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레의 혼을 찾아
박은숙
햇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리는 오후, 우편함에 꽂힌 공연 초대장을 발견하였다. 들뜬 마음으로 오랜만에 동숭로에 있는 문예회관을 찾았다. 최종실의 ‘타’라는 국악 공연이었다. 최종실 교수와는 몇 해 전 국악을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1970년대에 김용배, 이광수, 김덕수와 함께 처음으로 사물놀이 패를 창단하여 관중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던 남사당패의 마지막 후예였다. 우리 음악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적어 갈증을 내던 차에 그와의 만남은 음악 뿐 아니라 우리 전통 예술에 대한 관심과 겨레의 혼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첫 무대에는 ‘삶의 소리 사계’가 올려졌다. 이는 우리 겨레의 삶과 애환을 소리와 노래 춤으로 이끌어낸 민중의 소리였다. 얼음장 밑으로 맑게 흐르는 시냇물과 아낙들의 싱그러운 대화는 이제 막 깨어난 봄의 서정이자, 겨레의 숨소리였다. 대장간의 철판 치는 소리, 나무를 치는 소리의 화합에 절로 신명이 났다. 수줍게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는 촌 아낙의 환한 웃음엔, 더위의 나른함조차 무기력하리 만큼 묘한 신비감이 감돌았다. 탈곡기를 돌리고, 이에 흥을 돋우며 도리깨질을 하는 농부와 아낙의 절구질 등등은 활기찬 한가위의 풍요로움을 안겨주었다.
엿장수의 가위질을 타고 관객의 엉덩이는 한바탕 어울러져 놀고 싶은 충동에 저절로 들썩였다. 동장군의 추위 속에 간절히 기원을 올리는 한 어미의 모습이 어둠 속에 비춰진다. 그 쪽진 머리 뒤로 겨울조차 녹아 내리는 숭고함이 어둠의 여백을 타고 흘렀다. 삶 속에 흐르는 듯 순응하며, 가슴 깊은 한의 자락을 울음대신 웃음으로, 또는 소리로 화하는 우리 겨레의 삶이, 숨결이, 떨림으로 다가왔다.
쪽박, 물동이, 맷돌, 옹기, 대장간의 망치, 다듬이, 절구, 도리깨 등 여러 가지의 민속 생활 용기에 리듬을 주고 혼을 심어 관객을 무대 위로 이끌어 낸 감동의 도가니였다. 소도구가 우리에게 주는 친밀감은 우리 겨레의 삶과 한, 애환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다른 향수를 불러일으킴이리라. 겨레의 소리에는 한의 소리를 유감없이 이끌어내고 다스려 한조차도 즐길 줄 아는 초연한 삶의 의지가 엿보였다. 겨레의 염원이 담긴 우리의 소리는 가슴을 울리는 마력을 지녔다. 땅과 하늘의 소리를 더한 듯한 ‘두드림’의 세계엔 겨레의 염원이 간절히 담긴 부르짖음이었다.
공연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은 판 굿이다. 그의 채상 놀음과 자반뒤집기, 소고춤의 춤사위는 관객들에게 시리도록 아픈 감동을 주었다. 내딛는 발끝마다 한과 혼의 무게가 그대로 실려 숙연하기조차 하였다. 애달픈 삶을 바람으로 동화하고, 이는 구름을 자아내어 큰비를 쏟아내는 듯 했다. 제자들의 설익은 가락에 스승의 춤사위는 한바탕 걸푸러지게 울고 말 것 같은 앵김으로 관객들의 멍든 가슴을 풀어 주었다. 공연이 막을 내리고 막 뒤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에 젖어 있는 애환을 잦은 숨으로 가라 앉혀본다.
급변하는 세계의 변화 속에 우리 겨레의 뿌리를 되살리려는 그의 의지가 처연히 살아나는 무대였다. 우리 음악의 정수를 두드림으로 일깨운 ‘타’의 위력은 대단한 충격이었다. 한의 소리를 끌어내는 타악의 울림 속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차곡차곡 느껴졌다. 우리 겨레의 문화 예술이 살아 숨쉬듯, 터진 봇물이 대하를 만나 세계로 뻗어나는 물줄기의 근원을 보았다. 우리 전통 타악의 울림에 차오르던 작은 가슴이 이제 풍물패를 향해 내딛고 있다. 겨레의 소리를 드높이기 위해……
* sysop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7-27 05: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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