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을 타고
鄭 木 日
김포공항에서 전철 5호선을 타고 시내로 향한다.
종로 부근까지 가는데 대략 1시간, 나는 사람 구경을 즐긴다. 사람 구경이라니, 무슨 말이냐고 반문할지 몰라도, 사람들이 거울을 보며 화장과 단장을 하고 옷차림에 신경을 쓰면서 생활하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타인들에게 보이고 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화장품과 향수, 머리 스타일, 구두, 입술 루즈 등의 모양. 빛깔. 향기 등이 다르며, 그야말로 생긴 대로 각양각색이다. 이 세상에 똑 같은 사람이 없듯이 치장도 모두 다르다. 군인, 경찰 등 제복을 입은 경우라도 용모와 신장 등이 다르기에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서대문역을 출발할 때, 앞쪽으로 모두 7명의 여인들만이 앉았다. 앞에 앉은 7명의 여인들의 모습을 살펴본다.
(1) 첫 번째 여자: 30대 후반, 흰색 점퍼, 찢어진 청바지, 외국인(백인), 노란 머리. 키 1m 68㎝정도, 비만하지 않고 풍만함,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호기심 많은 표정으로 전철내의 사람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
(2) 두 번째 여자: 30대 초반, 검은 스웨터에 검은 바지, 중키에 긴 머리, 안경, 마른 몸매, 신경질적인 인상, 책을 읽고 있다.
(3) 세 번째 여자: 40대 초반, 긴 머리에 검은 리본. 회색빛 점퍼, 빨간 핸드백, 뾰족 구두, 양팔을 끼고 멍한 눈을 끔뻑거리고 있다. 얼굴이 게란형이고 무표정하다.
(4) 네 번째 여자: 50대 중반, 안경, 샌들 밖으로 발가락 좌우 두 발가락에 푸른색 매니큐어를 칠함, 머리를 벽에 붙이고 눈을 감았다 뜨곤 함.
(5) 다섯 번째 여자: 60대 초반, 비만에 가까운 뚱뚱한 몸매, 초록빛 원피스, 나비 머리핀, 가방을 연상시키는 흰 핸드백, 고개를 좌우 앞뒤로 흔들며 꾸벅꾸벅 졸고 있다. 내일 곳을 지나치지 않을지 모른다.
(6) 여섯 번째 여자: 30대 후반, 하얀 피부, 귀걸이. 목걸이. 팔찌 착용. 브라운 스웨터와 짧은 치마, 다리를 꼬고 앉아 핸드폰을 받고 있다. 눈을 흘기며 소리내 웃기도 한다.
(7) 일곱 번째 여자: 30대 중반, 보랏빛 옷, 청바지, 단화 신음, 갸름한 형, 짧은 머리. 긴 목거리를 칭칭 감고 있음.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는 표정.
7명 중 30대가 4명, 40대가 1명, 50대가 1명, 60대가 1명이다. 여인의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에 속하고, 실제 나이를 알아차리기도 어려우나, 첫눈으로 비춰지는 연륜은 어쩔 도리가 없는 게 아닌가.
7명의 여인들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공교롭게도 한 시■공간에 나란히 앉아 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함께 앉아 있다. 서로 아는 사람들이 없는 모양인지 대화가 없다. 각양각색의 모습처럼 삶도 그러할 것이다. 껌을 씹고, 책보고, 잠자고, 졸고, 생각에 잠기면서 일생의 한 순간을 보내고 있다.
신발들의 모양도 7인 7색이다. 센들 신발, 뾰족 구두, 단화, 굽이 높은 구두 등이며, 청바지도 찢어진 것이 있는가 하면, 색깔이 바래진 것, 선명한 것도 있다. 액세서리 착용의 모습도 귀걸이 3명, 목걸이 1명, 머리핀 2명, 목도리를 한 여인도 있다.
(1)의 여자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혼자 빙그레 웃는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어색해서 웃는 것일까. 윙크도 호의도 아닌,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의식하고서 그 쪽에서도 나를 구경(?) 하는 것일까. 어느 나라 사람이며, 서울엔 왜 온 것일까?
(5)의 여자가 좌우로 고개를 끄떡거리고 깊은 잠에 빠져 있다.
(4)의 여자가 무감각하게 상관하지 않는다. 무의식 하다.
(6)의 여자는 자신의 몸에 닿을세라 옆으로 목을 비키며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여간 신경이 쓰여지지 않는 듯 불편한 인상이다.
(2)의 여자는 독서 중이다. 무슨 책을 읽고 있을까.
오른 팔이 절단된 60대의 장애인이 지나가면서 쪽지 한 장씩을 승객들의 무릎 위에 놓는다. 쪽지를 배부하는 동작이 민첩하다. 전철 안에 미묘한 심리가 흐르는 것을 감지한다. 갑자기 눈을 감는 사람도 있고, 애써 무감각하게 심드렁해 지는 표정도 있다. 쪽지를 읽어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자신의 처지에 대한 하소연과 동정을 바라는 내용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7인의 여자들은 눈을 감고 있거나 양팔을 끼고 있을 뿐이다.
(3)의 여자 무릎 위에 놓인 쪽지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2)의 여자는 읽던 책을 덮고 자는 척 눈을 감는다.
60대의 장애인이 쪽지를 회수해 가도 누구 한 사람은 돈을 건네지 않는다. 자주 겪는 일이어서 모두 예사로운가보다.
2003년 9월 27일 토요일 오전 11시 30분, 상일동 행 5호선 전철이 서대문역을 떠날 무렵의 앞좌석에 앉은 여자들을 보고 있다. ‘관찰한다’ ‘훑어본다’ ‘살펴본다’ ‘바라본다’에서 어느 것도 적절한 게 없다. ‘구경한다’가 더 유사한 말일 듯싶다. 여자들은 나와 무관한 사람들이다.
광화문 역에서 (3) (6)의 여자가 내리고 나는 종로 역에서 내렸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만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 스쳐가기도 한다. 누군지 모르게 한 시■공간에 있다가도 의식 없이 흩어지곤 한다. 삶도 인생도 한 순간 지내다 열차를 내리는 것처럼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더러는 인연이 되기도 하고, 모르게 지나가기도 한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들은 스쳐 가는 구름처럼, 바람처럼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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