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
청호
어머니의 이야기는 곧잘 ‘어떤 사람이 말했는데’로 시작했다. 우리 4남매는 철이 든 후부터 어머니가 전하는 ‘어떤 사람’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중요한 정보라고 생각되는 이야기를 꺼내려 하시면 우리는 선수를 쳐서 이구동성으로 ‘엄마는 또 어떤 사람이 한 이야기죠?’라고 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모든 것을 배웠다. 또, 검증이 된 사람들이 쓴 책,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신문을 통해 이야기를 믿는데 익숙해 있었다.
그럴 때, 어머니는 참 안타까운 표정이 되곤 하셨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의 말이라고 당신을 믿지 않으려는 우리에게 늘 ‘어느 구름에 비가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한 마디로 대답하셨다. ‘어느 구름에 비가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자주 인용하는 어머니는 언제나 ‘어떤 사람’이 도움을 줄 귀인일지도 모른다는 소박한 믿음도 갖고 있다.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는데 우리 형제는 모두 그 말을 절에서 배웠다고 짐작했다.
절에 와서 경전을 배우면서 그 때의 짐작은 과연 맞았다.
불교에는 겉모습에 속은 일화가 많이 나타난다. 신라시대, 자장율사는 정암사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서원하고 기도했다.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메고 온 거지노인이 문수보살임을 알아보지 못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그 이야기는 범부 속에 깃든 성인의 모습을 알아 내지 못하는 우리를 위한 깨우침이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도 이런 게송이 있다.
약이색견아 若以色見我 만약 어떤 사람이 형상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이음성구아 以音聲求我 음성으로써 나를 찾으려 한다면
시인행사도 是人行邪道 이 사람은 삿된 도를 가는 것이어서
불능견여래 不能見如來 결코 부처를 보지 못하리라.
법화경 중에 <관세음보살 보문품>이 있다. 그 <관세음보살 보문품>에는 성관세음보살이 중생을 구하기 위해 나오실 때, 우리가 보았던 탱화 속의 모습처럼 머리에 보관을 쓰고 나타나지 않는다. 소년이나 소녀, 한 노인 등 온갖 평범한 바로 ‘어떤 사람’의 모습이라고 한다.
또, 법화경에는 모든 사람이 부처가 될 것을 믿는다고 말하는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야기가 나온다. 상불경常不輕은 항상 남을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상불경보살은 만나는 사람마다 ‘당신은 부처님입니다.’라고 했다 한다. 늘 ‘어떤 사람이 그러던데’로 말씀을 시작했다가 때로는 ‘박사가 아니라서 내 말은 안 듣는다’고 한탄하던 어머니. 또 한 사람의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임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요즈음 들어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어떤 사람’으로 시작되던 이야기가 그립다. 어머니의 ‘어떤 사람’이야 말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먼저 부정하지 않고 수용하며 공경하는 마음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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