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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자(2008-09-21 15:11:06, Hit : 1467, Vote : 112
 삶의 에네르기

삶의 에네르기



                                                              유해자








서점에 가는 일이 내겐 즐겁다. 제각기 개성을 지닌 책들이 자신을 선택해 달라고 눈길을 보낸다. 며칠 들르지 않은 사이 태어난 새로운 책들이 인사를 한다. 서점에서 그들과 만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아름답게 보인다. 그들 속에서 때로는 바닥에 주저앉아 오래 머물러 있어도 마음이 편하다. 책들과 만나고 오는 날은,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수다를 떤 뒤 헤어져 올 때의 허망함을 느끼지 않아서 좋다. “살아있을 때 저 책들을 다 읽어 봐야 할 텐데.” 하시던 노(老)선생님의 독백이 가슴에 무늬를 일으킨다.







남편과 아이들이 잠든 시간, 야행성 체질인 난 혼자 불을 밝히고 책을 읽는다. 책을 읽고 있을 때 평화롭고 행복한 사람이 된다. 책을 한 줄도 못 읽고 잠자리에 든 날은 마치 저녁을 굶었을 때의 허전한 공복감 같은 것이 느껴져 다시 슬며시 일어나 앉을 때도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소설책을 읽었었다. 주인공이 마차를 타고 쫓고 쫓기는 장면을 읽으면서 내 심장 뛰는 소리와 함께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그 날의 말발굽 소리는 몇 번의 강산이 변한 지금도 세면대에 물은 받다가, 저녁 찬거리로 푸른 나물을 다듬다가, 문득문득 환청처럼 들려 올 때가 있다.







책이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중학생이 되어 맞이한 첫 방학, 다락에 올라가 아버지가 보시던 월간지에 실린 연재소설을 종일 읽곤 했다. 그때 다락에서 찾아낸 소월(素月)시집은 얼마나 내 가슴을 울렁이게 했던가. “가도가도 왕십리에 비가 온다.”는 시구는 사춘기 소녀에게 회색 빛 연기 자욱이 깔리는 비 내리는 저녁 무렵을 오래도록 좋아하게 했다.







<러시아 문학개요>에 실린 이야기라 한다. 2차 대전 나치의 포위망에든 러시아의 레닌그라드는 적에 의해 퇴로가 차단된 채 겨울이 찾아왔고, 먹을 것, 땔 것도 없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 그 곳에서 기적적으로 한 소녀가 구출되었다. 잡지사의 기자가 소녀에게 물었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견뎌낼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냐.’ 고….







“책을 읽었어요. 투르게네프,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등을 읽고 또 읽고 아마 몇 백 번은 읽었을 거예요.”







소녀를 견디게 한 것처럼 20대에 나를 견디게 한 것은 책이었다. 여고를 졸업하고 금융기관에서 근무를 했다. 현실감각보다 몽상가적 기질을 지닌 내게 끝자리 수 한 자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대차대조표의 아라비아 숫자들과 산더미 같은 지폐 뭉치들은 나를 한없이 숨 막히게 했다. 반복되는 일상,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은 산과 들, 하늘뿐, 시골 생활의 단조로움에 늘 탈출을 꿈꾸었다. 그 때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삶에 대한 회의와 저릿저릿 가슴 저리던 젊음의 가슴앓이를 무엇으로 풀어내었을까. ‘괴테’와 ‘빈센트 반 고흐’를 만나고 ‘브람스’와 ‘사강’을 만나고 ‘노라’와 ‘테스’를 만났다. 책 속에서 만나는 그들은 내게 위안과 즐거움이 되었고 자유로운 사유를 펼치게 했다.







가까이 한 책과의 인연으로 마흔 살이 되어 대학 공부를 시작했다. 그것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삶의 활력소가 되었다. 문학의 효용론을 읽고 모방론을 읽으며 책 속에 빠진다. “마르크스, 프로이드, 베버 등의 독서를 하며, 삶이란 하모니카가 아닌, 수백 개의 음전이 달린 오르간이란 것을 발견했다.”고 쓰인 구절을 읽으며 책 속의 세계에 빠질 때 나는 나를 잊는다. 그 순간 오직 순수한 평온과 희열을 느낀다. 그때의 희열은 가슴 가득한 삶의 에네르기가 된다.







“사람이 그리워질 때면 어떻게 하나요?” 중년의 나이인데도 아직 고운 감성을 간직한 후배 H가 전화를 했다.







“책을 읽지요.”







불혹이 넘어도 늘 명치끝을 아프게 하는 존재에 대한 갈등, 어찌해 볼 수 없는 인간의 고독, 아직도 허허로이 남아 있는 까닭 모를 그리움의 덩이들, 책을 읽지 않는다면 어디에다 그 마음 조각을 녹여 낼까?







잠자는 머리맡에서, 손을 뻗으면 닿는 구석구석에서,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변함없는 벗은 책이다. 마음 주지 않을 때도 토라지지 않는 벗이 항상 곁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책은 문자만 읽는 것이 아니다. 시공을 초월한 작가와의 만남이다. 나는 오늘 서점에서 김수영 시집 한 권을 샀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어느 날 古宮을 나오면서>








시인과의 만남은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도록 내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ㅡ<수필과 비평, 1999년 5.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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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출



                                                            유 해 자



알 수 없는 무력감으로 며칠을 누워 지냈다. 다시 자신을 추슬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외출을 했다.



신문에 소개된 화가의 초대전을 보기로 했다. 버스 한 번 타면 되는 인사동 거리를 꽤 오랜만에 갔다. 화랑에 들러 K씨의 작품전을 봤다. “이른 새벽 정안수 앞에 서 계신 어머니의 모습을 애타는 먹빛 몇 점으로 그릴 수는 없을까, 그것이 화두였다.”는 작가의 말에 이끌렸다. 19C 말에 사라진 배채기법을 복원했다는 것에도 호기심이 일었다. ‘배채(背彩)’란 화면의 뒤쪽에서 색을 입혀 앞면으로 은은하게 배어 나오게 하는 전통의 인물화 기법이라고 한다. 20번 이상 칠해야 앞에서 색채가 드러나는 어려운 과정이라 했다.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만을 살려내는 데는 꽉 채우지 않은 동양화의 여백이 한몫을 한다. 그의 그림은 가족의 평범한 삶의 모습이 소재가 되었다. 아이들의 천진한 표정과 작은 발가락 하나까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오랜만에 혼자 외출을 한 내 발걸음이 활기차다고 스스로 느낀다. 혼자라는 것, 때론 그것이 마냥 편할 때가 있다.



시와 판화전이 열리고 있는 곳을 지나치다 다시 발길을 돌렸다. 글과 그림이 만나 하나로 되어 있다. “… 누가 알랴, 아무도 닿지 않는 곳에 고독이 있다는 것을 ….” 이렇게 시인은 글로 내면을 표현하고 그 시를 읽은 화가는 색채와 기하학적인 형태로 심상을 표현했다. 그러나 20C 현대 미술의 추상주의 앞에서 내가 가진 안목으로는 그 내면의 정서를 다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림보다는 시에 친근감이 갔다.



미리 전화로 장소를 물어 두었던 갤러리 S를 찾았다. 그 곳에는 시집과 산문집까지 냈다는 여류화가의 유화전이 열리고 있다. 동․서가 반대라는 것은 그림에서도 확연하다. 한 치의 여백 없이 덧바른 유화는 작가가 만들어 내는 오묘한 색채의 창작이다. ‘내 생의 바다’, ‘세월을 비껴가며’, ‘새는 늘 외롭고 인간은 가끔 외롭다’ 등 그녀의 그림은 내면을 그린 한 폭의 시였다. 새, 나무, 바다, 집 등 일상의 사물들이 새로운 의미로 살아나고 있다. 삶이란 그 일상들 속에서 내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리라.



S화랑을 나와 ‘인데코’갤러리 앞을 지나며 J여사 생각에 가슴이 찡하다. 어느 시인은 이 세상을 잠시 소풍 나온 것이라 했다. J여사도 이 세상에 잠시 외출을 나왔다가 돌아간 것일까? 나이가 한참 연장인 J여사와는 일 여 년을 같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다. 장자(莊子)를 좋아했고, 먹고 자는 시간까지 아끼며 그림과 독서만을 하던 분이었다. 내가 화실을 그만둔 후 그분은 몇 번의 전시회를 가졌다. ‘인데코’ 전시장을 찾아갔던 가을에 시간이 맞지 않아 못 뵙고 돌아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지병인 당뇨의 합병증으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이듬해 화사하던 봄날에 들었다. ‘모든 것을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하라.’고 늘 웃으며 내게 충고를 해 주었었다.



나에게 있어 가끔의 외출은 들숨이며 날숨이 된다.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신선한 산소를 들이마시듯 생활에 숨통의 역할을 한다.



서른 후반에 들어설 무렵, 모 잡지사에서 매년 개최하는 ‘시인 학교’에 참석 했었다. 결혼 후 10년 만에 남편과 아이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홀로 간 3박 4일의 외출이었다. 그때 나는 일상의 무미건조함에 몹시 목말라 있었다. 굽이굽이 안개 자욱한 대관령 길을 오르는 버스 안에서 차창 밖으로 이름 모를 노란 들꽃들을 바라보았다. 괜히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 내 안에 오래도록  토해내지 못한 이산화탄소가 가득 차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자리를 함께 한 황금찬 시인께 “10년만의 외출이었어요.”라고 했더니 “영화제목 같군요.”하며 웃으셨다. ‘7년만의 외출’에서 마린 먼로는 바람에 올라가는 치맛자락을 내려 잡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영화 제목과 어울리는 그녀의 모습은 몹시 행복한 표정이다.



외출은 때론 어딘가에 설렘이 숨어있는 바람 같기도 하다. 시인 미당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썼다. 내 안에 윙윙대는 바람을 쏟아 버리러 나서기도 하고 바람처럼 휘익 휘젓고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오래된 흑백 영화 <밀회(密會)>속의 로라. 평범한 아내였던 로라는 목요일마다 외출을 한다. 처자 있는 남자 의사를 만나기 위해….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어 흔들리는 두 남녀. 그러나 중년의 분별력은 만남을 조용히 정리한다. 아내를 지켜보기만 했던 로라의 남편. 목요일이 되어도 외출을 하지 않는 아내에게 그의 마지막 대사는 오랫동안 감동으로 가슴에 새겨져 있다. “이제 돌아온 거요. 여보!”



나는 오늘 인사동 찻집에서 작설차의 쓴맛과 단맛을 음미해 가며 참으로 호사스런 외출을 즐겼다. 이렇게 누리는 외출의 쾌감은 산뜻한 바람으로,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나를 지탱하는 데 한몫을 한다. 사람은 참으로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동물’인가 보다.  



  



               -<수필과 비평, 1999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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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혹                            



                                                               유해자    



주류(酒類)매장에 갔다. 선물할 것을 한 병만 살 생각이었다. 진열대에 놓여있는 다양한 술의 종류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조니워커, 발렌타인, 시바스리갈, 로얄살루트 등, 위스키의 종류는 발효 햇수에 따라 가격차이가 현저하다. 와인 또한 프랑스와 이탈리아산(産) 뿐만 아니라 북남미, 호주, 남아공과 유럽산 등 여러 나라의 상품이 가득 진열돼 있다. 남편도 새로 나온 매실주와 작은 술병을 몇 개 골랐다. “병이 너무 예쁘다”며 만지작거리자 남편은 유리 고리가 달린 커다란 백포도주와 적포도주 두 병도 장바구니에 함께 담는다.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한다. 가끔 사람들과 어울려 자리를 함께 할 때면 맥주 한 잔 못하는 사람이 무슨 글을 쓰느냐고 놀림을 받는다.



어제는 K선생님께 “첫 잔은 갈증을 위해, 둘째 잔은 영양을 위해, 셋째 잔은 유쾌하기 위해, 넷째 잔은 발광하기 위해서라는데 어느 잔을 원하세요?”라고 했더니 “넷째 잔이 좋다”고 하여 함께 웃었다. 그러나 K선생님은 늘 한 잔밖에 술을 못 하신다.



알코올이 없어도 취한다는 20대 때였다.



“술을 마시다 보니 어느덧 날이 어둡고 / 오지랖에 수북이 쌓인 낙화여! / 시냇물의 달 밟고 돌아갈 제 / 새도 사람도 없이 / 나 혼자로라.”는 주선(酒仙) 이태백의 <자견(自遣)>이라는 시를 어느 글에서 읽었다. “낙화영아의(洛花盈我衣)-. ‘낙화가 오지랖에 수북이 쌓였다’는 절구에 그만 눈물이 돈다.”고 써놓은 작가의 글귀가 스물 몇 살이었던 내 가슴에도 파장을 일으켰다. 그해 여름 부지런히 과일주를 담았다. 포도, 다래, 머루, 가을의 노란 국화주까지 방안 가득 술병이 놓여졌다.



과일들의 색깔이 곱게 울어난 어느 날 밤, 술을 한 잔 따라서 마셔 보았다. 쓰게 느껴지는 소주의 맛과 달리 설탕이 가미된 머루주는 달짝지근했다. 그 뒤 자꾸 술병 쪽으로 눈과 마음이 갔다. 첫날의 한 잔이 이튿날엔 두 잔이 되고 다음날엔 석 잔, 넉 잔이 되어갔다. 그러길 며칠, 슬그머니 겁이 났다. 의미 없는 것에 습관이 되어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명한 유리잔에 붉은 술을 따라 홀짝이며 공연히 겉멋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다음 날부터 단호히 과일주의 유혹을 끊었다. 취하도록 마셔보지도 못한 채였다.



남편은 가끔 술을 마신다. 어쩌다 과한 날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소파에 몸을 던진 채 그대로 잠들어 버린다.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가끔 소화제라며 한 잔 마셔 보라고 권한다. 그럴 때면 인상을 찡그리며 잔을 비운 뒤 한 잔을 스스로 더 마시기도 한다. 그리곤 괜히 마시라고 해서 다리가 후들거리니 배가 아프니 엄살을 떤다.



장(腸)이 약한 탓인지 알코올이 한 잔만 들어가도 배가 알싸하게 아파 오면서 어깨에 힘이 쭉 빠진다. 어쩌다 어울리는 자리에서 잔이 오고가게 되면 그 배 아픈 고통이 괴로워 두어 잔 마신 다음부터는 요령 것 잔을 처리했다. 그러다보니 남들처럼 가슴이 뜨끈해지고 기분이 풍선을 탄 것처럼 붕 뜨는 것 같다는 단계까지를 가보지 못하고 만다.



술에 취해 본 기억이 없다고 했더니 “정말 이예요?”하고 후배 S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취할 때까지 마셔야 할 필요가 있느냐, 는 나의 말에 “알고 보니 재미없는 사람”이라며 실망하는 눈빛을 보였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래방도 가고 우스갯소리도 잘하는 나를 두고 사람들은 대범하다느니 술을 꽤나 잘 마실 것 같다느니, 라고 말한다.  



사람에겐 동전의 양면처럼 다른 면이 함께 있는 것 같다. 대범함 속엔 나의 소심함이 함께 있고, 몽환적인 성격 속엔 이성의 강한 절제가 있다. 이것은 나의 이중성이다. 사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위(胃)와 장(腸)의 고통이 아니다. 알코올의 기운 앞에서 이성의 줄을 놓게 되지 않을까 겁내는 나의 소심함이다. 내 안에 드러남을 두려워해야 할 무엇이 숨어있는 것일까.



“여보게, 나는 이제 이 호박 빛 액체가 주는 마술의 힘을 빌려 나의 새끼손톱으로 요놈의 ‘지구’ 덩이를 튕겨 버리려네.”라고 시인을 노래하게 만드는 알코올의 마력은 무엇일까? 이성 뒤에 숨은 또 다른 호기심은 뱀이 이브를 유혹하듯 가끔 나를 유혹한다.



며칠 전, 드디어 나는 나를 ‘재미없는 사람’으로 만든 그의 정체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한약재를 넣고 생쌀발효법으로 빚어 뒤끝이 깨끗하다고 쓰여 있는 알코올 13%의 약주(藥酒)였다. 먼저 밥으로 위를 조금 채운 뒤 작은 유리잔 가득 노르스름한 액체를 따라 단숨에 쭈욱 마셨다. 석 잔을 거듭 비우자 아랫배에 약간의 신호가 왔다. 소주병보다 큰 375ml 용량의 1/2을 마셨다. 기대와 달리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작정을 한만큼 끝을 보고 싶었다. 뽀얀 술병을 다 비웠다.



‘풍선을 탄 것 같은 기분이 되겠지. 세상이 내 것처럼 느껴지겠지. 가슴이 뜨거워 오지 않을까. 나도 모르게 노래가 나올지도 몰라. 이제 눈앞의 사물들이 춤추듯 보일거야.’  



마루 바닥의 선을 따라 걸어 보았다. 그런데 두발은 선을 벗어나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곧게 나갔다. 가슴도, 사물도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생 처음 시도했던 그 날의 모험은 맹물처럼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지레 겁을 먹었던 지난날들이 억울하기까지 했다. 그날 이후 난 알코올 성분이 든 액체가 만만해 보이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과거처럼 술잔을 요령껏 처리하게 될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얼마를 마셔야 나를 잃어버리고 술과 내가 하나가 될까? 알코올의 마력이란 어떤 것일까? 아직 호기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선반 위에 장식품처럼 놓아둔 와인 병 한 쌍이 나에게 윙크를 한다.








                 ㅡ <문학공간, 2001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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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 속에 피는 연꽃 가슴에 품고
덕유산의 가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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