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매워요
고향 만들기 (4) / 조한금
이장댁은 아주 작은 풀꽃 같은 여인이다. 그녀는 마치 일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왼 종일 들에서 산다. 그들 부부가 경작하는 소작논만도 수천 평, 가난을 벗어내는 유일한 수단이니 어디 골병인들 마다하겠는가.
주말을 이용해 가금씩 시골집에 가 있노라면, 윗마을에 사는 그녀는 용케도 내가 와있는걸 알고 “농약 안 했으니 잡숴요!” 하며 검은 비닐봉지를 불쑥 내민다. 그 안에는 풋고추며 깻잎, 감자 그리고 참깨 등 무공해 밭작물이 들어있다. 입안에서만 웅얼거리는 어눌한 그 말을 되받아서 맞춰주면 히죽이 웃는다. 그 모습이 마치 순한 양 같다.
고향 만들기 10년여 만에 논 몇 마지기 장만하여 처음으로 모내기를 하던 날이다. 이장에 게 소작을 주었으니 내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건만, 어릴 때 동네에서 얻어먹던 못밥이 생각나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고 싶어 장을 봐 내려갔다. 친정오빠 내외분도 광주에서 홍어와 산 낙지를 사고 찰밥을 해 새벽같이 차를 몰아 오셨다.
이른 아침부터 이장이 이앙기로 모를 심었다. 이장댁은 남편 뒤를 열심히 쫓아다니면서 모가 들뜬 곳이나 이 빠진 구석진 곳을 찾아 땜질을 하는 동안, 나는 솜씨껏 점심 준비를 했다. 이장내외는 점심상을 받고 나서야
“허기져 죽을 뻔 했어요”
하며 웃는다. 왜 말하지 그랬느냐고 하니 어려워서 말을 못했단다. 그랬다. 농촌의 아침식사는 새벽 5시니 그걸 알아서 새참을 챙겨 주었어야만 했다. 너무나 미안했다. 그들에겐 그 일이 일과인데 나는 모내기를 추억 저편 속의 향수의 하루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구부렸던 허리가 잘 펴지지 않는다며 쪼그리고 앉은 이장댁은 진수성찬의 별미가 다 소용없이 작은 체구만큼이나 소식을 했다. 후식으로 내놓은 과일마저 겨우 한쪽을 먹으며 배부르다고 한사코 손 사레를 쳤다.
모포기가 제법 퍼져 출수出穗가 될 무렵 우리는 또 시골에 내려가 이장내외를 불러내어 저녁대접을 했다. 큰 하천 물이 제법 운치 있게 흐르는 식당으로 가서 쏘가리 매운탕을 시켰다. 이장댁은 별 맵지도 않은 국물을 떠먹을 때마다 물을 마셔가며 속이 맵고 아프다고 했다. 위가 아파 몇 달을 고생했는데 약을 먹어도 잘 듣질 않는다고 또 입속말로 웅얼거렸다.
“그래, 끼니를 규칙적으로 챙겨먹고, 동네 병원이 아닌 큰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정기적
으로 받아야 하니 빨리 가 봐요”
하고 일렀지만 바쁜 농촌에서 그게 그리 쉬운 일이던가. 그런데 이 무슨 날벼락이람.
늦가을에 감 따러 내려간 우리에게 전해지는 동네의 입소문은 그녀가 위암 말기라는 것이었다. 그냥 떠도는 헛소문이기를 바라면서 전주의 종합병원에 있다는 이장한테 휴대전화를 해보았다. 설마 했는데 사실이란다. 본인은 아직 모르고 있으며 손을 쓸 수 없을 만큼 퍼져 그냥 퇴원하려고 한다는 대답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15년 전 어느 날, 그때도 그랬었다. 목포에서 살다 서울로 이사 온 ‘데레사’가 날 좀 보자고, 아니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해왔다. 뜻밖이었다. 학교 자모회에서 가끔씩 만난 손아래사람으로 성당에서는 그리 가깝게 지내지 않았던 그녀가 하는 말은
“왜 진즉 친하지 못했는지 아쉬워요”
하며 자기는 지금 암과 투병 중이라는 것이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니 얼른 달려가 줘야 한다고 날마다 벼르면서도 살기에 급급했던 나는 이날저날 날만 받다가 결국 사후에야 소문으로 부음을 들었다. 죽음은 잠시도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망각했던 나는, 그녀가 생식하며 투병하고 있으니 의지대로 꼭 회생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오죽이나 힘들고 외로웠으면 나 같은 위인에게 위안을 청했을꼬. 쯔쯧 지금도 그때만 떠올리면 죄인의 심정이 되곤 한다.
그런데, 이제 겨우 쉰 문턱에 온 이장댁은 왜 그리됐을까. 눈먼 시어머님의 지극한 병간호 4년으로 효부상을 받았다는 그녀가, 그때 이미 자신의 몸속에는 스트레스로 인한 병을 키우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아니면 늦도록 들일하고 들어와 만사가 귀찮아서 대충 때운 섭생으로 얻어진 위병은 아닐는지. 그도 아니라면 착한 며느리, 순종하는 아내, 좋은 엄마로 인내하며 살아내느라 자기의 상심은 미처 치유하지 못한 신경성 위염이 종내는 악성종양으로 서서히 진전된 건 아닌 지, 내 억측이 난무하다.
주사바늘이 그녀의 야윈 몸을 뚫을 수 없어 주사조차도 맞을 수 없는데, 정작 본인은 자기 속병을 모른 채 여전히 밝고 명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더라는 시골 다녀온 남편의 전갈에 가슴이 짠하다. 늘 그래왔듯이 그녀는 지금도 아무것도 모른 채 통증이 있을 때마다 대증요법의 약봉지나 입안에 털어 넣으면서 또 열심히 일속에 파묻히겠지.
이제 그녀의 남은 날이 몇 날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허지만 그 몇 날 중의 한 날만이라도 빨리 그녀에게로 달려가 고달프고 허했던 모든 얘기를 다 털어놓게 하고, 다친 마음을 다독이고 어루만져 위로해주며, 맺힌 한을 눈물로 쏟아내 후련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편하게 가도록 도와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녀가 아직 이 세상 사람일 때 어느 한 순간 만이라도 최상의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해줘야 하는 그 몫이 바로 내 몫처럼 여겨졌다. 그래야 또 내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비책을 갖고 어서 가 봐야지. 갑자기 마음이 조급하고 초조해진다.
이장댁은 비록 시골에서 들녘에 피어난 이름 모를 풀꽃 같은 조촐한 인생을 살았지만, 있어야 할 자리에서 묵묵히 자기 몫을 다한 장하고 자랑스러운 여인이었음을 주변 모두는 그녀가 떠난 후에나 알게 되리라.
나도 그녀처럼 자기를 내 세우지 않고 공적을 따져 손익을 계산할지 모르는 그런 사람으로 거듭나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조르고 있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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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도 창작수필로 등단,
남편의 회갑기념으로 같은 제목의 남편 최건 기행시집과
조한금 기행수필집 <눈으로 가고 발로 보고> 2001년도 출판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2007년 6월 결혼 40주년 기념으로 저는 <멋지게 베팅하라>수필집과
남편은 <허물어뜨려 비우고 다시 세워 채우는>시집을 상재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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