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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혜자(2006-06-21 05:50:48, Hit : 1469, Vote : 204
 원색과 파스텔 톤


원색과 파스텔 톤 / 함혜자

비가 오지 않는 한 매일 아침 중랑천을 걷는다. 걸으면서 굳는 몸을 풀고 마음에 고이는 감정의 때를 씻는다. 그럼에도 오늘은 어제 있었던 친구와 있었던 감정의 응어리가 너무 컸던 탓인지 영 나설 기분이 아니다. 내 마음을 읽은 듯 엄마답지 않다는 아이의  불편한 시선을 뒤로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첫 서울생활을 시작 했을 때 나는 친척집 친구의 방에서 꽤 오랫동안 한 방을 썼었다. 그 친구에게서 단란주점 개업을 하려는데 돈이 부족하다며  전화가 걸려왔다. 혼자 딸아이들을 데리고 살면서 하필이면 단란주점이냐고 나도 모르게 흥분을 했던 모양이다. 친구는 용수철처럼 되받았다. “됐다. 배부른 너나 고상하게 살아라” 전화는 끊겼고 다시 통화가 되질 않았다. 한참을 끊어진 전화기에 시선을 박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밤새도록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할 말을 해준 것인지 안해야 될 말을 한 것인지 머릿속이 온통 엉킨 실타래다.

중량천을 걸으면서 마음에 남아있는 감정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싶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중랑천에는 굴착기의 소음이 요란하다. 햇살조차 없어 물그림자는 더욱 삭막하다. 모래를 파내는 준설작업이 한창이다. 황토색 흙물이 넓게 번지는 것이 복잡한 내 심경을 드러내 보이는 것만 같다. 오랫동안 쌓여왔던 퇴적물을 걷어 내는 일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해졌다. 준설작업을 지켜보며 내 가슴에도 강바닥에 모래만큼이나 켜켜로 쌓였을 감정의 찌꺼기를 생각하니 숨이 차온다. 굴착기로 모래를 퍼내듯 당장 어제 생긴 감정의 응어리를 퍼내고 싶다.

강은 물이 흐르지 않으면 강이 아니다. 중랑천은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에도 미세한 흐름조차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강다운 모습은 푸른 물결과 은빛 햇살, 깊이를 가늠케 하는 물소리, 한두 점의 구름이 내려앉은 풍경이어야 한다. 중랑천은 모래가 퇴적되면서 강 본연의 모습을 잃은 지 오래이다. 그럼에도 중랑천 변에 사는 어떤 이는 한국의 세느강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오염된 강처럼 우정도 세상적인 잣대로 오염된 건 아닌가 싶다. 중랑천은 준설작업으로 바닥을 비우고 나면 은빛 여울이 눈부실, 원색이 아닌 파스텔 톤의 조화로운 색깔의 수채화를 그려낼 것이다.
무릇 강은 여울을 만들어내며 끊임없이 흘러야하고, 사람은 마음을 비움으로써 진정 사람다워지는 것일까!
또한 걷는 내내 아이가 말하던 엄마다움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했다. 조화로운 색깔이 아닌 나만의 색깔이 너무 분명하기 때문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강한 원색이 나를 표현하는 색깔이었다면 이젠 조화로운 파스텔 톤으로 나를 표현하고 싶다. 비스켓 하나를 커피 잔에 담궜다가 천천히 혀끝에 댄다. 비스켓과 커피의 조화로운 맛이 일품이다. 비스켓과 커피 각각의 맛이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내듯 나답고 친구다워서는 아름다운 조화를 이룰 수 없나보다. 서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 그것은 각자를 비우고 버림으로서 가능해지지 않을까싶다.
서둘러 친구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너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다고, 그리고 영원한 네 편이 되겠노라고...
벌써 군데군데 꽃잎을 떨군 개나리에 어느새 연록의 새잎이 뾰족이 얼굴을 내밀었다. 노란 개나리꽃과 연록의 조화가 황홀하다.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조화로운 나를 비운 가슴에 담아내고 싶다.








함혜자 씨의 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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