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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점선(2006-03-24 08:53:34, Hit : 2647, Vote : 263
 나는 아주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김점선

그림을 그리면서 괴로워 한 게 아니다. 보통, 화가가 괴로워한다면 그림이 안 그려져서 아니면 그림 그리기가 힘들어서 그런다고 생각할 것이다. 내 경우는 그게 아니다. 다 그리고 나서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붓을 놓고 지금 막 손을 놓은 그림을 바라보면서 나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그림이 곧 나를 떠나게 된다는 생각이 들면 그 이별이, 첫사랑의 연인과 이별이 그보다 더 할까? 그림을 감상하면서 하염없이 슬픔에 잠긴다. 어디로 팔려가 버리면 언제 다시 나에게 이 처절하게 기쁨을 주는,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다시 보나! 살아있는 남편이 나를 달랠 일이 거의 이런 슬픔이었다. 두 다리를 뻗치고 앉아서 운다. 엉엉 소리내서 운다. 늦은 오후에 집으로 돌아와 하루 작업을 끝내고 그렇게 울고 있는 아내를 보는 남편은 낭패감에 젖어들 만도 한데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금방 나를 웃긴다. 그가 말한다. “괜찮아! 이 그림은 안 팔려. 절대로 안 팔려. 무식한 사람들이 이 그림을 알아볼 리가 없어. 걱정 마….” 엉엉 울다가 “정말?“하고는 남편을 쳐다본다. 그러면 아주 정색을 하고는 다시 말한다. ”그럼! 이런 명작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 한 30년은 걸려.” 나는 금방 히히거리면서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아주 많이 그림이라는 매체의 특성에 대해서 괴로워했다. 시인은 시를 누구에게 바쳐도 언제든 그 시를 자신이 읽을 수 있다. 소설가도 아무리 책이 많이 팔려도 괴롭지 않다. 누구나 똑같은 글 덩어리를 공정하게 소유하므로. 그런데 그림쟁이는 그림이 좋다고 사가 버리면 다시는 그 그림을 볼 수도 공유할 수도 없으므로 말도 못하게 슬픈 것이다. 나의 화가로서의 과거는, 그림을 팔고 나서 흘린 눈물은…. 뿐만 아니다. 그런 자세 때문에 화랑 주인들한테서도 핀잔을 많이 들었다. 비난하고, 덜 떨어진 작가라고 비웃고. 아무리 그래도 나는 슬펐다. 변함 없이 슬펐다. 세월이 흘러도 이 슬픔은 변하지 않았다.
오십견이 오고 오른팔을 못쓰게 되었다. 이번에는 어깻죽지가 아파서 울었다. 그렇게 울다가 울고만 있는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신나는 일을 시작해서 이 고통을 잊기로 했다. 이른 봄에 아들이 컴퓨터를 사왔다. 아들은 컴퓨터 전공이다. 처음에는 자판 연습을 했다. 느릿느릿 정확하게 손가락 연습에 몰두했다. 그 해 가을에는 인터넷과 메신저를 할 만큼 속도가 붙었다. 자판 연습하는 중에 간간이 컴퓨터의 다른 기능을 탐색하고 놀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그 속에 다양한 색채와 공간이 무한정 숨어있는 걸 알아냈다. 틈틈이 그림을 그렸다. 아들이 주말마다 와서 나의 수업과정을 체크했다. 어느 날 아들이 소리쳤다. “우와 이것이 화가구나! 화가라는 게 이런 거구나. 아니, 이런 간단한 도구로 이런 그림을 그려내다니!” 그 후 아들은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 주었다. 나는 내가 어디가 어떻게 아프고 언제 나았는지도 모르게 컴퓨터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내게 컴퓨터가 생긴 지가 만 2년하고도 한 달이 채 못되는 지금, 벌써 컴퓨터 그림을 넣은 책이 3권 나왔다. 두 권은 내 글과 내 그림으로 된 책이고, 한 권은 박완서 선생님 글과 내 컴 그림으로 된 책이다. 국민일보와 조선일보에 컴 그림을 연재했고, 출력해서 판화라고 부르면서 전시회도 세 번이나 했다. 잡지나 웹진에도 컴 그림들을 무수히 보내고 있다. 단행본들의 표지로도 나가고…. 이런 일에는 슬픔이 없다. 원본이랄 것도 없는 원본이 내 컴퓨터 속에 늘 있고 아무 때나 열면 나타나니까 슬프지 않다. 아무리 많이 퍼서 보내도 원본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전혀 슬프지 않다. 오십견을 앓은 일이 이렇게 축복이 되어 돌아올 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림 팔고 슬퍼하던 슬픔이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기계가 인간의 슬픔을 위로하는 것이다. 그 사이 남편은 죽어서 땅에 묻혀 있다. 내가 울어도 달래줄 사람도 없게 되니까 그런 슬픔이 아예 생기지 않게 된 것이다. 더 나아가서 심지어는 공유하는 함께 느끼는 기쁨까지를 누리게 되었다.

그림은 아주 옛날에는 누구나 가지고 즐기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아무나 아무렇게나 그려대던 그림들이 점점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그렇게나 비싸지면서…. 이상한 일이다.
매체가 발달하면서 아주 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내가 컴퓨터를 하면서 깨달은 바에 의하면 그림은 미래 사회에서는 하늘이나 바다처럼 인류가 공유하는 사랑할 대상으로만 존재하게 된다. 인간들이 수양에 의해서 그 지독한 소유욕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다. 기술이 인간을 해방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복사라는 개념이 없었다. 있다고 해도 그 생각을 실행할 기술이 없어서 생각은 생각으로만 남아있었다. 하이테크가 인간을 해방시킨다.
컴퓨터로 그린 그림은 무한 출력된다. 유화그림은 단 하나다. 목판화는 200장 이내로만 찍을 수 있다. 동판화는 2000장 이내로 제한된다. 기술이 그렇게 제한하는 것이다. 그런데 컴퓨터로 그린 디지털 판화는 2000억장을 찍어도 그 첫 장과 그 마지막 장이 선명도가 똑같다. 9000억장을 찍어서 지구를 덮으면 사람들이, 가난해서 그림을 못 걸고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가난해서 시각적인 꿈을 접하지 못하고 사는 인간이 여기, 바로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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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점선은 1946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72년 <앙데팡당 展>을 통해 화려하게 등단했지만 관념미술에 염증을 느끼고, 이후 아주 전통적이고 형상이 있는 그림들을 그렸다. 빨간색 물감으로 도롱뇽을, 말을 그리고 그림 속에 글씨도 써넣은 그림들은 당시 화단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83년에 첫 전시회를 가진 후 한 해도 개인전을 거른 적이 없는 그는 일 년에 360일 동안 그림을 그린다. 그가 생각하는 화가는 예술가가 아닌 육체 노동자다. 그는 지금도 그림을 그리는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 저서 <나, 김점선>, <10cm 예술>, <나는 성인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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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김점선]중에서. / 도서출판 깊은 샘-


"집안생활에서 그들이(남편과 아들) 결코 내게 커다란 짐이라고 할수는 없다. 그들은 밥도 지을줄 알고 달걀 프라이도 할 줄 알고 라면도 나보다 더 잘끓인다, 채 열살이 안된 내 아들도 빨래 할줄을 알고 설겆이도 하며 사과도 깎을줄 안다. 우리는 세명의 독신자가 한 집에 모여있는것처럼 누가 정하지도 않았는데 각자가 해야 할 고유한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단, 자기 담당이 아닌 일에는 완전히 무관심하다.

예를 들어 남편이 긴 여행중인 동안 고양이가 화분을 밀어서 떨어뜨렸다. 화분이 방한가운데 떨어진채 산산조각이 났다. 흙이 쏟아지고 식물의 뿌리가 드러났다. 그래도 아들과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식물을 기르거나 사들이거나 집안을 정리정돈하는 일은 우리일이 아니다., 아들과 나는 아무리 집 안이 어질러져 있어도 피곤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다고 잘 정돈해놓아도 감탄도 하지 않는다.
그런일은 남편의 일이다. 그는 식물을 가꾸고 다듬고 이리저리 배치한다. 집안에 있는 여러가지 물건들을 사랑하고 닦고 정리한다. 남편이 여행만 떠나면 우리집안은 엉망이 된다.
무엇이든지 밟고 다니고 넘어다닌다. 그런 와중에 손님이 와도 우리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깨진 화분이 널려있지 않은 구석에 앉아서 손님과 얘기한다. 나는 대부분의 내방객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으로 대한다.
나는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고 가고 싶은 데도 없는데 자구 누가 오겠다고 하고 어딜가자고 한다. 그래서 나는 뚱한채 전혀 집안을 치우지 않은 상태에서 내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손도 더러운 상태로 그냥 사람들과 얘기하는데 남편은 다르다.
-P87-88.



"어느날 남편이 운동화가 해졌다고 사러 간다고 했다. 따라갔다.

남편이 운동화를 신어 보고 샀다. 새신을 며칠신고 산보다니면서 발이 아프다고 했다. 신을 신어보고서도 바로 살줄 모르냐고 궁시렁거리면서 다시 신을 사러 갔다. 꼭같은 모양으로 조금더 큰 걸 샀다. 이제야 발이 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작으니까 할수 없이 내가 신어야 한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새 신이 생겼다. 커플룩이 되었다. 한참 뒤에 몇달쯤 지나서 나는 스스로 깨달았다. 남편이 일부러 작은 신을 사고 , 억지로 내게 새 신을 좋은신을 신게 만들었다는 것을......."
-P94



"바로 그 7월중순. 23일에 남편이 암 판정을 받았다. 한참 지나고 나서 나 혼자 쓰게 웃었다.
이것인가? 이것이 황홀인가?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이 황홀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이없다가 며칠 동안 말도 안 나오고 멍하다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언제부턴가 말도 안 되게시리 황홀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가 앉은 의자도 아름답다. 그가 쓰는 칫솔도 역사적인 기념물처럼 소중하다. 그가 쓰고 버린 휴지조각도 버릴수 없이 애틋하다. 지난날의 끔찍스럽던 부부싸움도, 서운함도 그와 관련되기만 하면 모든게 찬란하게 빛나면서 커다란 화면속에 애잔한 색조로 다가왔다.
모두 잠든 고요한 밤에도 빛이 꽉 찬 정오의 적막속에서도 그 커다란 화면에는 쉴새없이 새로운 영상들이 나타났고 내눈에서는 굵고 더운물줄기가 흘러내렸다."
-P100



"남편의 암, 그것도 발견당시에 이미 삼기 말에 이른 암이었다. 폐의 일부가 암으로 변해있었다., 남편의 몸의 일부가 암덩어리가 되어 점점 더 커지면서 번져가고 있었다. 나는 한국전쟁을 겪었고 입시지옥을 견뎌냈고 수많은 정신적.육체적인 고난과 투쟁을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때까지 겪은건 다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주일을 울어도 또 눈물이 났고 한달을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않았다. 두달, 세달을 울어도 처음 우는것처럼 새롭게 눈물이 흘렀다.
아무리 일을 해도 피곤하지가 않았다. 끝없이 새일이 생겨나고 내가 무얼하는지도 모른채 일을 하고 있었다."
-P103-104



"장폴사르트르는 철학자로 유명하지만 좋은 혈통의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사르트르 집안을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적인 훌륭한 사람들 예를들면 슈바이쳐나 바하같은 사람들이 그외에도 아주 좋은 사람들이 많이 배출된 혈통임을 알수있다.
언젠가 교과서에서 본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인지 유럽사람들은 사르트르를 단순히 철학을 공부한 철학자로서 대하기 보다는 어떤 고상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무의식중에 아끼고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사르트르가 어떤 도둑을 옹호했다.
장주네라는 도둑을 옹호하고 자기의 그런 심정을 널리 알렸다. 장주네가 감옥에서 풀려나서 자유롭게 저술하고 출판하도록 애써주었다. 그래서 도둑이 쓴책이 우리나라에까지 왔고 나는 그책이 너덜거릴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도적을 옹호하면서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이 행한 모든 악행은 바로 나 자신도 행할수 있는것이다. 바로 나자신과 무관한 어떤 범죄도 없다. 어더한 흉악범죄도 인간이면 누구나 행할수 있는일이다. 그렇게 사람속에는 골고루 악과 선 그리고 성스러움이 내재되어 있다. 장주네는 어떤 특이한 괴물이 아니다.
바로 나자신일수 있다. 장주네는 어떤 특이한 괴물이 아니다. ㅂ바로 나 자신일수 있다. 그저 일반적인 한 사람일뿐이다. 그의 문학성을 논하기 이전에 그의 범죄의 일반성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그의 내재된 악에 대해서 바로 나 자신속에 내재된 악과 똑같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를 바라보고..."

물론 이말은 내가 쓴문장이다. 내가 수십년전에 읽은것을 오로지 기억속에서 꺼내다 쓴것이다. 문장의 세세한 부분은 틀릴수 있다. 그러나 그 근본정신은 같다. "
-P134



"지난 날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나 자신도 후기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호에몰두한적이 있었다.
몰두라는 표현을 쓰긴 썼지만 기껏해야 책들을 구해서 읽는게 전부였다. 그때 나는 시선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인쇄된 고호의 그림을 붙여놓은 집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고호가 사용한 주관적인 색채에 감탄했다가 차츰 그의 살아온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자료를 입수해서 읽는일을 거듭한 결과로 마친내는 고호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이 내가 환히 알수 있는 우리 아버지의 그것처럼 느껴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어떻게 살았길래 이런 그림이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히 풀리게 되었다. 고호는 한창때 1년에 2백여점의 유화를 완성하였다. 그것은 사흘에 2점의 그림을 그려냈다는 계산이다. 여필그림도 그렸을테니
까 고호의 매일매일은 '잠과 그림'뿐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의 삶은 인사치례나 친선방문, 취미, 도락, 여행같은것들이 끼여들수조차 없이 그림과 잠으로만 꽉차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무슨일을 하며 살게 될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고호처럼 몰두해서 살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나는 무자비하게 '잠과 그림'뿐인 세계로 나아갈것이다"
-P191-192



"전화가 왔다.

-니 남편 이름이 뭐니?-

하고 녹희가 물었다.

-김청남-

하고 내가 말했다.

-기도할때 점선이 남편 낫게 해주세요 하는데 그뒤에다 이름을 발음하는게 더 좋을것 같아서...-

녹희가 말했다.
나는 녹희 남편이 아플때 아픈지도 모르고 그 이름도 물론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데 새벽에 누군가 내 남편의 이름을 말하면서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이가 한명 더 늘었다는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 이름을 발음한다는 사실이 내 맘을 조금더 편하게 만들었다.
말기암의 통증을 진통제 없이 이겨내느라고 찡그리고 있는 남편에게 내가 말했다. 내친구가 자기 이름을 구체적으로 부르면서 기도하고 싶다고 해서 이름은 가르쳐줬어 하고 말했다.
찡그린 얼굴이 잠시동안 펴지면서 엷게 웃었다. 그 웃음이 차갑고 시원한 샘물 같았다. 그 샘물이 몸속으로 흘러들어 병을 씻어 낼것 같았다."
-P232

-[나, 김점선]중에서. / 도서출판 깊은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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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 (2010-09-17 02:35:56)  
"나, 김점선" ( 도서출판 깊은 샘 ) 당장 사서 읽어 봐야겠어요~!
이 늦-은 밤,
어딘가 서점 문을 열어 놓았다면 달려 가고 싶을 만큼요...

하루도 쓸고 딲지 않으면 직무유기로 내 자리를 내놓아야한다는 강박관념으로 나를 들볶지만,
때로는 밀쳐두고싶다.아무도 안보면...
하지만 난 착해야되고 선한척이라도해야되고...
중요한 것은 내가족의 안녕을 위하여 자신이 희생해도 전혀 억울하지않다.
헌데 남편에게만은 시댁과의 긴세월 인연 그냥 셀수 없어 스무스물 억울할까...
황홀함을 느꼈어도 한참 늦을 시각인데...
하여 죄를 짓고...
샤르트르의 말처럼 인간의 마음속에는 악과선 성스러움이 골고루 내재되어 있다.
그 내재된 악에 대해서 바로 내안애 내재된 악과 똑 같다는 생각 ....
작가의 수필 "나는 오랫동안 괴로워 했다" 는
내게 또다른 의미가되어 심리학 치료로 내면을 건드린다.
무자비하게 잠과 그림 뿐이 세계, 고호처럼 몰두 하는 세계!
집안에 웅크리고 책만 읽고 글만 슬수 있는 환경!
어딘가에 골몰할수 있는 여유!
이렇듯 나는 항상 이상과 함께 꿈만 꾸다 현실의 타협속에서 10년을 괴로워만 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악도 있고 선도 성스러움도 공존한다는 것을 상기하면 나를 닥달하지말자.
착해야한다는, 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며 체면의 껍데기를 벗자!
당장 모를 일이지만은...
" 나, 김점선" 은
형식과 체면유지로 쌓여 있는 단단한 나의 자아를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 이순간 한장씩 벗긴다!! 수필집 구입 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사랑합니다.

초의 선사께
기억의 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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