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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과 아침
鄭 木 日
합천댐 부근에 있는 청소년수련원에서 문학세미나가 있어 이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배정된 방에 가보니 불을 켜놓은 채 문을 열어놓아서 수많은 나방들이 들어와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S 시인이 살충제를 뿌려서 방안 사방으로 날고 있는 나방들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비행중인 나방들이 격추된 전투기처럼 추락하여 아비규환의 처절한 모습이 전개되고 있다. 나방들은 방바닥에 수북히 떨어져 허우적거리며 날개를 바둥거린다. 불빛을 보고 본능적으로 끌려온 것인데, 살충제가 뿌려지는 바람에 숨을 거두며 발버둥치는 중이다. S 시인은 침착하게 빗자루로 방바닥을 쓸어낸다. 수많은 나방의 시체들이 쓰레기처럼 쓸려 나가고 있다. 주검의 냄새가 자욱한 방에 들어선다는 것이 꺼림직하다. 나방에게 광명이었던 불빛은 죽음의 손짓에 불과하다. 나방들로선 예기치 못한 죽음이다. 아무리 쓸어낸다 하더라도 나방 날개에서 떨어진 가루와 신음과 불빛을 찾던 더듬이의 촉수들이 방 여기 저기에 묻어 있을 것이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 밤공기를 쐬운 후에 다시 들어온다. 방안엔 3개의 모기향이 타고 있다. 초록뱀처럼 꽈리를 튼 모기향은 밤새도록 탈 것이다. 향불치곤 음산하고 치명적인 것이다. 향불 3개로 둘러쳐진 보호망엔 죽음의 가시가 박혀 있다.
나는 보호망 속에다 이부자리를 펴고 애써 눈을 감는다. 보호망 바깥의 어둠 속엔 적의의 눈길들이 수없이 방안을 노려보고 있을 것이다. 살의마저 느껴지는 모기 소리에 소름이 돋는다. ‘쌩-’ 하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는 공포를 불러 일으킨다. ‘쌩-’ 하는 전투기의 비행음이나 “쌩-‘ 하며 날아가는 돌멩이 소리도 마찬가지다. 공격 목표물을 포착하고 파괴력을 싣고 날아가는 그 소리엔 피 냄새가 난다. 음흉하고도 날카롭다. 순식간에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수많은 나방들의 주검들 위에 누워있는 나를 본다.
중학생일 때 시골의 친구집에서 여름 한 날을 보낸 적이 있다. 마당에 모깃불을 놓고 대청의 모기장 속에서 잠잔 적이 있다. 대청마루의 서늘한 감촉은 바람과 함께 전신을 청신하고도 감미롭게 해주었다. 모기장 안에서 누워 깊어가는 밤을 관찰하게 해주었다. 별들이 보이고 모기는 바깥에서 뱅뱅거리며 침을 놓기 위해 온 밤을 새울 것이지만, 나는 모기장 속에 안온하고 낭만적인 밤을 보냈다. 직육면체의 폐쇄된 방에서 잠을 잤을 뿐 바깥 밤공기를 마시며 별들을 바라보면서 잠을 자본 경험이 없었다. 모기들은 피를 빨지 못해 안달을 하며 필사의 공격 방법을 찾느라 잠시도 쉬지 않는다. 나는 이런 밤이 오히려 포근하고 신비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마당의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는 소리를 내고, 별똥별이 논 위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모기장은 자연 친화적인 보호장치이다. 모기를 막아내는 데 목적을 둘 뿐 살의를 지니지 않는다. 예방책이지 살충 무기가 아니다. 바람의 촉감을 느끼게 하고 별도 보여주는 낭만적인 보호망이다.
살충제와 모기향은 화학무기가 아닌가. 모기장 속에서 잘 때의 안온함은 모기를 죽이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공존의식 때문이 아닌지 모른다. 살충제와 모기향이란 화학무기를 살포한 것은 선전포고 이전에 선제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이로써 전쟁을 치루는 밤을 보내야 한다. 공포와 적의와 살기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잠 들더라도 마뜩하지 못하고 흉흉할 수 밖에 없다. 수많은 죽음의 흔적과 신음과 처절한 광경을 목격하지 않을 수 없다. 하룻밤을 전쟁터에서 보내야 하는 병사가 돼야 한다. 참호 속에 교대로 잠을 청하는 심정으로 눈을 감고 있지만 신경이 곤두선다. 모기가 날카로운 침을 들이대며 공격의 허를 노리고 있다. 첨단 공격기를 몰고 있는 조종사나 다름 없어 보인다. 어둠 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공격을 퍼부을 태세이다. 어찌 태평하게 잠이 들 수 있을 것인가.
세계2차전쟁 때 유태인들이 가스실에서 죽어가던 모습을 상상해 본다. 모기에게는 금방 숨이 넘어갈 독가스를 아침이 올 때까지 마셔가며 태연한 척 잠 들어야 하다니! 차라리 내 피를 조금 내어놓고 함께 공존의 밤을 보낼 순 없는가. 잠자리가 편안하지 않다. 모기 비행음은 칼날처럼 날카롭다. 내 피를 노리며 선회하는 모기, 맥박은 긴장과 초조 속에 뛰고 있다. 모기의 뽀쪽한 침과 내 살갗 속으로 흐르는 피를 동시에 느낀다. 침과 피는 대각선 위에서 마주보며 숨을 죽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적과 대치하고 있다. 전쟁터의 참호 속에 하룻밤을 보내는 게 더 좋을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방안 곳곳에 나방들이 날개를 파르르 떨며 원을 그리며 발버둥치고 있다. 독가스에 질식돼 숨을 거둔 나방과 모기들의 주검 곁에 나는 평화의 잠을 얻은 것인가.
온 몸이 근질근질하다. 완벽할 듯한 화학무기의 방비 속에서도 팔이며 다리 등에 물린 자국이 선명하다. 모기의 침공이 얼마나 가열했는지 그 참상을 알만하다. 하룻밤을 무사히 지낸 것이 다행스럽기만 하다.
바깥을 보니, 눈부신 아침이다. 나에게 하룻밤 잠을 제공한 방이 나방들에겐 죽음의 감옥이다. 지긋지긋한 하룻밤을 보냈다고 생각하기에, 아침은 더 평화롭고 찬란한 것이 아닌지 모른다.
행복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불행을 깔고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지 모른다. 내가 한 평이라도 더 넓은 잠잘 곳을 얻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것들의 생존을 빼앗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일까. 가끔씩 잠들 때, 잠잘 곳을 찾지 못해 바깥에서 방황하고 추위에 떠는 사람은 없을까를 생각하곤 하였다. 하룻밤을 보낼 공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 아닌가.
아침 산책을 나서 본다. 7월의 꽃인 배롱꽃, 자귀꽃이 여기 저기 피어 있다. 녹색의 천지에 붉은 빛깔의 배롱꽃, 자귀꽃은 귀한 손님인 듯 눈부심으로 다가온다. 창밖으로 고추잠자리가 낮게 유유히 떠돌고 있다. 우군기를 만난 듯 기분이 고조된다. 주변에 있는 합천호 수면 위에 떠있는 안개는 첫날밤 신부의 속옷처럼 은근하다. 호수는 면사포을 쓰고 혼례장에 들어와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듯하다. 부드러움과 순결의 순간이 흐르고 있다. 물안개 속 숲으로 백로가 날개를 펼치고 있다.
아름다운 아침이다. 밤낮의 교차가 이렇게 다른 것인가. 이런 순간들로 세월은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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