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귀로
金寧順
예전에는 초상집 문 옆에 조등(弔燈)을 켜서 상중(喪中)임을 알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나는 초상집 앞을 피해서 다녔다. 그 집안에는 죽은 사람이 누워있고 주변에는 검은 옷을 입은 귀신들이 영혼을 데려가려고 서성거리고 있을 것 같아 섬뜩하고 무서웠다.
30 대(代)에 홀로 되신 나의 어머니는 당신이 돌아가신 후 ‘영혼이 떠난 몸’의 수습을 내가 하도록 당부하셨다. 수의를 손수 만드시고 입히는 방법을 여러 차례 가르쳐 주셨다. 수의를 입히는 것만도 싫은데, 운명하신 후에 해야 할 일을 남의 손을 빌리지 말고 딸이 하도록 당부하시는 것이었다. 그 과정은 남자들이 하는 일이다. 남자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집안에서는 당숙뻘 되는 분이 온 집안의 ‘염(殮)’하는 것을 맡아 하셨다. 거역할 수 없어서 묵묵부답(黙黙不答)이었으니 응낙하는 뜻으로 아셨겠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매번 짜증스러웠다.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는 듯, 말문도 닫으신 후였다. 아들네 집에 계시면서도 나를 만나기만 하면 ‘시골에 데려다 달라’고 그렇게도 조르시더니 이대로 아파트에서 운명하셔야하나… 진작 소원을 이루어드리지 못한 회한(悔恨)에 마음이 아팠다. 전원(田園)이 그리우신 어머니는 아파트생활을 감옥살이 같다고 늘 불평하셨다. 시골에는 피난시절 고생하며 지은 집이 있고 가슴이 확 트이는 들판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별세하신 1980년대(代)인 당시에도 추석명절의 고속도로는 정체가 심했다. 도로상에서 객사(客死)하게 될지도 모를 불효와 만용(蠻勇)의 선택 같은 절박한 상황이었지만 ‘모시고 가야 할 길’이라 생각했다. 출발하기 위해 키가 큰 당숙부가 안아 올렸더니 의식도 없는 듯하던 분이 깜짝 놀라셨는지 두 팔로 허공을 저으신다. 귀에다 대고 부드럽게 말했다.
“시골에 가는 거예요. 어머니, 시골에 모셔다 드릴께요”
놀랍게도 잡은 손의 힘을 빼시고 안도한 듯 안겨 있었다. 수년 전에 아는 분이 뇌사상태로 입원해 있다하여 문병 간 일이 있는데, 못 들으려니 해서인지 그의 부인이 간병의 어려움을 노골적으로 불평했다. 그때에 환자가 잔뜩 찡그리는 것을 본 일이 있는데, 중환자들이 못 듣는 것 같아도 다 듣고 있다고 생각해야하지 않을까.
정체된 고속도로의 차 속에서 미음을 떠 넣어드리며, 시골에 내려가는 차 안이라는 것을 반복하여 말씀드렸다. 실오라기 같은 생명줄을 놓치지 않으시도록 당부하는 나의 안간힘이었다. 드디어 무사히 도착하여 안방에 눕혀드리고 기저귀를 갈아드리는데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그것은 뚜렷한 생존의 징후였다. 기쁨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엄니 쉬- 하셨네. 걱정 말고 많이많이 하세요. 얼마든지 하세요”
나도 모르게 어머니의 궁둥이를 토닥거리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의식불명이신 것 같던 분의 볼과 입가가 살짝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웃으시는 것 같았다.
“우리 엄니, 웃으시네! 아주머니, 엄니가 웃으시네요”
누구라도 태어나서 적어도 일 년간은 기저귀신세를 진다. 자식의 배설물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어머니는 한 분도 안 계신다. 내가 혹시 2년간을 어머니의 간병을 하였다고 가정해볼 때 처음처럼 그렇게 기쁨으로 계속 대처할 수 있었을까? 부모님의 은혜는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지만 자식의 마음은 미미하기 그지없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에서 촌각을 다투는 것 같던 임종이 시골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밀려났는지 의식이 없으신 채 이틀 밤을 편안히 넘기셨다. 회복만 하시면 나의 생활의 모든 것을 접고, 돌아가실 때까지 시골에서 모시고 지내기로 작정하였으나 야속하게도 3일 만에 운명하셨다. ‘어버이 살아신 제 섬기기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 할 일이 이 뿐인가 하노라’라는 고시조는 왜 암기(暗記)하였던가. 이렇게 뒤늦게 가슴을 치려고 외웠던 것이냐. 가슴을 쳐도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다. 생전에 내가 듣기 싫어하는 줄 아시면서도 하신 말 ‘입을 벌린 채 놔두지 말고 굳기 전에 턱을 손으로 올리고 수건으로 머리에 묶어라’하시더니 오히려 얌전히 입을 다무신 채 가셨다. 무서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섬뜩하던 저승사자 따위는 조금도 겁나지 않았다. 염(殮)할 때에는 이미 싸늘해진 어머니의 몸에 닿는 나의 뜨거운 손에서는 정감(情感)이 흘렀고, 눈물 속의 내 눈길은 연민(憐憫)과 애정으로 뜨거웠다. 이렇게 잘 마무리해드릴 수 있는데, 생전에 당부하실 때에 왜 시원스럽게 대답을 못 해드렸을까. 다 소용없는 후회였다. 정성스레 깨끗이 닦아드리며 비로소 깨달았다. 남의 손이 당신 몸에 닿는 게 싫으셨고, 90세의 어머니에게도 여성의 부끄러움이 있었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던 말씀대로 마지막으로 두 손을 모아 배에 올려드렸다.
‘아들네 집에서 운명하시게 한다’는 허울 좋은 고정관념을 앞세워 어머니가 원하지 않는 생활을 강요한 불효여식의 죄를 어찌해야 하나? 신부전증에 시달리고 있는 오빠에게 말년(末年)의 어머니를 맡긴 죄를 어떻게 뉘우쳐야할까? 어디로 가시는지 모를 곳으로 돌아가시는 어머니의 표정은 책망도 용서도 없이 담담하고 싸늘하기만 했다. 90세를 사시면서도 나에게 요구하셨던 것은 평생 두 가지 뿐이었던 것 같다. ‘시골에 가고 싶다’는 소원을 더 일찍이 이루어드리지 못하여 죄송하고 후회스럽다.
부모님들은 한이 없는 큰 사랑을 베푸시는데도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몇 가지 안 된다. 그것을 못 해드리는 자식들의 죄가 끝도 한도 없이 크기만 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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