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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길순(2005-08-04 19:29:03, Hit : 2695, Vote : 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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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마르칸트 가는 길


사마르칸트 가는 길
- 오길순  

1. 낙타의 길 지난 해 8월 10일,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겐트에서 한국문인협회 해외 문학 심포지엄을 마친 후 실크로드 장정에 올랐다. 타슈겐트에서 제 2의 도시 사마르칸트로 가는 300여 킬로, 이름만으로도 기분이 고조되는 실크로드 여정이다. 낙타 등에 짐을 싣고 몇 날 몇 달 가로질렀던 대상들의 고행길이 가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낭만의 길이다. 버스에 오르는 일행들은 모스크바를 거쳐 온 여정에도 경쾌한 발길이다. 모스크바 공항의 출입 절차는 불친절과 만만디였다. 미로같은 불결한 통로를 따라 처녀 가이드의 우왕좌왕 안내까지 겹쳐 너 댓 시간을 배회 할 때는 유랑의 무리가 되는 줄 알았다. 우즈베키스탄 행 비행기로 바꿔 타고나니 안도의 한 숨이 절로 나왔다. 여행길에서 가이드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는 계기였다. 사막의 길은 화훼와 목초의 대륙으로 변해 있다. 스치는 바위산이나 메마른 밭 두렁만이 사막의 흔적일 뿐 바둑판 수로 사이로 목화와 해바라기가 끝없이 펼쳐있다. 낙타 형상이라는 중국의 천산산맥이 만년설을 풀어 사막을 적시고는 낙타의 길을 바꿔 놓은 것이다. 소련의 면화 생산량이 이곳 작황으로 좌우된다니 젖과 꿀이 흐르는 사막의 역사는 빙하가 이룬 기적이다. 초등학교 사회과 시간이던가. 석양의 지평선에 서 있는 낙타 행렬이 안타까웠다. 제 몸보다 큰짐을 지고 떠나는 등 굽은 낙타의 사진은 홀로 걸어가는 늙으신 할머니를 연상시켰다. 구만리 뜨거운 사막길에도 여유롭고 평화로이 낙타를 몰고 가는 대상들의 발길은 신에 대한 순명으로 복종과 인내의 개척기질이란 것을 훗날 알게 되었다. 그들의 인내정신이야말로 자연에 대한 두려움 없는 경외심이었던 것이다. 낙타는 하루에 300킬로를 달린다던가. 제 몸의 2.5배 짐을 지고 뛴다던가. 400-500킬로그램의 몸무게로 1톤의 중량을 지고는 인간의 10배 속력으로 질주해 온 신비의 짐승, 오늘의 문명을 이끌고 온 견인차임에 틀림없다. 동서양 교역의 도화선이었던 사막에 화물선 버금가는 낙타가 없었던들 문명은 다른 물줄기로 흘렀을 것이다. 실제로 통일 신라 시대 동서양 유행 속도는 6개월이었다. 바그다드에서 장안을 거쳐 2만5천킬로 통일 신라 경주까지 넘나든 짐꾼의 속도가 상상을 넘어선다. 고분에서 출토된 같은 연대 유물에서 보면 진골 성골 부인들의 사치와 허영을 채우기 위한 대상들의 경주는 죽음을 건 도박이었다. 초인적 경주력으로 도착한 동해에 매료되었던가. <처용가>의 주인공 처용이 아랍인이라는 역사적 고찰이고 보면 <처용가>는 이 땅에 뿌리내린 대상의 지혜의 노래였는지 모른다. 내 아내이지만 (本矣吾下是如馬於隱) 어찌 하리이까 (奪叱乙何如爲理古) -처용가 마지막 절- 역신을 관용으로 용서한 노래의 가사는 인내에 익숙한 강인한 사람만이 베풀 수 있는 여유로움이 아닌가. 나는 대륙의 순례자처럼 가르마 길을 따라 간다. 용광로처럼 폭발할 듯 뜨거운 지열을 받은 아스팔트는 비단처럼 아스라이 풀려있다. 복종 없이는 건널 수 없는 땅, 마음의 화염을 사르지 않고는 건널 수 없는 불의 나라. 악천후와 약탈의 공포를 이기고 마침내 더운 대륙을 횡단했을 때 사막인들은 겸손과 인내로 다져진 육체와 덕성만이 남는다. 불가마에서 고운 도자기가 구워지듯 분진을 태우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사막은 유목민에게 용서와 화해의 땅인 것이다. 사막에서 여성은 아름다움 이상의 존재이다. 꽃 한 포기 없는 황막한 자연에서 여성의 미소, 눈동자, 말 한마디는 꽃보다 몇 천 배 아름다운 꽃으로 지상의 최고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그들에게 여성은 우주에서 최상의 아름디움이었다. 초원에 서니 세상 모두를 사랑하고 싶다. 욕망도 정염도 분노도 슬픔도 대지 속에 사라진다. 이슬이 성에가 되고 성에가 물이 되듯 마음도 승화하는가. 여과와 증류와 승화. 바로 8세기경에 발견된 아랍인들의 과학 방법이다. 그들은 천문학은 물론 물리 화학 수학 등의 선각자였다. 증류되는 땀 속에서 소금의 여과 방법을 깨닫고 소변을 정수해서 갈증을 치료했는가. 용설란 즙으로 데킬라 증류주를 만들고 숯으로 오염된 물을 정화하며 바닷물을 정수하였는가. 그들의 뛰어난 과학 정신은 자연에 순응하며 고행을 이겨내려 한 고뇌의 결과였을 것이다. 애증도 발효되면 사랑이 되듯 발견에서 창조로 이어진 그들의 사유는 위대한 과학 발전의 원천이었다. 알콜 화학 등 자연 과학 분야의 술어 중 아랍어의 어원이 많은 것은 거치른 사막이 지혜의 요람이 되어 싹을 틔우고 발효시키는 창조의 토양이라는 점이다. 타슈겐트 초입은 러시아워로 밀린다. 수도에 차선이 없다니. 그래도 만만디 운행으로 사고 가 드물다고 한다. 우리의 빨리빨리 교통 문화와 절충했으면 알맞을 성싶다. 거리에 대우차 간판이 보인다. 이 곳에서 티코가 인기란다. 경차의 효율성으로 이국의 시장을 석권한 기업인들의 눈물겨운 노력이다. 그들의 치열한 공략으로 벌어들인 달러, 한 푼이 소중하다. 이 곳의 생활비는 우리의 절반 이하로 현지 가이드인 유학생 총각은 눌러 살겠단다. 실업률이 높은 이 시대, 저 비용 고효율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이야기이다. 그래도, 사계절이 다양한 코리아는 우즈베크 사람들에게 부럽고도 아름다운 나라이다. 공원길에서 만난 우즈베크의 30대 여인은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다. 한글은 몰라도 한국말은 잘 한다며 포천 어디 오리집 식당에서 3년을 일하고 귀국해 잘 살게 되었다는 여인은 우리나라를 무척 고마워한다. 그가 쓰는 밥솥 등 전자제품이 한국 것이라며 친절하게 대해 준 오리집 아주머니에 대해 거듭 감사의 말을 잊지 않는다. 하룻밤만 자고 가라는 인사말로 우리를 웃겼지만 부메랑으로 돌아온 이국의 선물은 국제화 시대 돌아봐야 할 일이기도 하다. 2. 가난의 성자 유목민에게 굶주림은 숙명의 천형이었다. 초원을 떠돌다 뱃가죽이 등뼈에 닿도록 허기가 지는 날은 허리띠에 돌을 끼어 위장을 조른 후 길을 떠났다. 하구(hagou, 남자의 옷 )와 베림(berim, 여자의 옷)은 돌로 배를 채워 버티기 위한 특별한 의복이다. 궁핍을 견뎌온 숭고한 인내는 거룩한 신앙과도 통한다. 그들은 가난의 성자였다. 그래서였나. 사막이 이슬람교의 발상지라는 점은 토양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생명이 움트지 못한 거친 토양이 명상의 샘터가 되다니 거친 땅은 정신세계를 정화하는 불가마가 된 것이다. 그들의 사유는 고통에서 승화한 영혼의 소리가 아닌가. 그들은 과학 뿐 아니라 몸과 마음의 연금술사였다. 실제로 사막의 아들 예언자 마호메드는 소년시절 이 길에서 여러 번 캐러밴의 행렬에 참여했다. 그는 25세에 15살 연상의 여인과 결혼하고 40세에 예언자가 된다. 정화된 영혼을 찾으려 죽음 앞에서도 빌린 몇 푼의 동전을 갚기도 한다. 그가 죽은 후 14세기가 지난 지금도 시와 음악의 암송 경전인 코란이 점 하나 수정되지 않은 채 이슬람(평화와 복종이라는 뜻) 의 모든 행위를 규범한다니 그의 사상은 사막에서 탄생한 귀하고도 신비한 선지자의 정신이다. 적을 용서하고 평화를 구하는 자,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보상을 누릴지니라. (코란 42장 40절 인용) 사막에 오기 전 내 마음도 사념 속에 타고 있었다. 망각과 용서사이에서 갈피를 잃고 있었다. 모래도 바람에 흐르더라. 바람도 제 충돌과 상처로 울음을 울더라. 유목민의 묵언정진에 무릎이 꿇어진다. 허기와 갈증에 경배하고 싶어진다. 저 불볕 아래 서 보라. 탈진 속에 하늘을 바라보라. 정화된 영혼만이 맑은 물처럼 고일 것이다. 물고기처럼 파닥이던 내 가슴, 불처럼 타오르던 사념이 조용히 거두어지고 있었다. 2천5백년 전 사마르칸트는 작은 오아시스 마을이었다. 14세기 티무르 왕조의 수도였고 '동방의 에덴’으로 불리며 정복자들의 군침거리였던 이 곳은 이슬람 문화의 꽃이었다. BC 4세기 경 세계정복을 나선 알렉산더와 AD 8세기 경 사라센 제국의 침략, 13세기 징기스칸의 침략과 14세기 티무르 대왕의 건설 등 피의 정복사였다. 징기스칸이 초토화 한 이 땅을 재건한 티무르를 우즈벸 사람들은 영웅이라 부른다. 티무르는 전쟁에서 데려온 포로와 예술가를 동원해 무덤까지 마졸리카 타일로 미장하여 아름다운 돔의 도시로 만들었다. 특이한 아라베스크(Arabesque - 중세 사라센과 스페인의 무어 족에 의해 사용되었던 사방연속의 장식문양. 꽃, 식물, 과일 등의 모티브에서 전개된 복잡한 문양은 넝쿨손과 줄기들이 뒤얽혀진 형태와 기하학적인 패턴을 기초로 하여 그림, 조각, 모자이크, 상감 등의 장식에 사용되었음) 문양은 모스크의 벽과 도자기, 카페트, 천장 등 어디에도 장식되어 있다. 우상숭배라며 조형물을 거부하고 기하학적인 문양으로 창조한 그들만의 미술 문화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흉가처럼 무너진 어느 묘지 건물 앞에서 도공을 그려본다. 포로와 노예는 정복자의 손에 사라져갔지만 그들의 아픈 예술 혼은 유산으로 살아있다. 관광지로 개발한 그들의 오래된 묘지 문화를 배울 만도 하다.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줄 적극적인 문화재 정책이 아쉽다. 모스크(이슬람 사원)와 메데레세(이슬람 신학교)는 사마르칸트의 대표적 유적이다. 14-15세기 동양의 로마로 만들려 한 티무르의 야망이 도시 건설의 효시이다. 어두움이 내릴 즈음, 모스크가 있는 레지스탄(모래광장)에서 <빛과 소리의 제전>을 관람했다. 지하에서 울려오는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빛의 제전은 시작되었다. 여름밤마다 열린다는 이 제전은 미녀들이 둥글게 늘어서서 춤사위를 벌린 후 음악과 빛이 연주되면서 남성의 우렁찬 소리가 울린다. 무엇이 나올까. 한 시간 쯤 연주된 묘성은 알 수 없는 언어로 막을 내렸다. 통역 없는 빛과 소리에 흙을 털 듯 일어서니 써늘한 여름하늘에서 별이 쏟아질 듯 영롱하다. 저 하늘이 점성술과 천문학을 발달시킨 서역의 자원일 것이다. 3. 티무르와 모스크 티무르는 8명의 아내를 거느렸다. 그 중 가장 사랑하는 비비하님 모스크를 위해 정성을 다했다. 아내 모스크를 위해 짓기 시작했다는 건물은 그의 사후 3년만에 완공되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친 영웅의 선물이 훗날 건축사에 빛나는 모스크의 역사이다. 영웅을 여자가 지배한다던가. 여자의 사악한 마음만을 지배하지 못한 영웅의 전설은 웃어넘기기에는 안타까운 이야기이다. 모스크는 티무르가 전쟁에 나간 중에 다른 남성과 부정을 저지른다. 전쟁에서 돌아온 티무르는 부정한 모스크에게 죽음의 형벌을 가하고는 다시 전장으로 달려가 전사한다. 훗날 그의 무덤에서 발굴된 불구의 시신은 아픈 사랑을 견디지 못해 죽음으로 돌진한 영웅의 순정이다. 모스크에 얽힌 티무르의 사랑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될 만 하다. 둥근 돔은 항공모함의 지붕처럼 평화와 원만함을 준다. 부드러움이 날카로움을 극하고 곡괭이가 창을 품는다던가. 반달처럼 활시위처럼 휘어진 모스크의 돔은 첨탑의 날카로움을 감싼 듯 평화로움으로 다가온다. 대양보다 짙푸른 터키석 돔, 에메랄드보다 산뜻한 담청색 지붕.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영웅의 저 푸른 평화정신이 이 곳까지 나를 유인했나보다. 대상들은 허공에 반사되는 모스크의 푸른빛으로 멀리서도 사마르칸트가 가까워짐을 알았다니 사막의 등대지기가 되고픈 지도자의 측은지심이 지금도 사람들의 가슴에 사모의 정으로 남은 게 아닐까. 캐러밴은 중국과 로마까지 귀중품을 날랐다. 종교와 문화는 물론 문자와 향료 보석까지 전파했다. 천산산맥과 고비사막을 건너 사마르칸트에 도착한 그들은 또다시 피안의 땅을 찾아 떠난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당도한 무릉도원, 오아시스는 머무를 수 없는 꿈의 영지일 뿐 회오리바람같은 유목기질은 스스로를 미지의 세계로 나서게 했다. 실크로드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의 동서교통로)는 독일의 지리학자 F.리히트호펜이 자이덴슈트라센(Seidenstrassen, 絹街道)이라 사용한 것이 시초이다. 고대 중국의 특산인 비단이 서쪽 로마에서 발견된 근거로 여러 갈래 길을 실크로드라 통칭한다. 사마르칸트, 부하라 등을 중심으로 이어진 유라시아 그 많은 실크로드 중 타슈겐트에서 사마르칸트로 가는 이 길은 첫 번 째 중심길이다. 지열이 폭발할 듯 뜨겁다. 가이드가 준비한 생수가 아니었으면 달걀 후라이처럼 노랗게 익을 뻔했다. 더위로 후둑거리는 가슴을 연신 생수로 식히노라니 이민 3대라는 미남 교포 청년 가이드가 더욱 잘 생겨 보인다. 비만형인 그도 땀을 비오듯이 흘리고 있었다. 물이 귀한 이 나라에서 음료수도 복통을 일으킨다. 일행들이 느끼한 양고기 토속음식을 먹은 후 마신 음료수로 줄줄이 화장실로 향했다. 상비한 정로환을 나누어 복용했지만 이튿날 여정인 핀란드에서도 복통의 행렬은 그칠 줄 몰랐다. 여행에서 물과 상비약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은 음료수 사건이다. 1991년 공산화에서 독립한 우즈베크는 유적지에 비해 관광국으로 미진한 점 많다. 화폐인 숨 역시 교환이 만만하지 않다. 귀한 고국 손님이라며 친절을 다하는 교포 가이드 덕분에 별 어려움은 없었지만 보다 세심한 관광정책이 아쉽다. 4. 아프라샤프 아프라샤프 언덕에 서니 징기스칸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저 광활한 초원에서 병사들의 고함이 들리는 것 같다. 거대한 도시의 성벽을 허물고 강물 줄기조차 틀어 물길을 바꾸었다는 전설의 오아시스 아프라샤프 언덕. 지배자도 피지배자도 사라진 언덕 위에는 가시엉겅퀴가 한 여름 일찌감치 한살이를 끝내고 매마른 채 열풍에 뒤채이고 있다. 신은 정복자의 편인가. 몽골이 훑고 간지 8백년이 지난 오늘도 아프라샤프는 물 한 모금 없는 황무지로 남아 있다. 언덕 아래, 30년 전 러시아 고고학자가 발굴했다는 아프라샤프 궁전은 마침 보수 관계로 내부를 볼 수 없었으나 벽화에 그려져 있다는 한민족 사신의 그림은 수 천년 전 고구려가 이곳을 자유롭게 왕래했다는 증거이다. 창대한 교역을 말해주는 고구려 벽화는 진실은 신도 바꿀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 이 즈음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려는 중국에게 경고할 일이다. 사마르칸트 바자르(노천 시장)에서 채소와 과일을 쌓아놓고 판매하는 소년의 호객 술은 명연기이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우리말로 부르는 애절한 손짓 발짓에 돌아서기가 어렵다. 침략사에서 얻어진 상술의 경지는 장사의 달통이다. 노점에서 테이프를 하나 사들고는 불친절과 무덤덤인 우리네 상인들을 떠 올려본다. 소년의 명연기는 이 즈음 불황을 이겨낼 최상의 아이디어가 아닌가. 가이드의 말로는 이 곳 아이들의 장사 솜씨는 가히 예술이라니 어른들이 배워갈 상업의 꽃, 친절의 예술이다. 우즈베크 남성가수의 테이프는 <다 그런 거지 뭐> 하는 우리나라 흘러간 가수의 메시지를 떠올려준다. 모래가 든 빈 캔을 흔드는 듯한 리드미컬한 요령소리는 유목민의 무소유에서 빚어진 신명인가. 버릴 것도 없다는 듯한 가벼운 흥타령 조가 <아리랑>보다 처연하다. 꺾고 쉬어가는 음성은 굶주림과 갈증을 견디기 위한 한의 소리 같기도 하다. 그림자 한 점 없는 사막에서 노래의 신명만이 유일한 휴식이었을 것이다. 5. 해바라기와 목화의 대륙 영화 <<해바라기>>의 배경인가. 우즈벸의 실크로드는 대상도 낙타도 역사 속에 묻혔으나 그들의 영혼은 풀꽃으로 피어있다. 한 송이 풀꽃을 피우기 위한 사막 횡단의 대 서사 속에서 대륙에 바친 순교자들의 개척정신은 인류의 영혼을 구원했다. 사막인, 그들은 황무지의 승리자들이었다. 아쉬운 것은 작황이 좋지 않은 것이다. 사유개념이 아닌 집단 농장제도에서 비롯된 영농의 결과이다. 그래도 저 목화 꽃이 솜뭉치로 피는 가을날 광야에 다시 서면 장관이리라. 설국처럼 하얀 대륙을 지나 타슈겐트의 고려인 마을에 들르면 그들의 아픈 이민사를 다시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의 방 하나에 채워 있던 우리의 작가 포석 조명희 시인(1920년대 최초로 문제성 있는 희곡 발표, 만년에 시베리아로 떠나 행방불명됨)에 대해서도 탐구를 하고 싶다. 충북 진천 태생으로 시와 소설을 쓴 그는 따님 조선아를 부르며 이역에서 조국을 향한 그리움을 달랬던 것이다. 갈대밭 습지에 집을 지었다는 고려인의 고생담은 슬픈 역사이다. 마당 가득 그림자를 드리운 한 그루 호두나무 거목이 그곳에 뿌리내린 자신들의 역사라는 고려인의 눈빛에 향수가 어려있다. 뜨거운 밭에서 마악 따온 토마토를 먹으며 나눔의 정서가 여전한 우리의 혈연지정이 놀라웠다. 찌는 듯한 초원의 어디쯤에서 잠시 휴식을 했다. 휴게소가 드문 사막에서 긴급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남성들은 해바라기 밭으로 여성들은 길가 목화밭 속으로 흩어졌다. 겨우 찾은 밭 웅덩이 속에서 하이고! 하이고! 작은 비명을 지르던 여인들, 무단 침입한 엉덩이에 가시로 방어하는 키 낮은 사막잡초의 정당 방위이다. 여럿이 어깨를 둘러 감춰 주면서도 연신 웃음이 간지른다. 목적지가 가까운 즈음 버스는 휴게실에 멎었다. 흙바람에 시커멓게 삭은 바위산이 유령처럼 까칠한데 무성한 갈대 늪지대에는 이름모를 야생화가 피어있다. 한 시절 오아시스였었나 보다. 일행들이 열풍을 쏘이며 멀미를 다스리는 사이 휴게실 옆 노점에서 논을 맛보았다.노점이라야 평상처럼 긴 목판이 전부이다. 팔뚝만큼 길고 누런 호박처럼 큰 타원의 마른 빵 이름이 논이다. 그들의 주식으로 고온에도 잘 상하지 않는 장점이 있는 담백한 맛이 식빵 비슷하다. 단단하고 건조하여 일 주일 정도 두고 먹을 수 있다는데 시장에서 나오는 여인들이나 남성들의 자전거 꽁무니에도 놀부네 박덩이처럼 논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포장도 없이 불결해 보였지만 어디서나 사랑하며 아끼는 그들의 빵에 대한 정감이 흐뭇하다. 끼니때마다 식탁을 마련해야 하는 우리의 식생활에 비하면 일주일치씩을 마련하는 그들의 음식문화가 조금은 부럽다. 누런 수박같은 메론 디냐는 사마르칸트 어디를 가도 쉽게 볼수 있는 커다란 과일이다. 호박만한 디냐를 한 통 사서 맛을 보니 참외와 메론의 중간 맛이다. 큰 길거리마다 디냐 노천 시장이 있는데 작은 산더미 같은 무더기를 천막 째 몽땅 도둑을 맞기도 한단다. 우리나라 청과물 시장처럼 상당한 규모였는데 고온의 기후에 수분이 많고 당도가 높아 인기있는 괴일이다. 값도 저렴하여 누구나 쉽게 먹을수 있는 이 과일이 며칠 후 도착한 모스크바와 쌍뜨 뻬떼르부르크에서는 매우 고가였다. 비행기로 공수해 오는 교통비 때문이라니 러시아 대륙의 크기를 가름하기가 어려웠다. 이 맛있는 디냐의 모양을 본 떠 만들었는가. 팔뚝보다 큰 빵, 논은 디냐와 모양과 색깔이 상당히 비슷하다. 사마르칸트 가는 길은 마음의 화염을 사르는 길이었다. 카일라스 영봉을 오르는 나르첸 순례자처럼 마나스로바 강을 경외하는 고원의 유목민처럼 신을 향해 복종하는 길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싶다. 모든 것들을 어루만지고 싶다. 대상들의 불볕 실크로드 길, 사막인에게 용서되지 않을 게 있었을까. 때로는 사막처럼 힘겨운 일상에서 자유의 성자가 되는 길은 타오르는 사념을 버리는 일일 뿐. 사막인, 그들은 거칠고 뜨거운 자연에 안겨 명상의 자유를 찾은 대지의 성자였다.  
사마르칸트 가는 길<<수필 시대>>2005. 3/4월호 [수 필] - 오길순  


오길순(수필가, 시인, 동화구연가)
1949년생
황화초교, 강경여중고, 공주교대, 서울교육대학교음악교육과졸업
1999년 7/8월호 <<책과인생>><삼베홑이불>당선
2000년12월호 <<한맥문학>><까치는 어디로 떠났을까>시부 당선
사임당 백일장 수필부 장원<산>

국제펜클럽한국본부이사, 한국문협낭송진흥위원, 한국산문문학회장및편집장역임,강남문협상임이사역임

설송문학상, 일붕문학상, GS문학상, 서울문예상, 길림신문주최세계문학수필대상,2011.에세이아카데미아주최네티즌선정수필1위.
저서:수필집<<목동은 그후 어찌 살았을까>>2001.9.25.범우사  
공저:<<아름다운 간격>><<에세이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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