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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희정(2016-12-03 23:28:41, Hit : 1071, Vote : 131
 수필 몇 편

수국과 불두화
우희정
수국이 맑은 청빛으로 송이송이 꽃을 피웠다. 어림잡아 스무 송이 남짓한 꽃이 아침 햇살을 받아 영롱하다. 3년 전 평창에서 분양받아 올 때만 해도 젓가락만한 가지였는데 기특하게도 자리를 잘 잡아주었다. 제 고향의 기름진 땅과 신선한 공기를 떠나 비좁은 화분과 매연 그득한 도심에 강제로 이주 시켰건만 타박하지 않고 오로지 제 본분에 충실한 모습이다.
그 옆에도 경쟁이나 하듯 수국 몇 분이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꽃을 피웠다. 짙은 청빛, 연분홍빛, 붉은빛으로 제각각의 빛깔을 지닌 채 뽐내고 있다. 보면 볼수록 탐스런 송아리의 매력에 끌려든다.
어느 해 늦은 봄날이었다. 도처에서 꽃향기가 손짓을 하니 그냥 집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하여 횡성 깊은 골에 자리한 풍수원성당을 찾아 나섰다. 2백여 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성당의 빨간 벽돌은 먼빛으로도 고색창연하였다. 아담한 성당을 얌전히 받쳐든 듯한 언덕을 오르자 느티나무 한 그루가 다소곳이 반기고, 담장을 대신한 수국이 환히 불을 밝혔다.
언제 꽃방석에 앉아 볼런가. 잠시 가쁜 숨도 식힐 겸 지는 꽃이 소보록이 쌓인 곳에 염치 불구하고 앉으니 호사하는 김에 더 즐기라는 듯 머리 위로 꽃잎이 함박눈처럼 폴폴 흩날렸다. 하얀 공처럼 둥글게 보이는 꽃은 눈여겨보니 별을 닮은 수십 개의 알갱이가 모여서 하나의 송이를 이루었다. 서로 다닥다닥 붙어 의지하며 겨운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한데 이런 무식의 소치가 어디 있나. 지나가던 분이 수국이 아니고 ‘불두화’라 했다.
알고 보니 불두화는 외로운 꽃이었다. 꽃의 기능을 상실한, 날 때부터 불임은 그에게 주어진 천명이란다. 꽃과 곤충의 세계는 오묘하다. 제 스스로는 한 발짝도 뗄 수 없는 식물은 대부분 아름다운 자태에다 향기를 풍기고 꿀을 만들어 벌과 나비를 꾀어 수정이란 단계를 거친다. 더러는 속고 속이는 게임을 하듯 치열하고 어떤 경우에는 꽃 한 송이가 수술의 몸으로 태어나 암술로 마감하는 성전환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무슨 운명의 조화인가. 암술도, 수술도 갖지 못하고 헛꽃만 잔뜩 피운다니. 아예 꿀샘조차 만들 수 없어 벌과 나비로부터 외면당하는 꽃, 꽃으로 태어나 이보다 더 수치스러울 수 없다.
하지만 절망의 뒤편에는 반드시 희망이 있듯이 그에게도 한 가지 위로 삼을 것이 있다. 꽃의 생김새가 마치 부처님의 머리모양을 닮았다 하여 ‘불두화(佛頭花)’란 이름을 얻었다. 뿐만 아니다. 절마당에 자리잡고 마음껏 모양새를 뽐내며 스님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는다. 씨를 맺을 수 없지만 나름의 자구책으로 땅에만 닿으면 자신의 분신을 퍼트리는 그를 보면서 수도자들도 자연의 섭리를 깨우치는 것이리라.
하여튼 나는 그날 이후 수국과 불두화를 확실하게 분간하게 되었다. 작약은 풀이요, 모란은 나무이듯이 깻잎과 흡사한 이파리를 가졌으면 수국이요, 덩굴처럼 엉겨 무더기 무더기 겹도록 꽃을 피우면 불두화임을…. 그래도 나는 고집스레 수국과 불두화를 항상 함께 묶어서 생각한다.
나는 또한 청빛 수국을 처음 만난 날의 설렘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이국땅이어서 더 그랬을까. 아니면 동행의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일본의 작은 도시에서 초연하게 보슬비에 젖은 수국과 맞닥뜨리곤 이심전심 그 자리에 붙박인 듯 오래 서 있었다. 첫사랑을 가슴에 담았던 그때처럼 멀미기가 도지며 속이 울렁거렸다. 하얀 송이 불두화를 수국이라 여겼던 내게 그날 처음 본 청빛 수국은 또 하나의 아련함이었다.
한데 불두화의 꽃말이 ‘은혜와 베풂’인 반면 수국은 토양에 따라 꽃의 색깔이 변한다 하여 ‘변덕’이란다. 토양이 중성이면 흰색, 산성이면 청색, 알칼리성이면 분홍색으로 변하기에 변덕이라고 폄훼했지만 돌려 생각하면 몹시 순수하기 때문일 것 같다. 하얀 한지 위에 물감 한 방울을 떨어트리면 선명하게 배어들 듯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를 나는 높이 사고 싶다. 아니다, 관용(포용)일 수도 있겠다. 잘잘못은 아랑곳없이 큰 목소리만이 무성한 이 시대에 자기를 내세우기보다는 상대의 뜻을 너그러이 품을 수 있는 관용. 그래서 우리집 수국의 꽃말은 ‘순수와 관용’이다.
요즘의 내 작은 소망은 마당이 있는 집에서 수국과 불두화를 풍성히 키워보고 싶다. 마당 한켠에 만개한 수국과 불두화를 바라보면서 고운 문우들과 시 한 수씩 낭송한다면 이보다 더한 호사가 어디 있으랴.
나는 지금 꿈만으로도 몽롱하다.  


비파를 그리며
우희정
간절한 소원이 어느 날 기적처럼 이뤄졌다.
손바닥만큼이라도 좋으니 내 땅을 갖고 싶었다. 더도 덜도 말고 두어 평 정도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그 땅에 과실나무 한 그루를 심고 귀퉁이 한 뼘쯤 남겨 도라지와 수국을 심었으면 했다. 한데 뜻밖에 작은 오두막이 키다리 아저씨의 선물처럼 주어졌다.
꿈같은 일이었다. 땅을 딛고 선 집, 금상첨화로 뒷담은 창경궁이 대신 둘러주었고 늠름한 매화 한 그루에 살구, 산수유, 주목에 모란까지 식구가 여럿이었다. 뿐인가, 뒤꼍에 딸린 한 뼘이 아닌 한 아름쯤 되는 땅에 그와 나는 철부지처럼 환호작약하였다. 엄동설한 동짓날 이사를 하면서도 춥지 않았다. 그날부터 오로지 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긴 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봄이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이토록 간사하단 말인가. 꿈에 버금가는 횡재에 겁도 없이 간이 커져 더 욕심을 부렸다. 있는 식구나 잘 거둘 일이지 분수도 모르고 나머지 땅에 무엇을 심을 것인지 설왕설래하였던 것이다. 평소에도 마음이 끌린다 싶으면 몰두하느라 앞뒤 사정을 가리지 않는 이 대책 없는 커플을 누가 말리랴. 그와 나는 급한 마음을 앞세워 꽃시장으로 달려갔다.
애초에는 앵두나무 딱 한 그루만 모셔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앵두는 간곳없고 우리는 이심전심으로 ‘비파’라는 명찰을 단 나무에 요즘 아이들 말로 ‘필’이 팍 꽂혔던 것이다. 나무를 넘겨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흥분하여 다른 생각은 할 겨를도 없었다. 홍조를 띤 그의 모습에 얼비친 내 자화상을 보았을 뿐이다.
의기양양하며 비파를 뒷마당 한가운데에 자리 잡아 주기까지 짧은 해가 모자랄 정도였다. 품새로 보아 키가 아주 클 것이라는 둥, 너무 깊게 심지 말라는 둥 제법 알은체까지 하면서….
반나절의 분잡을 떤 끝에 아주 큰일을 해낸 양 우린 마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장미과(科)에 속하는 비파(枇杷)는 과실과 잎 모양이 고전악기인 비파(琵琶)와 비슷한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약 3천년 전의 인도 불전(大般涅槃經)에 약이 되는 ‘나무 중의 왕(大藥王樹)’이라는 기록이 있다나. 우리에게 나무장수는 비파 한 그루만 집에 들이면 가정상비약이 필요 없다고도 했다. 무슨 만병통치약장수처럼 어디에 좋고를 열거하던 그의 말에 혹한 것은 아니다. 오로지 ‘비파’라는 그 어감 때문이었다.
또한 근사한 이름에 걸맞게 애봄임에도 불구하고 짙푸른 청록의 이파리는 강직해 보였고, 꼿꼿한 줄기는 기개를 지닌 양 쉽게 범접할 수 없는 품위까지 지녔다.
한데 우리의 이 소동은 채 이틀도 못 가서 막을 내렸다. 다음날 한껏 들떠 자랑을 하는 내게 김선생님이 일침을 놓았던 것이다.
“그 나무는 이렇게 추운 지방에서 못 살지.”
그제야 화들짝 호접몽에서 깨어난 나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확인하며 실소를 했다.
하지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랴. 겨울이 되면 실내로 들이기 위해 다시 화분에 옮겨 심느라 또 한 번의 번잡을 떨면서도 마냥 뿌듯하였다. 그런 해프닝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부러워하던 집을 떠올렸던 것이다.
그 집은 전철 선로 옆에 닿을 듯 붙어있었다. 빛바랜 슬레이트 지붕에 얼기설기 두른 양철 담장, 녹슨 철대문은 옛날식 기차가 ‘꽤액’ 기적을 울리면 제풀에 힘없이 무너져 내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겨울이면 눈 속에 며칠씩 폭 파묻히기도, 여름이면 담쟁이넝쿨에 감싸이곤 했다.
몇 년을 그 곁을 스치듯 지나다니면서도 나는 그 집 주변이 흐트러진 모양을 보지 못했다. 층층이 일궈 만든 계단 닮은 남새밭은 언제나 정결했다. 아마 집주인은 동살 무렵이면 황토마당을 싸르락 싹싹 비질한 후 잡초를 뽑고 푸성귀에 물을 주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내가 그에 버금가는 집을 갖게 되었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기왕에 우리 식구가 된 비파를 추운 계절이 오면 어느 시인처럼 솜이불이라도 둘러 애지중지 키우리라 마음먹는다. 어찌 알겠는가. ‘거문고와 비파’라는 뜻을 지닌 그 덕분에 금슬지락(琴瑟之樂)이 철철 넘쳐 그와 내가 더욱 알콩달콩해질는지.  


부 채
우희정
꼭 전해 줄 게 있다며 그가 내민 것은 작은 접부채였다. 노란 바탕에는 어느 잡지에 실린 내 수필 한 구절과 그림이 다소곳하였다. 이게 웬 횡재인가. 그는 문단의 큰 어르신이고 나는 일천한 수필가 아닌가. 황공하여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지만 원래 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니 달리 뜻을 전할 방법이 없었다. 워낙 인심 좋기로 소문난 분이니 까마득한 후배에게 주는 격려의 뜻이려니 여기기로 했다.
몇 주가 지났을까. 또 하나의 부채가 왔다. 물론 배달도 그가 직접 하였다. 지난번처럼 수필 한 구절과 그림이 담긴 부채를 주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히 갔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뀌어도 그는 여전히 전해 줄 게 있다며 왔고 그리고 갔다.
어느 날 문득 방안을 둘러보니 부채가 그득하였다. 접부채를 시작으로 원선(방구부채), 쥘부채, 미선(尾扇), 세미선, 곡두선(曲頭扇) 등등. 크기와 모양도 다양하여 같은 게 거의 없었다. 세모, 네모, 원형, 역삼각형…. 천천히 아주 천천히 꼭 꼭 짚어 세어보았다. 무려 아흔일곱 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흔일곱 번째도 그는 전혀 머뭇거리지 않고 돌아서 갔다.
그 모습에 아쉬움을 느낀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아쉬움이 날로 진한 여운으로 가슴에 고이기 시작했고 그 깊은 곳으로부터 따뜻하고 부드럽고 향기로운 안개가 피어났다. 그렇게 돌아서 가는 그의 고독과 열정이 오롯이 전이되어 나는 많이 앓았다. 전해 줄 게 있다는 그의 말이 무시로 맴돌았다. 전해 줄 것! 그가 백을 채우기 전에 나는 그것을 분명히 받았고 모든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를 얻었다.  
부채는 팔덕선(八德扇)이라고도 한다.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더위를 쫓아주고 파리나 모기 같은 해충을 쫓아준다. 가려운 곳을 긁을 수도 있고 악취를 날려버리고 곰팡이도 막아준다. 햇볕을 가려 그늘을 지워주고 피하고 싶은 사람이 오면 얼굴을 가릴 수도 있다. 그리고 춤이나 판소리 등 공연의 소품으로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액운을 막아준다고도 하였으니 부채의 용도가 그뿐이랴. 바닥에 앉을 때는 깔개로 쓰이기도 했고 아궁이의 불길을 더 세게 할 때도 요긴했다. 어린 시절 부엌에는 으레 낡고 그슬린 부채 하나 선반 어디엔가 꽂혀 있지 않았던가.
부챗살 수와 꼭지 모양, 선추의 종류에 따라 합죽선, 반죽선, 죽절선 등등 30여 종에 달하는 접부채, 그중에서도 그가 직접 그림을 넣은 화선을 나는 제일 좋아한다. 하여 여름날이면 수시로 부채를 손에 든다. 부채가 가진 팔덕선 중 그 첫 번째인 더위를 쫓는 일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보다는 부챗살을 펼칠 때면 엄전스레 모습을 드러내는 풍광으로 하여 한껏 호사를 누리는 편이다.
그래서 해마다 단오를 맞으면 창포물에 머리를 감지는 못할망정 부채를 마련한다. 작년에 쓰던 것은 고이 모셔두고 새 부채를 그려달라고 그에게 조른다. 그토록 수시로 부채를 갖다 줄 때는 언제고 이젠 열정이 식었다며 엄포를 놓으면서 더위 맞을 준비를 한다. 옛날에 임금이 단오를 맞아 신하에게 더위를 이겨 건강하라는 뜻이 담긴 부채를 하사했다지만 나도 그에 버금갈 셈을 챙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운명처럼 한 집에 살고 있다. 굳이 말하자면 우리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서로에게 부채의 덕성을 모두 바치고 있는 것이다. 고단할 때도 속상할 때도 그가 그려준 부채를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행복감에 젖어든다. 그리고 뭉클한 가슴으로 기도를 드리게 된다.


상사화를 기다리며
우희정
이른 봄이었다. 매화나무 아래 흙이 봉곳하였다. 자세히 보니 부추처럼 생긴 연초록 싹이 수없이 솟구치고 있었다. 마음으로 듣는 새싹의 재잘거림이 그 여름날처럼 또다시 나를 아련하게 하였다.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해 서로 그리워하다 상사가 난 것 같다 하여 상사화라기도 하고 이별초라고도 한단다. 봄에 먼저 핀 잎이 여름 끝 무렵 지친 듯 땅속으로 녹아들면 그제야 불쑥 꽃대궁이 올라온다. 칠월칠석을 전후해서 대궁을 솟구치는 상사화는 견우와 직녀의 전설을 알고 있는 것일까. 행여 그들처럼 단 하루라도 만날 수 있는 간절함으로 분홍 꽃잎을 내미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애간장을 태운들 타고난 숙명을 어찌 거부하랴.
서산마애불 앞에서 열두 갈래로 피었던 상사화가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상사화는 열두 손을 가진 약사여래를 닮아 있었다. 꽃잎 속에서 다소곳이 솟구친 노란 수술이 선명했지만 그리워만 하고 사랑을 이루지 못함을 알기에 더욱 처연해 보였다. 애연하기 짝이 없던 그 모습이 눈에 밟혀 작년 봄 매화나무 아래에 상사화 스무 뿌리를 심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나저제나 움이 트기를 노심초사 기다렸건만 한 장의 이파리도 내밀지 않았다. 아니, 여름 지나 가을이 깊도록 흔적조차 없이 애만 태울 뿐이었다. 알뿌리가 여름 장마에 다 녹아버렸는가 싶었다.
몇 해 전, 선운사 상사화가 입소문을 타고 유혹을 하기에 간 적이 있다. 잔뜩 열에 들떠 갔더니 꽃무릇이었다. 그나마도 객혈을 하듯 아래로 쏟아져 땅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잎과 꽃이 만나지 못함은 비슷하지만 상사화와는 전혀 다른 꽃이지 않은가. 서산마애불 앞에서 만났던 그 애잔한 빛을 기대하던 나는 실연당한 심정으로 허탈해져 돌아서다가 내친걸음이니 절집이라도 가슴에 담아보자 싶었다.
새로 지은 천왕문이 앞을 가로막아 올려다보니 단청의 채색에 세월이 앉지 않아서 짙게 화장한 여인만 같았다. 절마당은 인파의 발길에 먼지가 자욱하고 만세루는 차방이 되어 속인들의 엉덩이에 눌려 신음하는 듯하였다. 부처님의 큰 귀로는 소리도 더 많이 들릴 법한데 바로 코앞에서 이처럼 떠들어대다니. 그런 풍경이 다 절집의 유명세 탓인 것 같아 씁쓸하였다.
대웅전 앞 배롱나무 두 그루가 그런 부처님을 위로하듯 붉디붉고, 그를 흉내내는 양 요사채 옆의 후박나무 두 그루도 의젓한 품새로 푸름을 자랑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도솔암 바람골을 타고 내려오는 개울물에 들앉은 참나무 그림자가 맑아서 헛걸음만은 아니라고 마음을 다독인 터였다.

마침내 상사화 싹이 텄으니 잎 지면 꽃도 볼 것이고 나는 또 꽃과 더불어 그 상사를 애틋해 하리라.
그런데 상사화를 바라보는 옆지기의 눈길이 내 가슴을 찌른다. 언젠가는 맞게 될 이별을 미리 헤아리는 그의 속내를 내 어찌 짐작이나 하였으랴. 봄 햇살에 취하고 새순을 반기며 꽃이 벙글 그날을 기대하며 흥분하던 내 마음이 실로 무참하였다. 이래서 부부는 남남이라고 하는가.
아니다. 눈빛만으로도 가슴이 보이고 숨소리만으로도 영혼이 들리는 남남이 어디 있으랴. 아무리 이름이 상사화라 한들 꽃도 잎도 같은 뿌리에서 왔거늘 돌아갈 곳도 한 데가 아니랴.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당신
우희정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당신, 이제 선연한 가을입니다. 지난여름은 길고 긴 무더위에 태풍까지 몰아쳐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가을이 더욱 미쁘게 느껴지는 것이겠지요.
며칠 전 우리는 장장 11시간의 비행 끝에 프라하 공항에 도착했었지요. 그곳에서도 두 시간을 더 달려 소도시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는개 내리는 길을 나서 줄곧 자는 시간만 빼고는 성지를 순례했습니다.
지금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광활한 들판에 서로 등을 기대고 있는 마을이 보입니다. 마을마다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성당이 우뚝하네요. 이곳에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더불어 살아간다고 합니다. 오래된 성당에 묻히는 것은 누구에게나 영광이랍니다.
오직 신에게 봉사하기 위해 태어나 세상을 살아가던 신본주의 시절, 신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주된 일이 신전을 짓는 일이었음은 후세의 우리에겐 참으로 크나큰 축복입니다. 신을 기쁘게 한 미다스의 손으로 하여 이렇게 몇 백 년 뒤의 우리 눈이 호사를 합니다.
당신과 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처음 맞는 가을에 누리는 호사임에 더 감격스러운 거지요. ‘처음’이란 단어를 곱씹다보니 하느님 말씀을 처음으로 접하고 돌아오던 날 짓던 당신의 쑥스러운 미소가 떠오릅니다.
“누구, 천당 보내기 힘드네.”
그래요. 딴 사람이 들으면 곡해하기 쉬운 그 말이 나는 참 듣기 좋았답니다. 실은 70평생 교만하고 냉소적으로 살았던 당신이 처음 하느님께로 마음문을 열던 모습이지요. 그 품새가 마치 내게 첫 프러포즈를 하던 그날과 흡사하기도 했답니다.
당신과 나, 먼 길을 돌아 뒤늦게 만났습니다. 맑고 청청하던 시절 다 흘려보내고 인생의 늦가을에야 우리 인연이 겨우 맞닿은 것입니다. 모르시지요, 당신이 얼마나 커다란 그림자로 내 앞에 다가섰는지를요.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우뚝 버티고 서던 큰 산,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어둠이 닥칠 저물녘에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당신이나 나나 큰 용기가 필요했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젊은 사람 앞길 막는 것 아닌지 몰라.”
지인에게 한 당신의 그 말이 내 결정을 확고하게 했답니다.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그까짓 나이차가 무슨 문제인가요. 사랑이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잖아요. 절실하기야 젊은이들에 비할 바가 아니고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 더 안타깝고, 더 서러울 뿐.
‘내 목숨을 떼어 당신 목숨에 잇댈 수만 있다면….’ 한때는 이런 생각을 품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분의 뜻임을 알았으니까요. 영원을 약속 받은 마당에 세속적인 시간을 아쉬워할 필요가 없어졌답니다.
그동안의 죄를 씻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던 날 우리는 또 다른 특별한 의식을 치렀지요. 신부님의 집전으로 치러진 혼인성사. 당신과 나는 그제야 완전한 한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조금 전 빈의 상징인 슈테판사원에서 기도를 올리고 나오며 당신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지요. 같은 장소에 몇 번이나 왔는데도 믿음이 없던 때와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고요.
나요? 하늘을 찌를 듯한 사원의 첨탑과 정교하기 짝이 없는 내부의 조각들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황홀 그 자체였지요. 한데 그보다도 더 명치끝을 뻐근하게 한 감동은 역사 깊은 성전에, 그것도 예수님과 성모님상 앞에 당신과 더불어 무릎 꿇을 수 있음이었답니다.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이 인상 깊던 헝가리의 마차시성당과 5백여 년이나 걸려 지었다는 웅장한 프라하의 비트성당 등등…. 며칠 동안 둘러본 그 이름조차 다 외울 수 없는 성지들이 당신과 함께여서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음은 말할 필요도 없지요.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당신, 당신과 내가 오랜 방황 끝에 만났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서로를 그리워하듯 하느님과의 사랑도 더욱 깊어지리라 믿고 싶습니다.
이 가을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준 더없는 선물입니다.

禹希政(우희정)
․1995년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양수필문우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원
․도서출판 소소리 대표
․수필문학상, 한국문학백년상 수상
․한국신문윤리위원 역임
․수필집 󰡔폴라리스󰡕 「속절없다, 시린 꽃빛아」 󰡔부챗살 나들이󰡕 외 다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1]
웨딩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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