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창부수(夫唱婦隨)
金寧順
추운 날씨였지만 투표개시 시간에 맞추어 일찍 나섰다. 기르는 개도 데리고 갔는데, 차 안에 혼자 떼어놓고 갈 수가 없어 교대로 투표하기로 하고 안고 갔다.
투표장내 한 쪽 구석에서 기다리는 나의 모습은 벌 받느라 서 있는 초등학생과 흡사하였다. 나는 투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순서를 눈으로 익혔다. 그러는 사이에 남편이 투표를 마치고 다가와 코-트를 벌려 품을 펼친다. 그 품 안에 ‘다나’를 인계하고 자신만만한 걸음으로 선관위 사람의 책상으로 갔다. 화살표에 따라 차례차례 갔더니 마지막에 투표용지를 준다. 그 곳에 줄줄이 적혀 있는 정당과 출마자의 이름을 보고는 '아차' 했다. 나는 기표소로 들어가지 않고 교실 구석에서 개를 안고 서 있는 남편에게로 가서 물었다.
여성들의 정치 참여권을 위해 애 써 오신 분들께는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하지만, 한 번도 내 판단으로 투표한 일이 없다. 투표 직전에 남편에게 마음에 둔 후보를 묻는다. 오늘은 개 때문에 신경을 썼고, 깜깜한 곳에서 주차하느라 산만하여 미리 묻지 못 했다. 대강 짐작은 했지만 밤사이에 남편의 생각이 바뀌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몇 번에 찍었어요?"
" X 번, OOO. "
말로만 해도 알아들을 수 있는데 손가락까지 펴 보인다.
남편은 성격이 부드러운 사람인데, 선거 때만 되면 격렬한 사람으로 바뀐다. 뉴-스에서 입후보자들의 얼굴만 나와도 흥분한다. 선거를 며칠 앞두게 되면 나는 며느리에게 미리 전화를 한다.
"아버님이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으시거든 네 생각은 말하지 말고 ‘누구를 찍을까요?’ 라고 말해 라. 너와 다르더라도 말씀만 듣고 있다가 찍을 때는 너의 뜻대로 해라"
공교롭게도 며느리의 지지자와 시아버지의 지지자는 번번이 다르다. 피차간에 자기 쪽으로 일치시키려 애 쓰지 않도록 미리 손을 써 놓는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한 표라도 다른 후보에게 가는 것은 안타까워한다. 그대가 원한다면 뭔 들 못 해 주랴. 나의 한 표를 남편을 위해 행사해 왔다. 선거결과는 국가발전에 영향이 크다. 앞으로는 메스컴과 후보들의 정견 발표에 깊은 관심을 가지며, 부부대화를 통한 정확한 분별력을 기르리라. 물어서 투표하는 추종자(追從者)에서 벗어나, 똑똑한 동반자(同伴者)가 되어 성숙된 선거를 하겠다.
아무리 부부이지만 나와 남편은 별개체이다. 생각이 다르고 습관이 다르므로 때로는 서로 어긋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자면 남편과 달리 나는 전화통화량이 많다. 쓸데없는 통화는 아니었고 남편 곁에서 통화하지도 않았는데, 통신요금 숫자에 고개를 들지 못 한다. 그렇다 해서 전화를 걸지 않고 살 수는 없다. 마음이 헛헛할 때에는 생각나는 사람에게 걸고, 친지가 삶의 무게에 짓눌린 것을 알면 다이알을 누른다. 그런 통화는 생각보다 길어진다. 고심(苦心)끝에 전화요금 선불카드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용돈금액은 매월 정해져 있으니 선불카드를 사면 다른 지출은 조절해야 한다. 남편은 이번 월말에도 통장의 자동이체 지출 란을 챙겨보겠지. 확 줄은 전화요금을 보면, ‘우리 마누라, 내 말 참 잘 듣네’라며 앞가슴을 쑥 내밀지 않을까. 이런 경우를 놓고 누군가가 잘도 말했다.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표현으로.
부부가 서로 다른 부분에서 나에게 맞추어주기를 요구하면 불협화음만 커진다. 내가 다가서고, 내가 변하는 것이 쉽지 상대를 변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모난 모양에다 사각형을 틀어넣기는 어려워, 억지로 맞출 수는 없다. 우리는 비슷한 사람이 만난 것을 감사히 생각하며, 지아비의 노래에 장단을 맞추며 살으련다. 남편이 좋은 노래를 가려 부르도록 돕고, 가락과 장단이 맞지 않을 경우에는 변주곡(變奏曲)으로 조율(調律)하며 맞추어 가리라.
<2007년 대통령 선거 날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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