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1)
호남형인 신랑은 사 남매 중 막내다. 서글서글하고 착해 보이는 예쁜 신부도 딸 셋 중 막내란다. 결혼적령기를 놓쳤던 신랑은 아름다운 신부에 연신 벙글벙글 희색이 만면한 표정이다. 하객입장인 나도 흐뭇함과 고마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날 주인공들, 신랑은 양쪽목발에 의지하는 중증지체장애인데 결혼적령기를 놓친 노총각이었다. 아름다운 신부는 키는 좀 작아도 날씬하고 예쁜 건강한 조선족여인이었다. 정직하고 착한 삶에 복을 내리신 것이리라.
신랑은 편부슬하에서 중학시절부터 재활원에서 숙식하면서 학업에 열중하여 야간에는 보석세팅 기술을 익히며 근 이십여 년을 고용인생활로 기능을 연마하여 목적을 향해 내실을 탄탄히 쌓았다. 그 힘겨웠던 고용인직업을 졸업하고 지금은 어엿한 중소기업의 리더로 매형과 사업전선에서 힘차게 발돋움하고 있다. 업종은 신세대와 젊은 층을 겨냥한 '쥬얼리' 제품을 대량생산해 각 지역으로 보급하는 업체다. 오로지 외길로 목적달성을 위해 수년 동안 기술연마에 전념했던 청년은 늦은 결혼이지만 행복하고 알토란 둥지도 마련했고 깃발 날리는 산업역군으로 성공의 궤도를 무난하게 달리고 있다.
국내에 공장과 매장도 겸하고 있는 그들은 지난해 초가을부터 같은 분야인 중국 업체의 초청으로 이벤트행사경험도 몇 번 가진바있다. 기대이상 실적을 올린 성과로 사업 확장 계획을 추진 중이이라고 했다. 이벤트행사인연으로 중국 업체 측에서 몇 년간 무상으로 제공하는 공장을 받아 2005년 봄 5월에 개업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본토 사업거래자들과의 통역은 예쁜 신부가 맡았단다. 불신감이 팽배한 이 현세에 피차 신뢰감에서 얻어지는 상부상조하는 교류가 아닌가. 이 어려운 경제 불황 한파에 그들의 노고는 기립 박수로 축하할 일이다. 비록 늦게 만나긴 했지만 천생연분의 배필이란 생각이 들어 기쁘고 뿌듯하다.
한국남자와 조선족 여자와 인연을 맺어주는 알선업체 소개로 근 6개월 동안 교제 끝에 성사된 인연이었다. 왜 이제야 만나졌을까. 늦게 만난 게 안타까웠던지 신랑이 부지런히 중국을 왕래하더니 신부는 결혼식 몇 개월 전부터 아예 한국으로 나와 동거하고 있었다. 한참 연하인 조선족 여인과 근 6개월 교재 끝에 결혼에 성공해 포근한 둥지를 품은 것이다. 결혼식을 올리기까지 수속의 절차가 참 까다로웠다고 했다. 한껏 꿈에 부푼 결혼식 날, 신랑 측 하객은 공장식구며 매장식구며 웅성웅성 왁자한데 신부 측 하객은 달랑 부모님뿐이었다.
뜻 깊고 성스러운 날, 미소를 감춘 우울한 표정인 신부가 외로워 보여 마음 아팠다. 눈부신 웨딩드레스를 벗고 분홍빛 화사한 연회복으로 갈아입은 신부는 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어 더욱 아름다워 모두 아낌없는 박수로 축하 해주었다. 대단한 용기임에도 왠지 안쓰러웠다. 아픈 마음 쓸어주려 작고 예쁜 액자 하나, 시낭송 한편 약소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선물했다. 초대된 하객들도 그 마음 아는지 가족처럼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축하의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우린 뒤풀이 분위기가 고조될 때쯤 총총히 식장을 빠져 나왔다. 경쾌한 음악을 뒤로하고 나오는 마음은 참 흐뭇했다.
크고 작은 사건 유난히 많았던 해. 한 해를 마감하는 시간 어려움을 헤치고 꿋꿋이 서는 젊은이들을 본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장애인이라도 정신적장애가 아니면 나는 장애인이라 여기지 않는다. 때론 나 자신도 정신적 장애자가 아닌가 생각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생각조차도 하기 싫은 각종 사기사건이 난무하는 부끄러운 현 사회, 극소수겠지만 맑은 강물 오염시키는 폐수처럼 정신이 썩어 가는 정신적장애인이 비일비재한 현실이 아닌가. 가끔씩 만나는 그들, 참으로 성실하고 올곧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나 자신 한없이 작아질 때도 있다. 귀감의 대상이 아닐 수 없는 존경하는 사람들이다.
2004년도가 저무는 12월 26일, 약혼식 같은 조촐한 결혼식에 기꺼이 하객으로 참석하던 날, 육삼빌딩 예식홀에서 축복 속에 한 쌍의 원앙이 된 그들에게 내심 바랬었다. 애써 일군 사업 모자람도 넘침도 없는 그 저력 그 신용으로 본인 문화에 맞는 일상이길, 어렵게 성사된 인연, 뜻 깊고 경사스러운 날, 주례사물음에 대답한 언약처럼, 처음 만났을 때 그 마음처럼 그 믿음 한마음 한 빛으로 서로의 인격을 존경하며 아끼는 좋은 가정을 이루길, 비장애인신부가 중증지체장애인남편의 냄새나는 치부까지도 한결같이 보듬어 품어주는 애틋한 마음의 삶이길, 지켜보는 내내 기도하는 마음으로 축하해 주었다.(계속)
2004.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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