건 아닌지…. 봄은 희망이다. 특히 나에게 희망을 주려고 오늘 하루, 봄을 연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희망을 보았으니 행복까지 나를 감싸준다. 아까의 궁금증이 풀린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11월을 시월과 십이월에 낀 의붓자식 같은 달이라고 한다. 내 마음도 가을과 겨울 문턱에서 땅 속으로 깊이 갈아 앉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 울적한 마음을 밖으로 표출하지 않고 가슴속에 간직만 했다. 11월을 어느 작가는 괄호나 부록 같고 본문의 각주 같은 달이요, 산과 강에 깊게 쇄골이 드러나는 달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11월은 땅거미가 가장 잘 어울리는 달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11월을 희망이 가득 찬 달이라고 말하고 싶다. 진달래와 계곡의 물과 낙엽도, 땅도 희망을 노래하고 있지 않은가. 나 또한 우울했던 마음을 훌훌 털어버리고, 환희(歡喜)에 찬 새 봄을 간절히 열망하고 있으니….
                                                                 2015년 11월







호로고루 엉겅퀴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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