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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사랑
이미선 ( 수필가 )
길가에 하늘거리며 춤추는 코스모스의 물결은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봄을 알려주는 노란 물결의 개나리는 희망에 부풀게 한다. 어린 시절을 도회지에서 보낸 나는 꽃이나 나무 이름을 잘 모르고 자랐다. 그런 내가 나무에 정을 듬뿍 들이게 되면서 내면의 정서가 점점 풍요로워진다.
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마음이 무척 훈훈해져 있었다. 우리 부부의 힘으로 저축하여 장만을 한 집이라 뿌듯하고 참으로 좋았다. 그리고 남편이 회사에서 승진을 해서 우리 집은 경사가 겹쳤다.
남편은 어느 날 난 한 분(盆)을 품에 안고 현관으로 들어왔다. 난 화분의 리본에는 남편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난을 가까이 해보지 않았지만 승진의 의미가 담겨져 있는 난이 친근하고 각별하게 다가왔다.
일 년 동안 난은 무럭무럭 자랐다. 화초 키우는 방법을 몰랐지만 잘 적응해서 쑥쑥 잘 자라주는 난이 신통하기 그지없었다. 이듬해 봄 근처의 화원에서 분갈이를 했다. 그 때부터 처음으로 난을 키우면서 화초 키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된 셈이다.
1년 전의 일이다. 아파트 앞뜰에 파키라 나무가 쓰러져 있었다. 잎새로 몸을 장식하지도 않았고 뿌리도 하나도 내리지 못해 처참한 몰골이었다. 삭막하고 외로운 몸을 작은 가지에 의지하고 있었다.
불쌍하고 안타까워서 집으로 데려와 깨끗한 화분에 파키라의 둥지를 마련해 주었다. 아파트 놀이터 밑의 고운 흙도 가져다 심었다. 물과 영양제도 떨어질 새라 잊지 않고 주었다. 그러면서도 쓸쓸하고 황폐한 파키라가 잎도 틔우고 뿌리도 내릴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십 여일 후부터 서로 시샘하듯 잎이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한 생명을 살렸다는 흥분과 감탄이 절로 나왔다. 성실하고 우직하게제 모습을 찾아가는 파키라가 고마울 뿐이었다. 이제 파키라는 부지런히 자라 울창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우리 집 거실 한편을 지키고 있다.
재작년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근처 공원을 거닐며 나뭇가지마다 하얗게 내려앉은 눈을 오랫동안 볼 수 있어 한없이 행복했던 해였다. 그 해 아버님께서 다리 수술을 하셨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어머님이 계시지 않아 아픈 다리를 참고 한동안 수술을 미루어 오신 것 같았다. 아버님으로서는 며느리에게 간호를 맡기기가 어려운 일이셨으리라. 수술을 무사히 마치신 아버님은 두 며느리들의 집을 번갈아 다니면서 간호를 받으셨다.
평소에 모시지 않은 아버님이 어렵기만 해서 마음이 힘들었다. 환자의 간호와 식사를 하루 세끼 해 드리느라 아주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래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난이 강추위에 떠는 것도 미처 살피고 헤아릴 겨를이 없었다. 난은 엄청난 겨울의 추위에 견디기 힘들었다.
아버님이 다리의 상처를 어느 정도 회복하신 후 시골로 내려가신 후 비로소 한가한 틈을 타 난을 살펴보니 잎도 시커멓게 변해가고 뿌리도 상해 있었다. 정말 불쌍했다. 나무가 말도 못하고 썩은 상처가 얼마나 아팠을까?
썩은 뿌리들을 도려내고 싱싱하게 남아있는 뿌리만 조심스럽게 심어 주었다. 봄바람이 불어오자 난들은 차츰 제 자리를 잡아가는지 싱그러운 잎으로 봄 인사를 환하게 건넸다. 겨우내 추위에 잘 돌보지 못해 미안했는데 다시 곱게 자라주니 대견하기만 했다.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도덕성이 강한 민족이었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꽃도 그 내면에 화품과 화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꽃이 지닌 겉모양의 아름다움보다는 꽃이 간직하고 있는 격조와 절조의 면으로 꽃을 바라보았다.
아름답고 현란한 꽃은 뜻을 상하게 한다고 하여 멀리 하고 덜 예쁘고 수수하고 색이 요란하지 않은 꽃들을 심었다. 우리 백성들이 옛날부터 화단에 봉숭아나 박꽃같이 수수하고 소박한 꽃들을 좋아하고 심은 것도 화려함보다는 내면적인 기준으로 꽃을 사랑해서였다.
세종 때의 학자 강희안은 한국인이 좋아하는 화품(花品)을 9품으로 나누었다.
1품은 높고 뛰어난 운치를 자랑하는 매화, 국화, 연꽃, 대나무
2품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 작약, 연산홍
3품은 깐깐함을 생명으로 하는 치자, 동백, 사계
4품은 운치 있는 소철, 포도
5품은 정열적인 자태의 석류, 해당화, 장미
6품은 변화하는 진달래, 백일홍, 오동
7품은 담백, 우아한 배꽃, 모련, 앵두꽃
8품은 서민들의 소박함을 나타내는 무궁화, 박꽃, 맨드라미, 봉선화
9품은 절개를 지조로 하는 해바라기, 두충
이렇게 우리 선조들은 화초에까지 도덕적 의미를 부여한 화초를 사랑한 민족이었다.
해마다 나무에 애정을 기울이고 가꾸다 보면 꼭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정성을 다 쏟으면 밝고 건강하게 자라듯 나무도 정성껏 돌보면 생기와 윤기가 흐른다. 그러다 조금만 손질을 게을리 하면 엄마의 사랑을 잃은 풀죽은 아이처럼 시들시들해진다.
식물은 정직해서 좋다. 때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느끼는 서운함이 없어서 좋고 관심과 정성을 주는 만큼 튼실하게 자라며 보답을 한다.나무의 새싹이 올라오는 모습은 참 신기하다. 제 몫을 다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끊임없이 나오는 새싹의 노력은 기특하기 이를 데 없다. 또 연약한 새싹에서 강한 생명력을 엿볼 수 있다. 아무리 움직이지 못하는 식물일지라도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생명의 신비는 숭고하게 느껴진다.
아파트 베란다 창문에 말갛게 어린 화초들을 보면 든든하고 흐뭇하다. 벤자민, 관음죽, 서양란, 동양란, 군자란, 동백, 스킨 다비스 하나둘씩 늘어난 화초가 어느새 스무 개의 둥지를 틀었다. 화초들이 환하게 날 반기면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것 같다. 이제 화초들은 내 곁을 지켜준다 , 오래된 친구처럼 정겹고 사랑스럽다.
일상의 반복에서 화초의 잎새가 올라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작은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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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라
멕시코에서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이다. 보기에는 팔손이와 비슷하지만 실내원예에서 이국적인 정취를 풍겨 인기 있는 관엽식물이다. 높이는 30∼200cm까지 다양하다. 두꺼운 줄기와 거기서 뻗은 가느다란 가지가 특징적이다. 줄기는 벽오동처럼 생겼으나 밑부분은 갈색의 곤봉처럼 생겼다. 가지 끝에는 손바닥 모양으로 된 복엽(겹잎)이 달리고 작은잎은 긴 타원형이다. 꽃은 크고 매우 아름다워 감상하기에 좋다. 열매는 식용이 가능하다.
반그늘을 좋아하고 배수가 잘 되는 땅에서 잘 자란다. 건조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씨뿌리기와 꺾꽂이로 번식한다. 줄기를 자르면 여러 개의 새순이 나오기 때문에 1∼2개의 줄기에 여러 개의 작은 줄기와 잎을 가꾸면 상품가치가 있다.
이산화탄소를 없애는 능력이 뛰어나 공기정화에 좋은 식물이기 때문에 아파트의 베란다 또는 거실에서 키우면 좋다.
▽ 이미선 수필가 프로필
강릉 출생
숙대 교육과 졸업
1998년 예총 <예술세계 >수필 등단
숙대문인회 회원
예술시대 작가회 회원
수원 문인협회 회원
경기 문학인협회 회원
전 경기 문학인협회 사무차장
현재 예술시대 작가회 편집위원
이메일 - lms137000 @ hanmail.net
다음카페 - http://http//cafe.daum.net./lms77 이미선과 함께 하는 수필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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