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들의 합창
尹熙京
산촌에선 귀만 열어놓으면 아주 조만한 것들에도 감탄을 하며 별의별 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 송골매에 쫓겨 덤불 속으로 곤두박질하는 까투리 비명소리. 연못가 우렁이 껍질을 쪼아 통째로 건져 올리며 자맥질하는 청동 오리. '쇄애액' 들쥐를 낚아 채가는 수리부엉이. 청 잣 껍데기와 솔 씨를 까먹으며 아지작거리는 청설모 소리 등등. 그러나 정말 값진 소리는 계절이 돌아가는 자연의 음성을 들을 때이다.
경칩 때부터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개구리 소리가 요즘엔 밤잠을 설칠 정도로 요란하다. 며칠 간 비 많이 내려 논과 연못이 차 오르자, 밤만 되면 꽈리 풍선을 터뜨리며 대지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개구리들은 한꺼번에 들판을 일으켜 세운다. 순식간에 겨울 산을 돌려 앉히고, 시린 달빛도 뜨겁게 달궈놓는다. 수 천 마리가 쏟아내는 장렬한 합창 소리는 자연을 녹여내는 관현악이요 합주곡이며 폭죽이 터지는 황홀한 울림이다. 아니, 풍물 장을 여는 시골 장터, 그대로의 한바탕 잔치 마당이다. 밤의 고독과 적막을 헤집고 와글와글 토해내는 소리는 한결같은 리듬과 박자로 전원 교향곡을 연주해 내고 있다. 진정 풍요로운 계절이 왔음을 알리는 기쁨의 함성이요, 만상萬象의 휴식이 끝났으니 어서 궁둥일 털고 일어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자연의 아우성이다. 밤마다 수 없이 쏟아지는 작은 별들의 시린 눈물을 가슴에 따 담으며 초여름을 재촉하고 있다. 일시에 왁자지껄하다 뚝 그치면 밤의 고요가 온다. 두레패가 놀다 잠시 숨을 고르듯 아우성과 정적을 반복하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받아내고, 아직도 땅 잠을 자고 있는 어린것들을 불러 ? 셀箏? 울음 결에 녹아 내리는 합창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겨우내 굳어버렸던 빈 마음에 옹달샘이 파이고, 새로운 계절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슴이 절렁거린다.
밤이면 팽팽한 어둠을 뚫고 억센 파장과 흔들림으로 가멸찬 생명을 떨어내다, 낮이면 고개를 들고 물 속을 뛰쳐나와 산으로 산으로 전진을 계속한다. 바닷게가 밤마다 야산에 올라 짝짓기하고 새벽이면 바다로 회향을 하듯, 이들도 밤새워 울어대다 한낮엔 눈 맞춤 산행을 가는 것인가.
어디쯤에서 행진이 멈출 것인지. 암놈은 수놈을 업고 가자니 앞가슴이 불룩거리고 눈까지 찢어진 입을 벌이며 숨이 차 고역이 대단하련만, 수놈은 미끈덕거리는 등 짝 위에 뒷발을 바짝 조이고 눈알을 뒤룩뒤룩 욕정을 불태우고 있다.
오늘밤에도 개구리 소리 듣는다. 그 때마다 하늘과 땅이 열리고 작은 생명들이 초저녁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선 하품을 하며 꼼지락거린다. 논두렁 바르고 물구멍 막아라. 모여라 다 모여라 와글와글. 두레패들 모여라 지화자 좋다 개굴개굴. 모꼬지 모여라. 못자리 모꼬지하자. 밤참 먹으러 다 모여라. 갑자기 사위가 조용해지면 고요와 적막감이 밤이슬에 내려와 앉는다. 밤참 먹는 시간이다.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오는 산과 들, 얼마 안 있으면 벌 나비들도 감자밭을 누비며 춤을 추고, 휘파람새와 꾀꼬리들도 앞산에 날아와 무르익는 신록을 찬미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도 잡것들이 날 뛰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고, 잔인한 한해가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과 함께 세상이 살벌하고 썰렁하다. 힘들고 짜증스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사 바쁘고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시대라 하지만, 아직 우리들이 몸을 기대고 의지할 곳은 자연이다. 바로 이 순간, 한번쯤 눈을 돌려 자연의 소리에 숨을 고르고, 마음을 비워내 팍팍하게 무디어진 몸뚱일 추스려 싱싱하게 변해 가는 계절을 맞이할 때이다.
화악산 뒷자락을 열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초여름의 향그러움이 이리 신선할 수 없다.
* sysop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10-17 15: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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