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
이 관 희
지난 겨울 어느 비 오는 날, 나는 모처럼 집에서 하루를 쉬게 되었습니다.
나는 비를 좋아합니다. 비구름 낀 하늘을 좋아하고, 비 내리는 모양을 좋아하고, 비 내리는 소리를 좋아하고, 그리고 비를 맞고 나가 다니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이곳 남캘리포니아는 우기인 겨울에 잠깐 비가 내릴 뿐 나머지 긴 봄날과 그보다 더 긴 여름날, 그리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조차 없이 질질 끌기만 하는 가을철 내내 비 한 방울 오지 않습니다.
그나마 겨울철 두어 달 사이에 몇 번 내리는 비마저도 내가 지난 20년 동안 이곳에 살아 본 경험으로는 대개가 밤 사이에만 주룩주룩 내리다가 아침이 되면 슬그머니 그쳐 버리기가 일쑤였습니다. 어쩌다 한낮에 처덕처덕 내린다 하더라도 나는 대개 비 구경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년 내내 창문 하나 없는 공장 안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일을 해야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겨울의 그 비 오는 날 하루는 참으로 고맙게도 토요일이었고, 공장 일이 없었고, 그리고 한낮에 장대비가 좍좍 쏟아지고 있었습니다. 그 위에 내가 그 때 새로 이사해 들어간 아파트는 뜻밖에 전망이 아주 좋은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거실 커튼을 젖히면 나무들의 검은 숲이 언제나 내 시선을 안아 주었고, 숲 속의 잔디밭에는 파랗게 물이 고인 수영장이 거울처럼 번쩍였습니다.
이 모든 그럴 듯한 풍경 위에 한국에서 맞던 그 애인 같은 장대비가 한낮에 좍좍 쏟아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 날 집에서 하기로 마음 먹었던 일거리들을 깨끗이 제쳐 놓고 실로 20년 미국생활 중에 처음이라 해도 과히 거짓말이 아닐, 제대로 된 비 내리는 모양을 구경하기로 하였습니다.
나는 의자를 거실 창가로 가까이 끌어다 놓았습니다. 차도 한 잔 손에 들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헤어졌던 애인이라도 만난 듯, 비 내리는 천지를 내 동공 안에 힘껏 끌어 안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오랫동안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없이는 살 수가 없는, 말하자면 첫사랑의 연인 같은 그렇게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무언가 마음 한 쪽이 허전하였고, 낯선 곳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였습니다. 체형에 맞지 않는 외제옷을 입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 직장 동료의 집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은 미심쩍은 느낌, 그것이 현대라는 낮도깨비 같은 시대에 태어나 더구나 낯설고 엉뚱하기 짝이 없는 미국땅에 와서 살고 있는 내 마음의 풍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잃어버린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보거나 찾아 보거나 혹은 누구에게 물어 볼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내기에만도 너무나 바쁘게 허덕였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은 이렇게 바쁘게 사는 것이 차라리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너무 바빠서 감기 들 새는커녕 죽을 틈조차 없다는 말이 정말로 실감이 나는 것이 현대인의 생활입니다.
그런데 지난 겨울, 그 오래 전의 애인 같은 장대비가 내리던 그 날, 나는 오랫동안 내가 잃어버리고 살아온 그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비를 사랑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비와 연애를 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비 내리는 날 아기를 잉태하듯 꽃삽으로 꽃밭의 흙을 파고 꽃모종을 해 보신 일이 있습니까? 그때가 언제였습니까? 까마득한 옛날이었습니까? 나도 그렇습니다. 나는 소년 시절에 그렇게 살아 보았습니다.
나는 나의 옛 집 대문 옆 꽃밭에 가득 심어 놓았던 봉선화 꽃잎에 맺혔던 빗방울들의 모양을 지금도 나의 동공 안에 그대로 그려낼 수 있습니다. 그것들은 무수한 입술들이었습니다. 방긋방긋 꽃으로 웃는 입술들, 그것들은 또 무수한 눈빛들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시절 내 주변 소녀들의 수줍고 사랑 많던 눈빛들, 그것들은 또 손짓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가릴 것 없던 나의 친구들의 다정한 손짓들, 나는 그 입술 같고 눈빛 같고 손짓 같은 비와 나의 소년 시절 내내 연애를 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연인인 비를 흠뻑 맞으며 빗속을 걸어다니기를 무엇보다도 즐거워 하였습니다. 그 시절, 비 내리는 날, 비를 맞으며 개울물에서 동무들과 물고기를 잡고 놀던 일은 그대로 천국이었습니다.
나는 비가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심지어는 빗물이 고인 진창길을 겅중겅중 뛰어 건너는 것조차도 비길 데 없는 행복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다가 신발에 물이 들어가 기워 신은 양말을 적시게 되면 더욱 큰 즐거움으로 소리내어 웃었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아니, 그 시절의 우리는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비와 깊은 사랑에 빠져서. 이제 돌아보니 그렇게 사는 것이 바로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오랫동안 그것들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습니다. 현대인은 모두 다 그렇게 사람답게 사는 삶을 잃어버린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인은 비에 대한 연정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대신 우리는 시멘트 벽돌로 쌓아올린 거대한 도시와 아스팔트 길과 자동차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가을볕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첫눈 오는 날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아지랑이 불타는 봄동산을 잃었습니다. 현대인의 가을볕과 첫눈 오는 날과 아지랑이 봄동산은 컴퓨터의 ‘스크린 세이버’ 프로그램으로 대치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현대인은 수줍음으로 물든 처녀의 붉은 볼과 샘물의 원천 같던 그 순박한 눈빛을 잃었습니다. 대신 포르노 잡지와 포르노 영화와 포르노 연극을 얻었습니다.
현대인은 대단위 공업단지마다 우뚝 솟은 공장 굴뚝의 시꺼먼 연기와 맞벌이 부부와 저금통장을 얻었습니다. 대신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의 사랑과 가정주부를 잃었습니다. 오! 그리운 가정주부여!
현대의 아이들은 어머니의 따뜻한 젖가슴을 잃었습니다. 대신 탁아소 놀이터의 싸늘한 모래밭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목포의 눈물’과 ‘동백 아가씨’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잃었습니다. 대신 낮도깨비 같은 아이들의 귀신 씨나락 까먹는 댄스 뮤직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누룽지를 잃었습니다. 대신 라면과 반짝 일회용 문화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초가지붕을 잃었습니다. 그 속에서 도란도란 소근거리던 아빠 엄마의 정다운 말소리를 잃었습니다. 대신 졸부들과 곰의 쓸개와 해구신과 섹스 관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가정파탄을 덤으로 얻었습니다.
우리는 푸른 들판과 개구리 소년들과 메뚜기 떼들을 잃었습니다. 대신 골프장과 산성비와 환경공해라는 세기말의 공룡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갑돌이와 갑순이의 바보 같은 사랑을 잃었습니다. 대신 러브호텔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이태리 가구와 불란서제 향수와 미국 영화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인터넷도 얻었습니다. 대신 반만 년 백의민족의 얼을 송두리째 내어 주었습니다. 지금 조선 팔도에서는 새로운 문화식민통치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냉장고와 세탁기와 전자오븐을 얻었습니다. 대신 앞치마에 밴 엄마냄새를 잃었습니다.
우리는 미스 코리아와 미스 월드와 그리고 슈퍼 모델을 얻었습니다. 대신 ‘이쁠 것도 없고 아무렇지도 않은 사철 발 벗고 사는’ 조강지처를 잃었습니다.
우리는 연날리기와 땅따먹기와 제기차기와 구슬치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밤하늘의 별들을 잃었습니다. 이 시대의 아이들은 아무도 ‘별 하나, 나 하나’를 세지 않습니다. 대신 전자게임과 괴기영화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일제 만화를 무상으로 얻었습니다.
우리는 일원짜리와 눈깔사탕과 어린이를 잃었습니다. 대신 억, 억, 조, 조…… 하는 천문학적 권력의 도둑놈들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달빛과 달맞이꽃을 잃었습니다. 대신 포르노 비디오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미국 할리우드와 민주주의와 인기투표를 얻었습니다. 대신 눈물 많던 순정의 정치를 잃었습니다.
우리는 컴퓨터와 생명공학과 그 찬란한 미래 사회의 청사진을 얻었습니다. 대신 아랫도리를 내어 주었고, 사람답게 사는 것을 잃었습니다. 컴퓨터 시대는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아랫도리를 벗고 마주 앉는 시대입니다. 컴퓨터는 지구촌의 속옷을 홀라당 벗기고 말았습니다.
내가 이 모든 잃어버린 것들을 기억해 내고 비통한 심정에 빠져 혼자 신음하고 있는 사이, 어느덧 20년 만에 한 번 제대로 구경하던 한낮의 장대비는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월요일 아침에 나는 다시 일년내내 언제나 그렇듯 새들보다 일찍 일어나 창문 하나 없는 공장에 일하러 갔습니다. 점심시간에 잠깐 햇볕이 쪼이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공장 앞에는 빈 터가 있었습니다. 그 빈 터에는 단 한 번 내리는 비에도 안간힘을 다해서 맹렬한 속도로 돋아 나와야 짧은 봄날의 며칠을 살아 낼 수 있는, 남캘리포니아 특유의 강한 생명력을 지닌 잡초들이, 이 겨울 들어 한두 번 내린 비에 벌써 한 뼘이나 되게 자라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잡초밭에 내려 쪼이는 햇볕은 도시의 스모그에 늙고 찌들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어디선가 벌써 날개짓이 분명해진 나비 한 쌍이 잡초밭에 핀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을 찾아 날아 왔습니다. 그 나비 한 쌍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아! 하고 신음소리를 질렀습니다. 차라리 저 나비 한 마리가 되었더라면!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께서는 사람보다 나비 한 마리를 먼저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달빛을 먼저 지으시고, 달맞이꽃을 먼저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다람쥐와 개와 고양이와 물고기와 시냇물을 먼저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사람을 지으셨다고 하였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태어나자 마자 그것들과 같이 살라고 그랬던 것입니다. 그것들과 같이 사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이란, 아이들이 새벽 다섯 시에 눈곱도 떼지 못하고 일어나 쫓겨나듯 집을 나와서, 밤 열 시까지 딱딱한 학교 의자에 묶여 앉아서 공부를 한 후에, 그 깊은 오밤중에 또다시 입시학원으로 달려가 새벽 한 시까지 입시공부를 더 하고 돌아와 서너 시간 픽 쓰러져 잠을 잔 후, 또다시 전쟁난 듯 후다닥 일어나 집을 나갔다가 다음 날 새벽 한 시에 집에 돌아와도 겨우 대학에 붙을까말까한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비 오는 날, 비하고 흠뻑 사랑에 빠져 개울물에서 물고기를 잡고 노는 것이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까? 나는 지금 너무 분통스러워서 이런 말을 쓰면 문학이 안 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놓은 그 자가 누구이든 인류의 이름으로 사형에 처해야 된다는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나는 길거리에 자동차가 없는 세상을 다시 한 번 살아 보고 싶습니다. 텔레비전이 없던 나의 소년 시절은 아직 얼마나 살만한 세상이었는지요. 차라리 그 시절이 죽도록 그립습니다.
나는 냉장고도, 세탁기도, 전자 오븐도, 돌려줄 수만 있다면 아낌없이 다 돌려주고 싶습니다. 대신 나의 어린 시절의 진짜 어머니들과 진짜 아내들과 진짜 동네 처녀들을 되찾아 오고 싶습니다. 오, 오, 그리운 옛날식 어머니들이여! 옛날식 아내, 옛날식 동네 처녀들이여!
나는 스물네 시간 냉온수가 나오는 나의 이민 아파트 샤워장과 생전 불 꺼질 걱정 없는 자연 가스 오븐도 미련 없이 다 돌려주겠습니다. 대신 아버지와 함께 가던, 벌거숭이 인정으로 뜨겁던 동네 목욕탕과, 가난한 아내의 봉지쌀에 담긴 무능한 남편에 대한 순결한 사랑을 되찾아 오고 싶습니다.
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제대로 된 치마를 입고 수줍은 눈빛으로 지나쳐 가는 여자들만 길거리에서 다시 바라보면서 살 수 있게 된다면, 지금 쓰고 있는 이 성능 좋은 컴퓨터도 깨끗이 포기하겠습니다. 인터넷도 포기하겠습니다. 다시 몽당연필에 침을 묻혀 누런 공책에 힘들게 글을 쓰며 살더라도 포르노와 마약과 권총강도가 없는 세상에서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입에 넣는 순간 혓바닥까지 녹아 내리는 미제 초콜릿 대신 딱딱한 누룽지를 다시 힘들게 씹어 먹고 살더라도, 나는 ‘아동학대금지법’같은 야만스런 법을 만들 필요가 없는 그런 밝은 세상에서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나의 사랑이 갑돌이와 갑순이의 바보스런 사랑처럼 비극으로 끝장나기를 열 번을 더 거듭한다 할지라도 차라리 좋으니, 제발 ‘성희롱 금지법’ 같은 그런 불결하기 짝이 없는 법을 만들 필요가 없는 세상에서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다시 한 번 더 한가롭고 여유롭게 살아 볼 수 있다면, 그래서 아무 때나 친구들이 가릴 것 없이 내 집을 찾아 오고 찾아 갈 수 있게 된다면, 동네 구멍가게에서 목마른 친구를 위하여 외상으로 사이다 한 병을 살 수 있게 된다면, 동네 어른들 앞에 다시 허리를 꺾어 인사를 하며 살 수 있게 된다면, 아버님 말씀을 따르느라 벌벌 오금을 떨더라도 그렇게 살 수 있게 된다면, 사연을 알 수 없는 눈물을 남몰래 자주 치마폭에 훔치면서도 가슴 속에는 늘 천국의 햇볕을 가득가득 저축하고 넉넉한 사랑으로 사시던 그 시절의 어머님들을 다시 찾아 올 수만 있다면, 나는 눈 앞에 다가온 찬란한 21세기 문명 같은 것은 깨끗이 다 포기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흙 냄새 물씬 풍기는 산업혁명 이전 세기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밤에는 호롱불을 켜 놓고 낮에는 달구지를 타고 다니며 살더라도, 하나님이 그렇게 살라고 지어주신 세상에서 다람쥐와 산새들과 어울려 물고기를 잡으며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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