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移徙記
吳岐煥
이삿짐을 꾸린다. 이순을 지난 나이, 아마도 내 생애 마지막 이사일듯 싶다.
처음 이사를 한 것은 삼십육 년 전, 인천에서다. 결혼을 앞두고 방구할 여력이 없었다.
상사의 배려로 국장 관사 방 한 칸을 빌려 신접살림을 차렸다. 화장실을 드나들 때면
손전등 불빛을 좇아 긴 복도를 지나야 하는 방, 겨울이면 십구공탄 난로를 설치해야 하
는 웃풍이 심한 방이지만 울이 높은 집 부럽지가 않았다. 연탄 난로 위에 있는 양은 주
전자 물이 수증기를 뿜어내는 소리가 흡사 내 젊은 몸에서 뿜어 대는 뜨거운 피처럼 느
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해 늦봄. 모란이 피고 연두색 나뭇잎이 돋아나는 계절에 승진을 했고, 드디어 한강
을 건너 서울로 첫번째 이사를 했다. 인천에서 서울로 이삿방도 승진을 한 셈이다.
삼륜차에 이삿짐을 싣고 한강다리를 건넜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도 어서오라고 손
짓하는듯 했다. 삼륜차는 집앞까지 가주지 않고 동네 골목 어귀에 짐을 풀어 놓고 쏜살
같이 가버렸다. 리어커에 짐을 옮겨 싣고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끌고 밀면서 올라갔다. 잔
뜩 찌프린 하늘은 급기야 비를 뿌리고, 순식간에 갯벌이 되어 버린 골목길은 리어커 바
퀴도 구두도 푹푹 빠졌다.
이사때문에 올라오신 어머니는 연탄불이 꺼질세라 조심스럽고 급한 걸음으로 앞장 스셨
다. 이사할 때마다 내 자식 살림이 불처럼 일어나라고 불씨를 지키는 지킴이었다. 그리고
는 붉은 팥으로 시루떡을 쪄서 고사를 지내고 이웃집에 골고루 돌렸다. 아들 내외의 새
로운 삶에 부정타지 말고 잘되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신앙이었을 것이다. 단칸방에서 아
들 내외의 눈치(?)를 보면서 몇 밤을 지내고는 형님 댁으로 가셨다. 안쓰러워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자식은 부모에 걱정을 끼쳐드리고 애정을 자극시키며 불안에 떨게 함으로써
그들을 서서히 죽여가는것은 아닐까.
이사한 새둥지는 '마누라는 없어도 장화가 없으면 못산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 비오는 날이면 가방에 구두를 넣어가지고 출근을 해야하는 변두리 생활. 그
런 불편함 보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방 한 칸을 더 얻지 못하여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것이 나를 우울하고 슬프게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할부금으로 집을 사면 삼 사십 년을 두고 갚아 나가는 그런 세상이 아
니었다. 할부금을 다 갚을 때가 되면 정년이 되고 퇴직금으로 편안한 생활을 하는 사회
가 아니었다. 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공간으로 생각하면서 부동산 투기는
엄두를 못내는 세상도 아니었다. 연줄을 대서 뒷돈을 써서라도 은행 대출금으로 부동산
에 투자하면 몫돈이 생기는 세상, 질퍽거리는 허허 벌판에 말뚝을 박아 놓기만 해도 복
덕방은 문전성시를 이루는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 이 년이 멀
다 하고 이삿짐을 싸 들고 2424를 눌러 댔다.
일곱 번째 이사하는 날. 그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셋방살이 팔 년 만에야 내 집을
마련하여 이사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직장 직원들도 화물차까지 가지고 와서 도왔다.
골목이 떠들썩했다. 이름 석자가 새겨진 문패도 달아 주었다. 그 당시에는 이사할 때면
직원 서로가 품앗이를 했다. 더욱이 상사가 이사하는 날이면 직원들이 동원되다 싶이 했
다.
새집을 장만했다 하나 방둘은 남에게 다시 세를 주었으니 반쪽 주인인 셈이었다. 허나
엄연한 주인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어린놈이 울어대도, 뛰어 놀아도, 손님이 들고나도, 수
돗물을 마음대로 써도, 밤늦도록 불을 켜 놓아도... 눈치 볼일이 없으니 분명 주인 이었
다.
.주인도 주인나름 무리하게 집을 사는 바람에 안채는 세를 주고 내방은 벽을 사이에 둔
문간방이었다. 벽을 사이에 둔 바깥쪽은 밤 만 되면 별천지였다. 술 취한 사람이 벽에다
대고 소피를 보는 공중변소가 되는가 하면, 용변을 다 마칠 때까지 욕설을 퍼붓다가는
먹은 것 보다 더 많이 토해 내기도 하는 하수구이기도 했다. 그뿐인가. 친구끼리 멱살 잡
이를 하는가 하면 이슥한 밤에는 연인들이 밀어를 나누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문간방은 도둑들의 표적이 되었다. 열어 놓은 창문으로 긴 막대기를 이용해서 양복도
걷어 가고, 선반 위에 놓아둔 가방도 제 물건 가져가듯이 가져갔다. 해서 아무리 무더운
여름밤에도 창문을 잠그고 살아야 하는 것이 문간방 신세이기도 했다.
이삿짐을 푼다. 열 세 번째 이사. 고달픈 여정이었다. 먼길을 숨가쁘게 달려왔다는 생각
도 든다.가족들도 무척 고달팠을 것이다. 상처 받으면서 살아온 세월 .하지만 일주일을
살기 위해 육 년을 차가운 땅속에서 애벌레로 견뎌야 하는 매미나, 태어나서 하루를 살
다가는 하루살이 보다는 행복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사란 크든 작든 살아가는 삶의 역사
요 현주소라고 한다면, 열세번이 아니라 스믈세번 이라면 그만치 더 길게 산다는 말도
되지 않겠는가.
지금 이사한 곳은 여러 궁리 끝에 마련한 새 둥지다. 퇴직 후 에는 고정수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그마한 건물을 마련한 것이다. 이제 나이 육십이 넘었다. 다행히 글도
쓰고 있으니 여기서 안주했으면 한다.
창문을 열어본다. 북한산 자락이 아주 가깝게 보인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본다. 예
술회관으로 통하는 [예술의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거기에는 벗은채 서 있는 겨울 나무
들이 보인다. 지금은 모든 것을 떨구어 내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들어내는 겨울나무, 감
출것도 없고 감추고 싶지도 않다는 듯 욕심이 없어 보인다. 지금의 나와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수 천 년을 그자리에 지루한 줄 모르고 서 있는 북한산, 숱한 사연을 알고
도 모른는 체 서 있는 나무들. 나도 그들의 하나이고 싶다. 더 이상의 이사는 없을 것이
다. 인생사 어찌 알겠는가 마는. 아니 한 번은 더 있겠다. 이승에서 저승으로의 영원한
자리옮김. 기다려 지지도 않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이사.
그때는 짐을 꾸리고, 짐을 풀고, 하는 그런일은 안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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