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Home 자작 수필을 올려주세요~
-로그인이 안될 때는 ☞수필넷다음카페별관 수필의 뜰에 올려주시면 적절히 게시물이동을 하겠습니다.
2009. 7. 23, 저작권 강화로 인해, 작가가 직접 등록하거나 등록을 부탇받은 글만 게시합니다. 감사합니다. (☞메인)-

유해자	(2007-03-24 16:32:17, Hit : 1699, Vote : 132)

내 친구, 춘화

내 친구, 춘화 / 유해자

춘화는 내 어릴 적 고향 친구이다. 한문으로 쓰면 봄춘(春) 자, 꽃화(花) 자인데 아마도 그 이름은 ‘진정한 로맨티스트’인 그녀의 아버지가 지었을 것이다.

멀리 포항에서 슈퍼를 하고 있는 춘화가 몇 년 만에 전화를 했다. 여름에 있을 예정인 초등학교 동창모임 때 고향에서 한 번 만나자는 얘기였다. 바쁜 일상에 틈을 내어 전화를 걸어온 옛 친구. 우리는 아직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마당 옆쪽으로 대문이 나 있는 우리 집과 대문이 없는 춘화네 집은 작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엇비슷이 마주보고 있었다. 난 눈만 뜨면 대문이 없는 춘화네 집을 내 집 드나들 듯 했다. 동갑내기 춘화는 나보다 체격이 크고 의젓했다. 달리기는 물론 모든 운동종목을 잘했고 어린나이에도 집안일 또한 잘 했다. 나는 춘화가 일하는 옆에서 따라 다니는 것이 재미있었다. 밭에 나간 그의 부모님이 늦으시면 초등학생인 춘화가 부엌일을 하곤 했다. 난 춘화네 부엌에서 자작자작 불타는 아궁이의 나무를 들쑤셔 보기도 하고 찬장 문을 열고 몇 가지되지 않는 반찬 그릇들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때론 춘화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오기도하고 내 밥그릇을 들고 춘화네 집으로 가서 그 집 식구들과 둘러앉아 밥을 먹는 때도 있었다. 대문이 없어 드나들기 편했던 것 외에도 내가 수시로 드나들 수 있었던 것은 춘화네 집의 분위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춘화 네는 딸이 다섯이나 되었다. 사람들은 가장이 너무 순하면 딸만 낳는다면서 춘화 네를 보라고 했다. 춘화 아버지는 작고 마른 체구지만 늘 자애로운 표정으로 딸들에게 큰소리 한 번 내는 일이 없었다. 춘화 아버지는 춘화에게 자기네 성(姓)은 ‘밀양 박씨’라고 했다가 또 웃으면서 ‘청와대 박씨’라고 할 때도 있었다. 난 춘화 네가 밀양 박씨든 청와대 박씨든 상관없이 늘 자녀들과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춘화의 엄마․아버지 모습이 보기 좋았다.

봄이면 땔감을 해오는 춘화 아버지의 지게 위엔 활짝 핀 진달래가 꽂혀 있곤 했다. 마른 나뭇단 위에서 환하게 웃는 연분홍 진달래꽃. 춘화 아버지는 마치 어여쁜 봄 처녀를 보쌈이라도 해오듯 상기된 표정으로 우물가를 지나 골목으로 들어섰다. 마당 한 구석에 지게를 괴고 목에 건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친 뒤 지게 위의 꽃을 춘화에게 건네줬다. 춘화는 얼른 빈 소주병에 물을 채우고 진달래꽃을 꽂았다. 춘화네 마루 한 귀퉁이엔 봄이 다 가도록 파란 소주병에 늘 꽃이 꽂혀 있었다.

여름이 올 무렵이면 춘화 아버지의 지게에는 진달래 대신 송기(松肌)가 들어 있었다. 춘화 아버지가 해 오는 송기는 가지가 곱고 매끈했다. 그 송기를 부러워하는 내게 주려고 우리 집은 할머니가 산엘 가서 송기를 꺾어왔다. 그러나 난 춘화 아버지가 꺾어오는 송기보다 볼품이 없다고 불평을 하곤 했다.

ㄷ자 형의 춘화네 집은 마루가 높고 깊었다. 한여름에도 컴컴한 마루바닥에 엎드려 있으면 더위를 느낄 수가 없었다. 때로 마루 뒤쪽에 있는 쪽문을 열 때면 산 아래까지 아스라이 이어진 좁다란 길이 보였다. 아무도 오가는 사람 없이 하얗게 햇볕만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한낮의 길을 바라볼 때면, 온 동네가 텅 빈 듯한 고요, 그 적막에 숨이 멎을 것 같아 난 슬그머니 마루문을 닫곤 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와도 늘 춘화와 함께 지냈다. 겨우내 산 밑의 영자네 집까지 함께 밤마실을 다녔고, 털실로 장갑을 뜨는 법이며 화투 놀이까지도 겨울 밤 춘화에게서 배웠다. 춘화가 가지 않는 곳에 난 혼자 다니지 못했고 춘화 역시 항상 언니처럼 나를 데리고 다녔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중학교생이 되었던 다음해, 우리 집은 아버지의 전근으로 그곳을 떠나 이웃의 다른 면소재지로 이사를 갔다. 춘화와의 왕래는 그때로서 끝이 났다.

성인이 되어가면서 이어지는 새로운 만남과 변화. 그리하여 춘화와의 기억들은 점점 먼 곳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무심코 켠 ＴＶ에서 <그 사람이 보고 싶다>란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멀리 ＬＡ를 연결한 특집 프로다. 못 본지 오래된 일가친척에게 안부를 전하는 사람, 헤어져 소식을 알 수 없는 친구를 찾는 사람, 그들의 만남은 감동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그 감동의 희열을 맛보기 위하여 ＴＶ을 끄지 않는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프라이버시 같은 단어 속에서 현대인은 타인이나 이웃에게 무관심한 21Ｃ를 산다. 현관문 하나만 걸어 잠그면 모든 것이 단절되는 주거공간에서 걸어 잠근 문보다 더 꼭꼭 마음의 빗장을 건다.

그러나 우리 마음의 심연에는 사랑, 희생, 봉사, 그리움, 같은 아름다운 것들이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이웃과 타인과의 벽이 두꺼워 갈수록 마음 한편에는 ‘사람과의 정(情)’에 대한 갈망 또한 정비례해 간다.

나는 초등학교 동창모임에 한 번 참석했을 뿐 지금껏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는 여름엔 춘화를 만나러 가야겠다. 만나서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춘화네 집 텃밭의 작은 앵두나무와 감나무, 뒤란의 채송화와 접시꽃, 안방에 층층으로 놓인 채반에서 굼실거리던 누에들, 눈 내린 겨울날 마당에 퍼지던 쇠죽 끓이던 냄새까지…. 모든 것들이 아직도 우리를 연결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그리고 춘화에게 말해야겠다. ‘그 시절 네가 있어서 참 행복했었다.’라고.

                                                                                              -<대한문학, 2004년 가을호>

유해자 (2007-03-24 16:38:43)

소피아 선생님 안녕하세요. 봄이예요. 이곳은 아직 조금 있어야 봄꽃들이 필것 같아요.
지난 주는 산에 갔다가 개구리 알을 보았어요. 사진을 찍어 왔어요.

근데 제가 잘 몰라서 그런가요. 예쁜 그림이나 사진을 복사해 와도 이곳엔 붙여넣기가 안되더군요. 제가 잘 못해서 그렇겠죠. 다른 분들은 예쁜 사진도 잘 올리셨던데요.
수필집 발간은 어찌 되셨어요, 늘 건강 하십시요.

sysop (2007-03-25 20:48:12)

'내 친구, 춘화'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울까요..^^ ‘그 시절 네가 있어서 참 행복했었다.’라고 여운 깊은 결미를 맺으셨듯이, 앞으로도 행복한 만남의 날이 오기를 빌어드리고 싶어요. 해자 선생님, 향기로운 글 잘 감상했습니다.

수필집은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네요. 출판사에 초교 교정지를 넘긴 상태이구요. 관심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미지는 < img src=이미지jpg주소 >라는 태그를 이용하여 올릴 수 있어요. 내 컴퓨터의 사진을 웹계정에 업로드해서 이미지 주소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웹계정을 받으셔야 하는데, 해자 선생님 경우에는 문학 도서관에 서재를 만드시는 것이 가장 좋고, 빠른 방법인거 같아요.

문학도서관에 개인 서재를 개설하는 방법은 간단하지요.
http://www.kll.co.kr/register/member.html 사이트로 들어가셔서
맨 아래 회원 가입을 누르신후에
그 다음 과정을 그대로 따라 하시면
개인 문학서재를 가지실 수가 있습니다.
회비도 무료이구요(거기 회비 나와있는거는 유명무실함)
사진 자료 업로드해서 저장하는 것도 가능하고, 게시판도 여러 개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http://www.kll.co.kr/register/member.html
일단 한 번 가입신청을 해보시죠..?
문의사항 있으시면 꼬리글로 남겨주시구요..

유해자 (2007-03-26 13:35:21)

소피아 선생님 , 지금 막 뒷산을 한바퀴 돌아 왔어요.
제 집 뒷신에도 진달래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아마 낼 모레 쯤이면 여기저기서 화들짝 화들짝 피어 날 거에요.

저도 문학도서관에 서재를 지난달에 만들었어요,
딸아이에게 부탁해, 글 속에 사진도 몇개 넣었어요.
근데 저는 글 속에 사진을 삽입하는게, 뭐가 복잡하게 느껴져서 잘 모르겟더군요.
그냥 포기하고 살아야 겠어요. 부끄...

유해자 (2007-03-26 13:37:40)

근데 여기 꼬리글은 "글 삭제"만 있고 "글 수정"은 왜 없을까요?
써 놓고 보니 '뒷산'자가 오타가 났는데요.

sysop (2007-03-28 00:11:58)

잘 하셨어요. 해자 선생님, 문학도서관 서재에 좋은 수필 많이 올리시기 바랍니다. 갤러리에 이미지도 올리시구요..

해자 선생님의 문학도서관 서재 웹주소 좀 알려주세요. 갤러리에 그림이 있으면 위의 글에 넣으려고, 제가 해자님 이름 검색해서 들어가보니 사이트 2개나 유혜자 수필가 프로필이 뜨네요. 어찌 된건지..^^

여기 꼬리글 "글 수정"은 삭제하고 다시 쓰는 수밖에 없나봐요.

글구, 해자 선생님, 아.. 목련이 만발하였어요...^^

유해자 (2007-03-29 01:36:48)

목련이 만발 했어요!! 꽃샘추위의 우중충한 날씨 속에서도 봄은 왔군요. 그것만이 변치 않는 진실이라니까요...
서재도 주소가 있어요? 전 '도서관 사람들'로 들어가서 '수필가'로 다시 열어서 '000'으로 들어가는데요.
그리고 갤러리엔 잘난척 하고 제 독사진만 올려 놓았는 걸요. ㅎㅎ.

유해자 (2007-03-29 02:36:14)

아 , 지금 도서관에 가봤습니다. 아유 부끄러워라, 저는 옆에 써 있는 검색창 같은 건 처다보지도 않았답니다.
'유해자'를 쳐보니 두개의 같은 이름이 뜨는군요. 왼쪽 은 유혜자 선생님을 잘 못 써 놓은 거고, 오른쪽에 뜬 '유해자'를 치니 제 서재가 열이는군요. 서재 주소는 yoohj321이구요.
선생님의 서재는 짱짱 하던데요. 예쁜 사진 들이랑...

sysop (2007-03-29 08:11:36)

해자 선생님~ 축하해요! 멋진 서재를 여셨더군요..^^ 언제나 해자 님만의 따스함이 스며 나오는 평화로움이 있는 글 자주 감상하러 가야겠어요. 갤러리에서 아름다운 사진 한 장 여기 글에 가져다 놓았어요. 혹시 원상복귀를 원하시면 지울께요. 제 누추한 서재 방문에도 감사드립니다. 해자 선생님 서재 주소는 http://yoohj321.kll.co.kr 였어요. 건필을 빌어요~^^*

△ 가을의 약속

▽ 여백의 미 [2]

좋은 작품을 올려주신 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든 게시물의 저작권은 해당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글 등록이 안되실 때는, ☞수필넷다음카페별관 수필의 뜰로올려주시면 적절히 게시물이동을 하겠습니다.
"★작가별 수필 검색~ www.supil.net 수필넷 [ 에세이 아카데미아 ]방문 환영~ Thanks for visiting~! Enjoy...Thanks!"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