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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2006-02-04 18:48:17, Hit : 3191, Vote : 187
 어머니 신사임당의 생애

어머니 신사임당의 생애(先妣行狀)

이이


자당(慈堂)의 휘(諱:죽은 이의 이름)는 아무(某)인데 진사인 신공(申公)의 둘째 따님이었다. 어릴 때 벌써 경전(經傳)을 통달하였고 문장을 잘 지었으며 낙서하기를 좋아하였다. 그리고 바느질을 잘하여 자수(刺繡)하는 일까지 정교한 경지에 도달하였다. 게다가 천성이 온화하고 지조 있고 정숙하였으며 행동은 안정되고 일을 처리하는 데는 자세하였으며 말수도 적었다. 또한 스스로 늘 겸손한 태도를 가지니 외할아버지인 신공께서 사랑하고 중히 여기셨다.
어머니는 효성이 지극하여 외조부모께서 병환이 나면 얼굴에 늘 걱정하는 빛이 있다가 병환이 나아야 얼굴빛이 밝아졌다. 뒷날 아버님에게 시집가게 되자 진사께서 우리 아버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딸이 많아서 다른 딸들은 시집가도 그리 서운하지 않더니 자네 처만큼은 실로 내 곁을 떠나보내고 싶지 않다네.”
어머니가 혼인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진사께서 돌아가시니, 어머니는 삼년상을 끝낸 뒤에 서울로 올라와서 시어머니인 홍씨를 신부의 예로써 뵈었다.
어머니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고 경솔히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집안의 여자 친척분들이 우리 집에 모여서 웃고 잡답했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 가운데 앉아 있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시어머니께서 이르기를 “새아기는 왜 말이 없느냐?” 하였다. 어머니는 꿇어앉아 이르기를, “저는 여자이기 때문에 문 밖에 나가 보지 않아서 아무것도 본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릅니다.” 하였다. 그러자 좌중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겸연쩍게 여겼다.
뒷날 어머니는 임영(臨瀛 : 강릉)에 돌아가 친정 어머니를 뵙고는 눈물을 흘리며 이별한 뒤에, 대관령에 올라와서 친정 마을인 북평(北坪)을 돌아보며 애틋한 감정을 못 이겨 가마를 멈추게 하고 시를 한 수 지어 읊었다.

머리 흰 어머님 강릉에 두고
서울로 향하여 홀로 가는 이 마음.
북촌으로 머리 돌려 때때로 바라보니
흰 구름 뜬 아래 산만이 푸르네

慈親鶴髮在臨瀛
身向長安獨去情
回首北邨時一望
白雲飛下暮山靑

서울로 돌아온 뒤에 수진방(壽進坊)에서 살았는데 당시 할머니 홍씨가 연로하셔서 집안일을 돌볼 수 없었으므로, 어머니가 맏며느리로서 도리에 따라 집안을 다스려 나갔다. 아버님께서는 성품이 조그마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활달하여 집안 살림을 돌보지 않으니, 집안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가산을 절약하여 능히 자족하였고, 어른을 공양하고 손아랫사람을 보살피는 데 있어서 모든 일을 혼자 마음대로 처리하지 않고 반드시 할머니에게 허락을 빋은 뒤에 행했으며, 여자 종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흔히 하듯이 계집이니 첩이니 하는 말로 부르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항상 말은 온화하였고 얼굴빛은 부드러웠으며, 아버님께서 혹시 실수를 하면 반드시 간곡하게 권유하여 고치게 하였으며, 자녀들의 잘못은 엄히 경계하여 타일렀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과실이 있으면 준엄하게 나무라니, 종들이 모두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어머니의 환심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어머니는 평소에 늘 친정인 강릉을 그리워하며 고요하고 깊은 밤이면 혼자 앉아서 눈물로 날을 새는 때가 많았다. 어느 날 친척 어른인 심공(沈公)의 몸종이 와서 거문고를 탄 일이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 소리를 들으시고는 눈물을 흘리며 “거문고 소리가 마음 속으로 그리워하는 사람을 더욱 그리워하게 한다.”고 하니, 둘러앉았던 사람들이 모두 슬퍼하였으나 그 뜻을 이해하지는 못하였다.
어머니는 일찍이 어버이를 생각하는 시를 썼는데 다음과 같다.

밤마다 달을 향하여 기도하노니
바라건데 생전에 한 번 더 뵙고저.

夜夜祈向月
願得見生前

이것으로 보아 어머니의 효심은 천성으로 타고 난 것이었다.

어머니는 홍치 갑자년(1504년, 연산 10년) 겨울인 10월 29일에 강릉에서 태어나서, 가정 임오년(1522년, 중종 17년)에 아버님에게 시집오고, 3년 뒤인 을유년(1525년)에 서울로 왔다. 그 뒤로 때로는 강릉에 살았고 때로는 봉평에 살았으며 신축년(1541년)에 서울로 돌아왔다. 경술년(1550, 명종 5년)에 아버님께서 수운판관(水運判官)에 임명되고, 다음 해인 신해년 봄에 삼청동으로 집을 옮겼다.
그해 여름에 아버님께서는 물자를 운반하는 임무를 가지고 관서(關西) 지방으로 갔는데, 아들인 선(璿)과 나 이(珥)가 따라갔었다. 이때 어머니는 아버님이 계신 여관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썼으나 사람들이 그뜻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 해 5월에 운반하는 일을 끝내고 아버님께서 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는데, 미처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병환이 들었다. 어머니는 병환이 난 지 이삼 일이 지나자 여러 자식에게 이르기를, “내가 아무래도 못 일어날 것 같다.” 하였다. 그리고 그날 밤에 평상시와 같이 편안히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자식들이 문안을 하러 가니 이미 돌아가셨다. 그 날이 곧 1551년(신해년) 5월 17일 새벽의 일로서 향년 48세였다.
이 날 아버지와 나는 서강(西江)에 있었는데 우리가 가지고 온 행장 중에 놋그릇이 모두 빨갛게 녹이 나 있었다. 모두들 괴이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조금 있자니 어머니의 부음이 도착했다.
어머니는 평소에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려, 7세 때 벌써 안견(安堅)의 그림을 본받아 산수도(山水圖)를 그렸다. 특히 포도 그림은 세상에서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작품이다. 어머니가 그린 병풍이나 족자는 세상에 많이 전해지고 있다. -『율곡전서(栗谷全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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