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시대변화를 수용하는 수필문학의 행보
한상렬
순수문학과 정전을 수호하는 고급문화의 십자군들은 대중문화의 침입이 문학의 성지를 위협하고 어문학과의 위기를 초래한다고 개탄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의 위기는 오히려 그러한 폐쇄적 문화귀족주의로부터 비롯된다는 것, 그리고 사실은 성지와 정전의 개방이야말로 어문학과에 활로를 제공해주는 생존의 전략이라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그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단 말인가? 왜 우리는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고, 아직도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와, 철 지난 모더니즘의 패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동아일보, 2000년 5월 25일자 ‘문화갈럼’에서 )
지금 우리는 21세기, 변화에 시대에 살고 있다. 지식, 경험 체계의 엄청난 폭증과 정보화는 우리네의 삶의 의식과 가치마저 흔들어 놓고 있다. 환경오염에 따른 생명의 위기, 인간성의 타락, 물질 만능의 사고, 편리위주의 개인주의적 사고의 팽배는 살되 어떻게 사는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한다. 이제 변화의 물결은 바로 우리들 목전에 와 있다. 하여 삶의 문제는 존재의 규명이라는 수필문학의 지엄한 목표가 되었으며, 문학의 위대한 사명에 눈뜨게 한다. 이런 변화는 새로움이라는 패러다임에 익숙하게 하였다. 오늘의 수필문학이 그 창작상의 변화와 실험을 요구함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게 한다.
문학에 있어 언어의 재현 능력을 믿었던 19세기 리얼리즘의 낙관주의는 20세기에 와 중산층의 가치관을 대변하게 되었고, 낯익은 일상을 묘사하는 관습적인 언어와 문체를 떠나, 참신하고 실험적인 기법으로 낯선 세계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전 근대적인 기법으로는 더 이상 현대의 복합적인 리얼리티를 재현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미래를 전망하면서 20세기의 문학의 조류를 간파한 김성곤은「동아일보」(1999년 12월 16일자)의 <인간과 세상 펜끝의 화두>라는 기고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언명한 바 있다.
20세기 초의 작가들은 외적 현실보다는 내면세계에 주목했고, 내면세계를 묘사하기 위해 ‘의식의 흐름’과 ‘내적 독백’이라는 새로운 창작 기법을 만들어 냈다. 또 리얼리티를 파악하고 재현하는 각기 다른 방법으로 인해 수많은 유파들―예컨대 상징주의, 초현실주의, 다다이즘, 이미지즘, 인상주의, 표현주의, 미래주의 등―이 생겨나게 되었다. 20세기 초반을 장식했던 강력한 문예사조 모더니즘은 그렇게 해서 태동했다.
모더니즘 시대는 조이스, 카프카, 만, 프루스트 또는 릴케, 엘리엇, 파운드 같은 기념비적 소설가들과 시인들을 낳았다. 그러나 낯선 세계에의 탐색, 세련된 실험적 기교, 그리고 심미적 가치의 치중은 모더니즘을 점점 더 대중과 괴리된 엘리트주의, 그리고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로 몰아갔다.
-김성곤, <인간과 세상 펜끝의 화두>에서
여기서 모더니스트들의 예술가는 저속한 사회로부터 소외된 고독한 천재이자, 물질주의와 상업주의에 의해 속절없이 오염되어 가는 순수예술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다. 그들은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초래한 문명의 위기와 고급문화의 위기 속에 괴로워했으며, 예술의 숭엄함과 순수성을 파괴하는 시간의 흐름을 중지시키고 싶어 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나 포크너의 《에밀리를 위한 장미》같은 작품들이 모두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또 자신들의 시대를 혼란스럽고 파편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질서와 총체성을 추구했다. 모더니스트들의 특징이었던 ‘다양성 속의 통일성’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모더니즘은 점차 그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했다. 2차대전이 초래한 전후의 혼란과 황폐는 유럽에서 부조리문학과 실존주의 문학을 꽃피웠고, 지배문화와 지배체제에 대한 실망과 저항은 미국의 비트 운동과 영국의 ‘성난 젊은이들’의 운동을 불러왔다. 그와 같은 새로운 문학사조들이 60년대 진보주의와 맞물리면서, 그 동안 보수주의적 도그마로 경직된 모더니즘은 급속도로 힘을 잃기 시작했다.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가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중요성은 20세기 후반, 인간의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절대적 진리 혹은 중심이라고 믿어온 것들은 사실 지배 문화와 권력이 담합해 만들어 놓은 것일 뿐이며, 따라서 비진리로 분류되어 부당하게 주변부터 밀려난 소수문화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의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한 인식의 전환은 비단 문단이나 학계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 전반을 뒤흔드는 코페리니쿠스적 변화를 초래했다.
총체성의 회복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었던 모더니즘과는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은 총체성의 전체주의적 억압을 경계하며, 무질서와 개체성을 인정했다. 그 결과는 다양성과 복합성multi에 포용이었다.
무엇보다도 20세기 후반을 장식한 가장 커다란 변화는 활자매체에서 영상매체로, 문자 매체에서 전자매체로의 이동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영상과 전자매체에 익숙해져있는 현대인에게는 예전과 같은 호소력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역사상 세대간의 단절이 가장 극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종이 책과 활자매체는 사라지게 될 것이고, 대신 플라스틱 책과 전자매체의 시대가 도래 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전이는 서서히 이루어질 것이며, 그 둘은 당분간 공존할 것이 예상된다.
따라서 변화의 시대에 맞춰 문학도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본질적인 변화를 겪게 될 것이 예상된다. 하여 21세기의 문학은 스스로의 아집과 패각을 깨고, 타 학문 및 타 장르와의 교류와 대화를 활발하게 진행하는 상호작용적interactive복합예술이 될 것이다. 문학과 영상, 문학과 음악, 또는 문학과 미술의 혼합뿐만 아니라, 문학과 과학, 예술과 테크놀러지,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합일 가능성도 문학의 새로운 영역으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이제 문학의 주요 관심사는 생명의 존중, 생태계의 보존, 그리고 인류의 공존 문제가 될 것이다. 인간 중심의 전통적 인본주의는 사라지고 인간이 자연의 일부가 되고 자연과 합일하는 진정한 휴머니즘이 시작될 것이며, 미래의 문학은 개인의 자유와 개체성도 존중하되 인류 절멸을 피하는 공동체 의식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컴퓨터가 주도하는 무제한의 속도에 대한 성찰과 제동의 기능도 수행할 것이다.
이 점에서 이어령은 <밀레니엄 메시지>(2001년 1월 1일, 「동아일보」)에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디지토피아(디지탈과 유토피아의 합성어)의 인터넷은 더욱 더 그러한 변화를 피부로 느끼게 한다. 그 어떤 나라의 권력도 인터넷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 정부도 인터넷의 세계네트워크에 대해서는 경찰국 노릇을 할 수가 없다. 이 사이버 공간을 파괴하려면 지구 전체를 원․수폭으로 폭격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이버 커뮤니티는 국가 단위의 국경에 상관없이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이 자유로 자기 공간을 만들어 가는 신대륙이다. 이 순간에도 인터넷은 하나의 생명체처럼 자기증식 속에서 끝없이 지구로 번져가고 있다. 역사상 어떤 제국도 이렇게 인구가 불어가고 영토를 확대시켜간 얘란 없다.
-이어령, <밀레니엄 메시지>, 2000.1.1
한 마디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21세기는 ‘통제 불능의 시대’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제품의 개념까지도 그 경계가 무너져 전화기에 라디오가 달리고 냉장고에 인터넷이 결합되는 하이브리드 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젓가락이 아니라 포크로 스파게티를 먹는 아이들을 보면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오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스파게티는 국수의 이탈리아의 사양 비전이다. 마르코폴로가 중국에서 가져온 국수에다 미국 신대륙 등 세 대륙의 문화가 한데 합쳐서 얽혀있는 셈이다. 요리를 먹는 방법도 그렇다. 요즘 아이들은 국수 냉면까지도 포크로 먹는다. 그러한 스파게티문화에서 콜라에 밥을 말아 먹기까지 한다. 스파게티문화를 극대화하고 현대화하면 요즘 유행하는 퓨전 메뉴이다. 한식과 양식의 이질적인 요리 시스템을 한데 섞어서 새로운 맛을 창출한다. 그래서 심지어 퓨전Fusion을 미래의 비전Future Vision이라고 한다.
자, 문학으로 돌아가 보자. 로만 야콥슨Roman Jakobson이 고안한 언어적 의사소통의 도식은 다양한 관점을 구별하는데 도움을 준다. 발신자는 수신자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메시지는 언어라는 기호를 사용한다. 메시지는 문맥을 지니며 말, 글, 전화 등의 접촉을 통해 전달된다. 그러나 문학에서는 이런 접촉이 생략될 수 있으므로 다음과 같은 도식에 언어적 기능을 부여하여
지시적
감정적 시 적 함축적
상위 언어적
으로 사용하게 된다고 했다.
러시아의 형식주의는 이런 기교로서의 예술을 취하고 있다. 이들 형식주의자들은 시를 “전적으로 음성적 조직으로 구성된 언어”로 보았다. 즉 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리듬이지만 이가 깨어질 때는 심미적 의미가 생긴다. 따라서 이런 시의 구성적 특성에 맞추려면 실용적 언어가 왜곡되어야만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레이먼 셀던의 《현대문학이론》에서) 쉬클로프스키는 이 점에서 “예술의 기법은 대상을 ‘낯설게’ 만들고, 형식을 어렵게 만들며, 감각작용을 난해하게 만들고, 그것을 길게 연장시키는 데 있다. 왜냐하면 감각작용의 그 자체가 하나의 심미적 목적이며, 따라서 그것은 길제 지연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예술은 대상의 기교성을 경험하는 한 방식이다. 대상, 그 자체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우리의 습관적 감각능력이 문학적 형식의 과정을 거쳐야만 가능해진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시의 경우와 같이 수필문학에서도 이런 낯설게 하기의 묘체가 수필창작에서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런 낯설게 하기의 기교는 시대 변화를 수용하는 수필문학의 행보가 될 것이다.
『수필시대』2009년 11-12월호에 발표한 고은의 시 <눈길>을 수필로 퓨전한 한경화의 수필 <설레는 평화>의 예를 보자.
가위 - 가장자리
포화상태다.
아파트의 베란다 쪽이나 뒤쪽 열린 문으로 물건들이 튀어나갈 것만 같다.
내가 중심에서 끄트머리로 밀려나고 있다는 위기감마저 든다. 그나마 내가 불편해서 일부를 버렸는데도 버린 흔적이 없다.
의도적이거나 강요에 의하지 않으면 버리기도 힘들어 움직였다. 이전에 살던 집이 좁아 보였던 것은 잘 입지 않는 옷, 없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가구, 전자제품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착 덩어리인 물건을 많이 버렸는데도 이사한 집이 꽉 차버렸다. 얼마나 버려야 하나. 그런데도 버린 것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쇼핑을 좋아하는 것도 비록 물건일망정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일 게다. 내가 가진 돈이 곁을 떠나는 것에는 아쉬움이 없는지 내어주고 물건을 사들인다. 비어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성격일까, 아니면 내 허허로운 마음을 물건으로 채우려는 것일까. 비어 있다고 생각한 거실엔 운동기구가 하나씩 채워지고 있다. ‘보’를 향한 절절함은 뒤로 한 채 ‘바위’가 슬몃슬몃 고개를 들고 있다.
바위 - 바라보노라
바위는 욕심의 응결체다.
놓아야 하는데, 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집착, 손안의 것에 대한 욕심.
사람이든, 물건이든 들어온 것은 놓아주기가 힘들다. 꽉 움켜진 나의 성향이 게임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나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남을 이기지 못한다.
문우들끼리 책을 교환해 보기로 한 날, 가져온 책들을 펼쳐놓고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먼저 고르기 위해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기로 했다. 이기게 해 달라고 속으로 기도했다. 아니나 다를까 졌다. 주먹을 쥔 내 손이 눈에 들어온다.
친구와 게임 연습을 해보았다. 여러 번 졌다. 가위바위보 하면 대부분 보를 많이 내는데, 바위를 자주 내니 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내 것에 대한 미련이 많고, 손을 펼쳤을 때의 허허로움과 잃어버릴 것에 대한 두려움이 주먹을 꽉 쥐게 하여 바위를 내는 것은 아닐까.
보 - 보이지 않는 움직임
지혜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움켜진 주먹을 조금씩 풀어 ‘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헌 옷을 하나 버릴 때 새 옷 하나가 들어갈 수 있듯, 메일함을 비워야 새로운 소식을 접할 수 있듯,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려면 주먹을 펴야 한다. 주먹을 펴지 않으면 그 안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알 수가 없고, 빛이 들어갈 수도 없다. 바위보다는 ‘보’가 공간적으로도 더 많이 채울 수 있고, 가벼움으로 어디든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날아갈 수도 있다.
눈에 보이고 만져진다고 해서 영원히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실체든 하나로 고정된 것은 없는데 잠깐의 호사에 눈이 먼다. 형상은 있되 실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 불교의 공空사상을 보더라도, 둘러싼 것들에 대한 집착은 버려야 한다.
게임에서 바위도 막상 손을 펴보면 아무것도 없다. 주먹은 빛을 향한 그리움만 간직한 채, 남을 이기려는 이기심과 욕심이 만들어 낸 형상에 불과하다. 그것만 버리면 더 많은 온 우주를 껴안을 수 있는 ‘보’가 될 수 있다. 오래된 장벽일수록 허물어뜨리기는 힘들어진다. 고여 있는 것은 썩는 일과 먼지만 남긴다. 더 이상 부패하기 전에 버리자. 그것만이 내가 가벼워지는 길이고, ‘보’를 향해 한걸음 내딛는 길이다.
가벼움과 채울 수 있는 가능성, 보자기는 공空이다.
-한경화, <설레는 평화> 전문
이어령은 “20세기는 남극이나 북극만 빼놓고 전 지구를 국가로 덮었던 세기라고 한다. 그러나 21세기는 국경이 무너지고 국민국가가 서서히 해체되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현상은 이미 구소련의 붕괴 과정에서 나타났으며 유럽의 EU 통합국가 형태로 그 징조를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충만과 해체. 포화와 공간에의 열망. 이제 지난 것들을 모두 덮어버리는 눈 내리는 세상은 설레는 평화다. 그 설레는 평화를 화자는 ‘가위, 바위, 보’로, ‘가장자리-바라보노라-보이지 않는 움직임’으로 퓨전함으로써 평화에 대한 설레임을 형상화하고 있다.
‘가위’는 가장자리요, 밀려남이요, 비워내기이다. ‘보’를 향한 절절함이 있어도 ‘바위’가 슬며시 고개를 든다. 마음으론 비워내기를 소망하여도 사노라면 그 욕심 비우기가 그리 녹록치 않다. 자칫 중심에서 이탈할 듯한 위기감이 팽배한다. 가장자리를 자르기로 한다. 그러나 흔적이 없다. 집착이다. 버려야하건만 버리지 못하는 이 인간적 갈등의 빌미다. 아니, 단서요, 발단이다.
‘바위’는 욕심의 결정체다. 집착이다. 손 안의 것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적 욕망. 그 집착에서 자유롭길 원하지만, 사노라면 매양 욕심은 화자를 사로잡는다. 가위바위보 게임에서 그는 으레 주먹을 꽉 쥔다. 바위다. 눈이 내려 설레는 평화를 맛보고자 하지만, 집착은 언제나 그렇듯 화자를 구속한다. 그런 자아를 성찰하는 ‘바라보노라’의 심상한 의미화이다.
‘보’는 채움에 대한 열망을 지닌다. 채움에 대한 열망과 가벼움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칠 가능성을 갖게 한다. 그러나 형상은 있되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空이다. 그래 온 우주를 껴안을 수 있는 ‘보’에의 희원. 그러나 오래된 장벽일수록 허물어뜨리기는 용이하지 않다. 하여 가벼움과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의 보자기, 공空에 대한 소망을 화자는 독자에게 메시지로 전달하고 있다.
한 편의 시를 통해 화자가 각성한 사물에 대한 관찰과 통찰, 해석과 의미화가 절묘하게 이종결합하고 있다. 통상적 관념의 세계를 벗어나 그만의 예민한 수필의 ‘눈’으로 시선의 변화를 가져온 수필이다. 여기 어디 관념이나 일상의 틈이 보이는가. 이런 고정관념에서의 자유로움은 시대변화를 읽어내는 혜안이요, 수필 창작의 허물벗기일 것이다. 이런 창작적 시도야말로 시대변화를 수용하는 수필의 행보일 것이며, 문학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인천문학』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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