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필문학의
해학적 기교, 그 구체화
한상렬 / 문학평론가. hsy943@hanmail.net
수필가.문학평론가
한국문인협회 이사. 『수필시대』주간
강남문화원 문예창작 강사. 현대수필창작아카데미 대표
저서에 수필집 《미로찾기》외, 문학평론집 《좋은 수필, 그 외줄타기》 등 60여 권
한국문학비평가협회문학상, 신곡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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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수필문학에서의 해학과
풍자
수필문학은 그게 그 이야기이고 도대체 재미가 없어 읽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지 않는다,라고 비난하는 독자가 없지 않다.
과연 그러한가. 한 마디로 수필을 수필답게 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해학이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수필은 대체로 선비의
문학으로 여겨 수필의 순수를 지향하려고 노력해 왔다. 게다가 수필의 속성은 일상성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이듯 보편성과
상식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 지금까지 수필의 정의를 “사전에 계획 없이 어떠한 형식에 구애를 받지 않고 자신의 느낌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산문
양식의 장르로 무형식의 형식을 가진 시도로서 비교적 짧으며 개인적이고 서정적인 특성을 갖는 산문이다.” 정도로 이해하여 왔다. 이런 수필문학에
대한 몰이해나 왜곡이 적지 아니 창작과정에 오류를 범해오지 않았나 싶다.
물론 일반적 경향으로 수필의 형식은 다양하여 일기문, 서간문, 감상문, 기행문 등을 망라하며 그 주관적 구체성으로 인해
1인칭 시점의 문학, 자기 고백적 문학, 자기 관조의 문학, 대우성의 문학 등으로 불리어 왔다. 이는 허구에 의해 구축된 소설과 달리 내용에
있어서 실제 자기 체험의 신변잡사를 중심으로 창작되기 때문에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소설보다 더 진한 감동과 감화를 주기에 충분한 문학 양식이다.
이런 수필문학의 특성은 주관적이고 감상적이며 개인적이고 특수적 특성을 지니고 있어 ‘에세이’보다는 ‘미셀라니’에 보다 가까운 장르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
그러므로 수필은 일단 재미있는 글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성립되며, 그런 글이어야 독자의 가슴에 닿아 감동을 줄 수 있으며,
읽힐 만한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겠다. 부담 없이 읽힐 수 있는 글, 여기에 수필문학이 지닌 해학諧謔적 기교의 특성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수필문학의 해학은 곧 유머humor를
지칭한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것이 아니어서 풍자적 요소를 지니는 경우가 많다. 일반적으로 풍자는 독설毒舌적 요소를 지니고 비판적 의도를 은연 중, 내포하게 된다. 이에 비해 해학은 단순한
장난기 같은 익살을 의미한다. 풍자는 여유 있는 우월한 태도에서 상대방을 우습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한다. 이 경우 박용주는
<해학의 제 형상과 방법>에서 예를 들어 역설, 아이러니, 과장, 축소 등 모두 ‘웃기는’ 방법과 해학과 기지機智:wit 같은 웃기는 말투가 다 동원된다고 보고 있다.
해학이란 용어는 이와 대조되는 기지라는 용어와 붙어 다니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해학이 성격적 기질임에 비하여 기지는
지적이라 할 수 있다. 해학이 태도, 동작, 표정, 말씨 등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반면에, 기지는 언어적 표현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또
해학이 타인에 대하여 선의善意를 갖고 그 약점이나 실수, 부족을 같이 즐겁게
시인是認하는 공감적인 태도임에 비하여, 기지는 서로 다른 사물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유사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경구나 격언 같은 압축되고 정리된 말로 표현하는 지적 능력에 해당한다.(이상섭의 《문학비평용어사전》참조)
이렇게 해학과 풍자는 독립적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도 작품에서는 흔히 서로 융합하여 나타나기가 일쑤이다. 풍자에 해학이
융합하지 않으면 풍자는 격을 잃는 비판조가 되기가 쉽다고 윤모촌은 《수필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서 말하고 있다.
어떻든 해학은 ‘품위 있는 익살’로 품위가 강조되며 수필문학에서의 해학은 다분히 이런 풍자적 요소와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다.
2. 수필문학에서의 해학, 그 구체화
수필에서의 해학은 결코 무의미한 익살과 유머라는 저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 속에 언제나 페이소스憐憫적인 요소가 깃든 해학이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찰스･램의 <돼지구이를
논함>, <나는 바보를 사랑한다>, <굴뚝청소부 예찬>등의 수필이나, 쉬우드･안더슨의 작품에서 보이는 “보조개에
눈물이 보인다”라는 수필의 내용과 제목에서 보이는 문학적 기교는 시사하는 바 크다.
어느 날 아침 돼지치기 호오티란 사람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돼지에게 먹일 도토리를 주워오려고 숲 속으로 가고, 오막살이집은 큰 아들인 보보에게 지키라고 했는데, 그 녀석이 아주 칠뜨기여서 고
또래의 아이 녀석들이 좋아하는 불장난을 하다 불똥을 짚단에 튀게 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불이 확 퍼져, 그 알량한 오두막집을 홀딱 불살라버리니,
결국 한 줌 안 되는 재만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 오두막(건물이라고는 하지만 노아의 홍수 이전의 한심스런 임시 움막쯤이라고나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과 운명을 같이해서, 집보다 더 중요한 것, 즉 갓 낳은 한배의 예쁜 돼지 새끼 아홉 마리도 모두 요절 당하고 만 것이다.
(중략)
녀석은 어떻게 생각해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에 돼지한테 무슨 생명의 기운이 있나싶어, 몸을 굽혀 만져 보았다. 그런데 녀석은 손가락을 데서 그 덴 손가락을 식힐 양으로 밥통 마냥
그것을 입으로 가져갔던 것이다. 불에 그슬린 가죽 조각이 조금 손가락에 묻어 있다가, 난생 처음 그 맛을 보게 되었다. (그 바삭바삭하는
돼지가죽 맛을!) 또 다시 녀석은 돼지를 만지고 주물럭거렸다. 이번에는 뭐 별로 데지도 않았는데, 일종의 버릇처럼 손가락을 핥아대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 느려터진 둔한 골통이 진상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게 냄새를 풍긴 것이 다름 아닌 돼지였다는 것과 그렇게 맛이 좋았던 것도 돼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략)
그러자 녀석은 제 처지를 어느 정도 알아차리게
되고,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가게 되었다.
“이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아, 대체 무엇을 해
처먹는 게냐? 개망나니 버릇을 못 버리고 집을 세 채씩이나 불살라 먹고도 모자라니? 이 벼락을 맞을 놈! 그런데 네 놈이 불을 처먹고 있는 게
아니냐? 내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거기에서 처먹는 게 뭐냔 말이냐!”
“아이고, 아버지. 돼지예유. 돼지! 와서 불탄
맛이 얼마나 좋은지 맛이나 좀 보시라니까유.”
호오티의 양쪽 귀는 공포로 왜왱 울렸다. 그는
아들을 저주하고, 불에 탄 돼지를 먹는 자식을 낳은 자신을 또한 저주했다.
-찰스･램, <돼지구이를
논함>에서
이 수필은 돼지구이의 맛을 모르는 어린 소년 보보가 오두막집을 지키던 중, 불장난으로 인해 몽땅 태워버린 사건을 다루고
있다. 문제는 그 오두막집보다 소중히 여기는 돼지새끼 아홉 마리를 모두 태워 죽이고만 일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이상한 냄새를 맡게 된 소년
보보는 검은 재 속에서 돼지가죽 냄새를 맡기 시작하여 끝내는 생전 처음으로 돼지고기의 맛에 흠뻑 빠져들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 이를
알고 달려온 그의 아버지 호오티는 그런 아들을 보고 달려들어 몽둥이찜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돼지구이 맛에 길들여진 보보는 끄떡하지
않고 먹는 일을 계속하고 호오티의 매질도 멈추어지지 않는다.
보보가 돼지고기에서 떨어진 후 두 사람 사이에 나눈 대화가 아주 해학적이면서도 페이소스를 느끼게 한다. “네 놈이 불을
처먹고 있는 게 아니냐?” 그러자 아들 보보의 대답이 걸작이다. “아이고, 아버지. 돼지예유. 돼지! 와서 불탄 돼지맛이 얼마나 좋은지 맛이나
좀 보시라나까유.” 해학적 수필의 극치라 할만하다.
이런 해학적 수필은 <굴뚝 청소부 예찬>이나 영국의 수필가 가디너의 수필 <모자帽子 철학>에서도 매 한 가지로 나타난다.
다음으로 정호경의 수필 <낭패기狼狽記>,
라대곤의 <배보다 배꼽이>, <소리 없는 눈물> 그리고 정명숙의 <재치와 여유>를 통해 수필문학에서의 해학적
특질이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정호경 수필의 해학적 톤은 정직하다. 그는 부끄럼을 감추고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작가 정신. 이를 유아적 순진성이라 하면 어떠할까. 아니 무엇에고 꺼릴 바 없는 자연 그대로 유로된 정서의 표백이다. 그래서 그는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낙화유수’의 고민>이 그렇고, <낭패기狼狽記>는 더욱 그러하다. 노년의 비애랄까. ‘정년퇴임꾼’이라고 했다.
<‘낙화유수’의 고민>의 화소는 ‘소변’이다. 화장실서도 그는 엉뚱한 생각게 잠긴다. 글을 쓰다가 풀리지 않은 대목이라든가, 친구와
말다툼한 일 등의 잡념들이다. 그럴 때마다 일을 보고 나오면 으레 바지 앞부분이 흥건히 젖는다고 했다. “물줄기가 워낙 약하다 보니 그야말로
‘이 강산 낙화유수(落花流水)’격이 되고 만다. 바짓가랑이를 타고 소리 없이 조용히 흘러내리는 것이 요즘의 나의 특징이다”라고 했다. 보다 더
해학적인 장면은 다음에 이어진다. 그가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기발한 생각이다. “나는 변기에 차분히 앉아 소피所避를 본다. 남 보기에도 자세가 점잖아 좋거니와 안정감이 있어 무엇보다도 마음에 든다.
이런 때 명상하는 자세로 앉아 시조 한 수쯤 읊어도 무방하리라. 이쯤 되고 보면 그야말로 달관한 인생이 아닐까. “나이 드신 분들은 나의 이
방법을 참고하기 바란다.”라는 결미에 이르면 해학은 극치에 이른다.
<낭패기狼狽記>를 보자. 이 글의 서두는
주제의 효과적 전달을 위한 기법인 수미쌍관법으로부터 시작된다. “내 인생의 경우, 수미쌍관법이란 결구법은 이들과 다를 바 없지만 삶의 내용은
그다지 향기롭지를 못했음에 슬픈 마음 금할 길 없어 염치를 무릅쓰고 여기 몇 글자를 적고자 한다.”는 자기변호의 언술을 시작으로 하여 이 수필은
몇 도막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앞의 두 예화는 대변과 뒷간과 관련한 것으로, 어린 시절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일이다. 화장실
문화가 오늘과 판이했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나 경험함직한 이야기들. 그런데, 정작 포복할 일은 세 번째의 에피소드다. 정년퇴임 후라고 했다.
결혼식장에 다녀오던 그는 지하철 안에서 변의便意를 느낀다.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극적으로 진행되는 대담한 노출은 페이소스와 해학을 동반한다.
문방구를 찾아 책봉투를 사서 집어 놓고 보니 양쪽
볼이 불룩해서 반반하게 할 양으로 손바닥을 받쳐 살짝 눌렀더니 노오란 반죽이 치약처럼 봉투 주둥이로 올라왔다. 한 장을 더 사서 거꾸로 뒤집어
씌웠더니 안전했다. 하체에 붙어 끈적거리는 것을 말리기 위해 한 시간 가량을 돌아다닌 뒤 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승객들 중에 누구 하나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의 주인공을 탐색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불룩한 책봉투를 들고 집에 들어서니 읽지도 않는 책을 또 샀느냐는 아내의 핀잔이었다.
―정호경, <낭패기>에서
이쯤 되면 그의 수필이 얼마나 정직한가를 알 수 있다. 보태거나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 정신.
윤재근의 말과 같이 “그는 수필을 정직하게 만들어내면서도 부드러운 호소력을 지니고 그 호소력은 전통적 사고에 뿌리를 두고 현대인의 삶을 가치
있게 하려고 사물을 관찰하고 그 관찰이 인간의 삶을 새롭게 체험하게 하는 성찰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점이 그의 수필을 주목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했듯, 그는 애써 점잖은 척 가식의 옷을 입지 아니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소재와 화소들이 독자의 편에서 전혀 거부감을 느끼게
하지 않고 오히려 적당한 페이소스와 골계미를 느끼게 한다는 데에 있다.
이런 경향은 라대곤 수필에서도 두드러진다. 그의 수필적 포즈는 해학과 풍자이다. “밤이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소설을
써야 하는 강박관념 때문이었을까? 밥맛도 없고 빈혈처럼 현기증이 오면서 눈앞이 허옇게 비어버리는 것이다. 그 빈 공간의 어둠 속으로 형의 모습이
보였다. 살아 있을 때의 순한 모습이었다. 소설이 되도록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하는 것일 것이다. 한데 나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에게 있어
소설쓰기는 삶을 이어주는 절체절명 구원의 여신이었다.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밤을 새며 집필한 원고지가 편집장에 쓰레기통을 들어가는
순간, 그는 다시는 소설을 쓰지 않겠노라 했다. 그런 그가 수필을 창작한 수필가가 되었고, 드디어 소설가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의 수필쓰기는
바로 소설 쓰기에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다 해도 좋겠다. <배보다 배꼽이>, 아니 그의 대부분 작품이 서사적 바탕 위에서 진행된다.
해학과 풍자는 이런 그의 소설적 기교에서 나오는 지도 모른다.
어느 날 그 작은 동네에 간판이 하나 붙었다.
뉴욕식당이다. 자장면 집에 엉뚱하게 미국 간판이 걸린 것이다. 그것도 빨간 페인트칠을 한 거창하게 큰 간판이었다. 집에 간판이 걸린 것이 아니고
간판에 집이 매달린 형국이었다. 바람이 불면 간판이 날라 갈 것처럼 위험했는데도 시비하는 사람조차 없었다.
자장면 값이 비싼 것도 아니고 특별히 맛이 좋은
것도 아니었다. 뉴욕이라는 이름 때문이었을까? 큰 간판 밑에 앉아 있으면 우쭐해져서 일까?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라대곤, <배보다 배꼽이>에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간판. 휴전선 근방 민가라고 해야 몇 채 되지도 않는 동네 중국음식점에 내걸린 간판은 이름 하여
거창하게도 ‘뉴욕식당’이다. 상호를 지어달라기에 ‘우리반점’이라 했건만, 주방장은 한사코 ‘국제’를 들먹이더니, 기어코 내건 것이
‘뉴욕식당’이다. 가게 지붕을 몽땅 가릴 만큼의 큰 상호. 화소 자체가 해학적이다. 상호란 필경 주변 공간이나 지역적 정서 등에 걸맞아야 마땅할
일이건만 그게 아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호의 비대칭, 비정상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류同類의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비판적 칼날을 숨긴 우회적 비꼼이요. 읽는 이로 하여금 자연
웃음을 유발하게 하는 해학적 장면이다.
이보다 더 포복절도抱腹絶倒할 장면은 바로 수필
<소리 없는 눈물>이다. 해학과 아이러니가 직조된 장면이 연출된다. 담임선생님의 건강이 나빠져 급작스레 학교를 그만두신다는 연락이
왔다. 새로 오실 선생님이 누굴까 하고 걱정을 하는 순간 옆에 아이가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울음이 전달되었지만 화자는 절박했다. “울지
않는 것은 나 하나뿐이다.” 그 순간
에라 모르겠다. 앙! 하고 억지로 울기 시작했다.
선생님 때문에 나도 슬퍼서 운다. 교무실까지 들리라고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악을 썼다. 질금거리면서 울던 아이들이 이번에는 나를 따라
책상을 치다 못해 발바닥으로 교실 바닥을 쿵쾅거리면서 목청껏 소리를 내어 울었다. 한데 이상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처음에는 눈에 침을 바르며
우는 흉내만 냈을 뿐인데 이게 웬일인가. 정말 눈물이 나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을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콧물까지 쏟아져 나온다. 결코 선생님의 퇴임 때문이 아니었다. 옆에 아이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우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큰일 났다는 강박감과
함께 알 수 없는 슬픔으로 울음을 그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때 아닌 울음에 놀라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달려왔다. 당연히 울음소리는 더욱
커졌다. 내용을 알고 나신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의 눈물은 거짓이다. 진정한 슬픔은 소리 없는 눈물이다. 듣는 순간 어린 마음이지만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책상을 치던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말았다.
-라대곤, <소리 없는 눈물>에서
무엇을 더 말하랴. 수필을 읽는 재미를 만끽滿喫하게
한다. 이 점이 라대곤 수필의 최대의 강점일 것이다. 독자를 포복하게 하는 즐거움이 그의 수필의 미학일 것이다. 해학은 웃음이자, 긴장의
해소요. 해결의 장이다. 독자는 그의 수필에서 해학과 풍자의 묘미를 만끽하게 된다.
문학작품에서의 재미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독자들의 읽기를 상정하지 않는 창작이란 자기기만이요, 독자의 무시일 수도
있다. 현대와 같은 다매체 시대에는 더욱 그러하다. 가상현실이 주도하는 상상력의 개발을 위해서는 독자에게 다가가는 문학화가 필요하다. 문학작품의
재미는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일 것이다. 여기서 수필문학의 기지와 해학이란 지적 요소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일상의 작은
이야기에서도 파안대소할 수 있는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삶은 그만큼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정명숙 수필의 경우를 보자. 이 수필의 단초는 남편에게 배달된 ‘남대문 입납’이란 편지이다. 발신자가 집주소를 쓴다는 게
‘서울 남대문 입납’이라 하였음에도 편지가 유실되지 않고 배달되었다는 이야기에서 시작하고 있다. 말할 것도 없이 그의 남편 조흔파 선생이 주소가
불분명해도 배달될 정도의 유명인인 까닭이다. 남대문이 열렸다는 희화적인 장면을 유도하기 위해 남대문이란 화소를 끌어낸 것이다.
남자들이라면 일을 보고 내렸던 자크를 원상회복 시킨다. 그로 인해 웃지못할 일들이 더러 일어나곤 한다.
요즘 나는 전철을 많이 타고 다니는데 어느 날
중년남성이 남대문이 열린 채 점잖게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아마 술 한 잔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중이었던 듯했다.
전차 속은 마주 앉게 되어 있어서 이외로 그런
남성을 보게 되는 날이 더러 있다. 고단한 중년을 대변하듯 남대문을 여는 경우가 젊은이 보다 중년층에 더 많다 한다. 바로 옆 자리에 앉지 않은
한 알려 줄 수도 없어 당혹스러워지면 슬쩍 자리를 옮기고 만다.
“남대문이 열렸습니다.”
할 수도 없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눈치도 없이 뒤를 돌아보거나 해서
주위 사람들이 쿡쿡 웃거나 하면 어쩌나,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어제 전차 속에서 남대문을 열어 놓은
채 신문을 읽고 있는 신사가 있었다. 맞은편 사람들이 그것을 보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서 주의 줄 용기와 방법이 없어 못 본 체 얼굴을
돌리거나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몇 정거장 지나는데 건장한 중년남성이 불쑥 그 신사 앞으로 다가가 좀 큰소리로 아는 체를 한다.
“김 과장님 어디 가십니까?”
얼굴을 치켜 든 문제의 사나이는 엉뚱한 물음에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중년남성은 앞을 가로 막으며 허리를 굽혀 아주 작은 소리로 남대문이 열린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제야 알아차린 남성의 얼굴이
좀 달아오르며 태연한 표정으로 슬쩍 신문으로 앞을 가렸다. 그 신사는 신문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이미 남대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정명숙의 <재치와
여유>에서
이 수필은 해학적인 장면 세 개를 에피소드로 병렬시키고 있다. 물론 바지의 자크를 올리지 않은 일로 하여 일어난 해학적
삽화이다.
① 닥터 박 →회진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왠지 허전했다. →가운이 가려 다행이었다. [의학도의 잠 부족에서 온 건망증의
탓이었을 것이다.]
② 전차 속의 중년 남자 → 남대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는 남자→사실을 알려줄 방도가 없어 당혹스러웠다.
③ 전차 속의 신사 →남대문을 열어놓고 신문을 보고 있다. → 건장한 중년 남성이 그에게 아는 체를 하며,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작은 소리로 사실을 알려주었다.
[ 그제야 알아차린 남성의 얼굴이 좀 달아오르며 태연한 표정으로 슬쩍 신문으로 앞을 가렸다. 그 신사는 신문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이미 남대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
중년남성의 재치 있는 순발력과 남대문이 열렸던 사나이의 의연한 태도에서 한국인의 재치와 여유를 확인 할 수 있는 순간을
보며, 나는 오늘 뭔지 모를 흐뭇함을 안고 집으로 돌아 왔다.
구성이 재미있다. ①은 스스로 알고 처리한 경우이니, 남에게 보인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문제는 ②와 ③에 있다.
그러나 ②의 경우에는 어찌 할 방도가 없어 그저 당혹해 했다는 경우이고, ③은 재치 있는 한 남자의 기지에 의해 실수를 수습했다는 이야기이다.
[ ]에 “그 신사는 신문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이미 남대문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라는 언술이 해학적이다. 이어서 화자는 예의 ‘남대문’을
의미화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구성하며 행간에 담겨 있는 긴축적이고 신선한 상상력이 돋보이면서 수필문학이 갖는 해학과 기지 그리고
유머에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머금게 한다. 그러나 그저 그 뿐은 아니다. 일상의 보잘 것 없는 듯 보이는 세사世事에 비판적 시선을 함축함으로써 미적 언어의 미감을 느끼게도 한다. 한국인이 갖는 재치와
여유일 것이다. 미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모습일 것이다.
3. 수필문학에서의 해학, 그 유효함
베르그송은 “유머는 긴장의 해소이며 신경의 완화”라고 한 바 있으며, 카알라일도 “유머란 어떤 사실과 함께 웃는
것”(황소부黃昭夫, 《영미수필의 해학성》, 한국수필 92-여름호)이라 했다.
여기 해학이란 일종의 여유를 가진 웃음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웃음은 우리의 생활에 윤활유가 되어 그 생활을 부드럽게 해 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문학이 현실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는 이치를 상정할 때 분명 여유 있는 웃음을 자아내는 문학적 형상화야말로 수필문학이 지닌 또 다른
얼굴이 아닐까 생각된다.
버나드･ 쇼의 독설적 해학은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미국의 발레리나 이사라･던컨이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자기와 두뇌가 좋은 버나드･쇼가 결혼한다면, 좋은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고 제의한 일이 있었다 한다. 그러자 쇼가 말하길 “만일
그러면 나와 같이 보잘 것 없는 육체와 당신과 같은 어리석은 두뇌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것이오.”라고 응수했다 한다. 이 또한 해학과 풍자가
함께 사용된 예일 것이다.
이와 같이 해학과 풍자는 지적인 면과 정적인 양면성을 갖는다. 지적인 면은 이른바 위트이고 정적인 면은 유머가 된다.
박용주는 이런 수필의 해학은 만화에서 볼 수 있는 극적 대조의 기법으로서 얻어질 때도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극적
반전이 해학성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임어당의 말처럼 해학은 하늘에서 내린 단비처럼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하고 흐뭇한 우애의 분위기 쪽으로 휘몰아
넣게 하는 기법이 된다. 그러나 이런 해학적 기법은 마치 당위정과 같아 그 자체가 우선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수필문학의 표현 기교로 주제
전달의 효과적 방법으로서의 역할로만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해학은 시대의 변화와 민족의 기질이나 문화 환경 등에 따라 그 넓이와 깊이 또 강도가 다르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수필 속에서 해학이 유발하는 잔잔하고 미소 머금은 웃음에서부터 차갑고 냉소적인 눈물의 경우에도 웃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웃음까지를 보게 된다.
(한국수필학회. 수필학 제17집, 200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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