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보를 하면서
황정순
누군가가 산보를 왜 하느냐고 묻는다면 내안에 잠들어 있는 여러 가지 감성들을 깨우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 감성들이 내안에 있는 사랑과 자연의 이치를 밖으로 흘러나오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 내안의 감성이 없다면 산보는 단지 걸음걸이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루에 한 번 뒷산을 산책한다. 약수터를 사이에 두고 꼬불꼬불한 흙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 잠시 헐떡이는 숨을 몰아쉬었다가 다시 일어나 평평한 하늘 숲길을 걷는다. 길쭉한 나무들이 머리 위에서 서로 어께 동무를 하고 나를 끌어안는다. 내가 나무속으로 들어간다.
오늘 같은 더운 여름 날 나무 그늘이 없다면 산보는 생각할 수 없다. 그 나무숲은 봄에는 꽃을 피워 응답하고, 여름이면 그늘 막을 만들어 주며 산소나 수분을 뿜어 살아 있는 것들을 보호해준다. 녹색의 치료 병원이다. 숲은 인간은 물론이고 산새나 곤충들의 생명의 보금자리다. 그 곳에서 나무도 새도 곤충도 공생하면서 살아가는 한 무리임을 발견하게 된다. 그 들은 강한 율법이 없어도 질서를 지키며 서로 간에 유기적으로 움직여 순환의 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자연은 욕심이 없다. 필요 이상을 저장해 놓지 않는다. 그저 자연의 질서를 따를 뿐이다. 어느 한 종의 객체수가 폭발적으로 많아지면 또 다른 종이 나타나 포식하여 질서를 지켜간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지만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 뜻하지 않은 해충이나 홍수 가뭄 등 각종 병균이 출몰하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모든 생명체들이 번성하고 살아 갈수 있도록 큰 흐름을 유지시키고 있다.
이 지구상에 있는 하찮은 미물조차도 동물과 곤충의 배설물을 분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수만 종의 동물과 곤충들이 매일 같이 쏱아 내는 배설물이 쌓여 있다면 지구는 어떠할까. 그 배설물을 분해하는 박테리아가 없다면 지구는 배설물로 뒤덮여 살아 갈 수 없을 것이다. 그 가스로 인하여 공기는 마실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배설물만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수십 종의 박테리아균들이 달라붙어 분해 작 업을 하여 흙으로 되돌려주기 때문에 지구는 싱그러우며 항상 생명체들로 넘실된다.
인간은 나무가 주는 그늘을 거닐고 그것들이 주는 열매를 따먹고 , 자연이란 초록 병원에서 정신적 치료를 받고 , 나무가 정화해 주는 산소를 마시며 ,나무의 여분으로 온돌방을 따뜻하게 하면서도, 숲이나 나무를 베어내고 피해를 주는 행동은 주저함이 없다. 오늘도 개발이라는 명목과 과소비 때문에 지구의 허파 구실을 하는 열대림의 수많은 나무가 기계톱의 굉음아래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하얀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고 있다.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끼여 들어 폭력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어떠한가. 화학약품으로 만든 세제를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여 물을 죽이거나 미생물을 살 수 없도록 하고 있으니 ,지렁이가 죽을까봐 뜨거운 물조차 함부로 버리지 않았던 순하디 순한 인간의 본성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흙집으로 만든 초가삼간은 50년을 훌쩍 넘기는데 콘코리트 구조물집은 30년도 안되어 다시 지어야 될 형편이다. 그 콘크리트 집에는 아토피가 제 집이라고 사람들을 내쫓으며 난리를 친다. 그 옛 날 흐르는 물에서 빨래를 하고 바지자랑대에 널어 말리던 시절에는 환경오염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고 아토피는 얼씬도 못했다. 사람들의 심성은 무명치마의 옷자락처럼 순박하였다.
이제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율법을 강화시켜놓아도 인간의 사악함과 욕망의 끝은 멈출 줄 모르니 어찌된 일인가.
나무든 숲이든 곤충이든 해치는 것도 모자라 제초제라는 사약을 뿌려 아예 생명체를 몰살을 시킨다. 그러면서 어찌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말 할 수 있는가. 그것은 어불성설이요, 인간이 만든 합리화다. 현대인은 살아 있는 동안 자연에게 피해만 주는 자연의 이단자이다. 자연은 인간이 없어도 그들끼리 싸우지 않고 얼마든지 생명과 우주의 질서를 지키며 유기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저 삭막한 사막에 가서 하루만이라도 살아 보라. 한시도 못 살겠다고 뛰쳐나올 것이다. 공해에 찌든 공기를 마시며 살아보라. 사람들은 시름시름 앓아누울 것이다. 숲이 정화해준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자연의 열매로 의식주를 해결하고 살아간다면 그들을 해치지는 말아야 한다. 필요이상으로 자연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이 자연에게 되돌려 주는 것은 고작 죽은 시체뿐다. 시체는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역할을 멈추었을 때의 모습이다. 그 쓸모없는 시체를 수만 종의 미생물이 달라붙어 분해를 거듭하여 흙이란 이름으로 되돌려준다. 그 때서야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흔히 불교에서 말하는 피와 땀은 물이 되고 뼈와 머리카락은 흙이 되며 몸의 열기는 바람이 된다는 이야기다.
이곳저곳에서 지구가 아파서 못살겠다고 몸을 뒤틀어 지진과 해일이 일어나고 있다. 미 대륙에서는 폭염으로 인명을 빼앗아 가고, 지금 중국과 우리나라는 여름 집중호우가 전국을 쓸고 있다. 지구가 분노를 했다. 자연의 슬픈 눈물이 홍수가 되어 흐른다.
인간이 가해자가 되어 자연에게 휘두른 폭력은 부메랑이 되어 우리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세제로 오염된 물을 다시 약을 넣어 정화시켜 가정으로 보내지니, 생수를 먹겠다고 발 빠른 행동을 하지만 , 과일이나 채소를 닦을 때 달라붙어 몸속으로 들어가 인체를 공격하고 있다. 그 몸을 고치겠다고 병원으로 달려가니 병원은 공룡이 되어 헉헉거린다. 사람들은 병원비를 충당하기 위하여 지식을 팔고, 물건을 팔기 위하여 자꾸만 거리로 나선다. 기업은 더 많은 소비재를 만들어낸다.
우리 생활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아닌, 물질에 대한 끊임없는 욕망을 키운다면 물도 공기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는 지구라는 감옥에 갇힐 것이다. 세계적으로 피부암환자가 급속히 늘고 있다고 하니, 머지않아 토끼 같은 우리아이들이 지하도시를 만들거나, 굴속으로 들어가 고려장신세가 될지 어찌 알겠는가.
인간은 자연의 이단자라는 누명을 벗기 위해서는 우주와 생명의 질서를 깨는 행위를 생활주변에서부터 줄여야 한다. 일본의 원주민중 하나인 아이누 족처럼 풀 ,물, 바위 등 모든 사물을 신성시하여 푸성귀 한 쪼가리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자연의 이단자인 인간이 욕망을 앞세워 자연을 지배하고 장악하면 할수록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더욱 소외되어 영원히 이단자라는 누명을 벗지 못할 것이다. 저 나무숲의 어우러짐처럼 자연과 어깨동무를 해야 한다.
황정순 수필가, 충남 보령 출생 수필시대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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