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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기환(2005-08-26 19:15:37, Hit : 4787, Vote : 214
 검은 돛배


검은 돛배

- 포르투갈 기행 -

吳 岐煥


나는 대륙의 서쪽 땅 끝 로카곶에 서 있다. 해안은 모래사장이 아니라 깎아지른 바위 절벽이다. 끊임없이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며 새하얀 포말을 만들어 낸다. 절벽 위에는 배들을 인도해 주는 등대가 서 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인도항로 개척을 칭송하고 민족혼을 일깨워준 대서사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시비가 서 있다. 시비에는 '보라. 유럽의 끝에 포르투갈이 있다. 여기서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는 시구가 적혀 있다.
대륙의 서쪽 땅 끝을 찾아오는 여행자를 위한 안내소와 간단한 스낵을 팔고 있는 카페가 달랑 하나가 있을 뿐, 우리네 눈에 익숙한 커피 숍이나 그 흔한 무슨무슨 가든 같은 음식점과 집보다 더 큰 간판하나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는 나무 한 그루도 없이 그저 한없이 넓은 들판뿐이다. 작은 꽃들이 피고 지는 옆에는 무성한 풀들이 2월에 부는 바람에 흔들린다. 찬바람에 뺨과 입술이 터지는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쓸쓸하고 거칠기만 한 로카곶. 한적하고 개발의 파도가 전혀 밀려오지 않은 시골 같은 풍경이 이어진다. 이웃 동네로 가는 언덕 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작은 꽃들이 피어 있는 오솔길을 걸어본다. 암벽 가까이 걸어가 본다. 대서양 더 가까이 까지 다가서 본다.
이베리아반도 서 남단에 위치한 남한과 비슷한 29,000여 평방㎞의 땅에 1,000만 명이 살고 있는 나라 포르투갈. 게르만, 사라센의 지배하에 있다가 12세기에 건국, 13세기에는 마젤란의 세계일주에 의해 최고 전성기를 맞는다. 그러나 16세기말에 이웃나라 스페인에 귀속되었다가 1668년 영국의 원조를 받아 독립한 나라. 그런데 이 땅에는 우리를 닮은 사람이 꼭 살고 있을 듯 싶은 생각이 든다. 우리 선조들이 15세기경에 포르투갈 사나이를 좇아와서 질경이 씨앗처럼 연꽃 종자처럼 이 땅에 씨를 퍼트렸을 성싶은 생각이 지워지지를 않는다. 먼먼 그리움, 깃발처럼 펄럭이는 미래에 대한 강한 향수가 배어있는 듯 싶어서 인가. 우리네처럼.
지중해에서 문명을 일으키고 발전시킨 유럽인들. 그들은 대서양을 건너 미지의 땅을 찾아 바다로 떠났다. 다 가마도 위험을 무릅쓰고 인도 땅을 찾아 바다로 떠났다. 아내와 애인을 남겨두고 돌아올 수 없는 뱃길을 그들은 왜 떠났을까. 그들이 찾는 향료는 도대체 어떤 것이 길래.
지중해는 내해라 해류가 없고 수초도 자라지 않는다. 그리고 갯벌도 없다. 게다가 하얀 포말을 이루는 파도에는 석회석이 섞여 있다. 물고기가 자라지 못하는 지중해는 어로의 터전이 아니라, 항해의 공간으로 활용되어 상업을 발전시킨 그들은 동물성 단백질을 물고기가 아닌 양에서만 구해야만 했다. 긴긴 겨울을 양고기를 먹으면서 지내야 하는 그들은 고기냄새를 제거해주는 향료가 필요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에는 동방의 섬에는 후추가 지천으로 널려있다고 쓰여 있다. 해서, 그들은 후추를 찾아 바다로 나섰다. 다 가마를 선봉장으로 하여.
그들의 굽힐 줄 모르는 도전은 1488년에 아프리카 남단의 희망봉을 발견했고, 10년 뒤에는 드디어 인도항로를 개척하여 꿈에도 그리던 향료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동남아에서만 구할 수 있던 후추는 무척이나 귀해서 화폐 역할을 할 정도였단다. 뿐만 아니라 광대한 브라질까지 차지했다. 그들의 동방 왕래 덕분으로 우리는 빵, 미누, 담배와 같은 물건을 알게되었고 남미가 원산지인 고추도 들여와 비로소 김치를 담가먹게 되기도 했다고 후로이드신부는 '일본사'에서 한국을 소개하고 있다.
포르투갈의 영화는 15세기말에 시작되어 150년 가까이 전성기가 이어졌다. 리스본에 있는 유럽 최대의 카지노장 주인이 마카오 카지노장도 경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마카오도 중국에 반환되고 말았다. 그들은 해외식민지도 없다. 지금은 유럽연합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분류되는 포르투갈. 역시 향수만이 남아 있는 나라.
우리는 포르투갈의 옛 영광을 찾아 벨렝지구를 향하고 있다. 달리는 버스에서는 파도(fado) 가수 아마리오 로드리게스가 부르는 '검은 돛배'가 흐르고 있다. 언제 돌아올지 기약도 없이 바다로 떠나 가버린 사나이를 기다리는 여인들의 가슴에 씻어지지 않는 한을 노래한 민요가 애절하게 흐르고 있다. 포르투갈 사나이들이 타국에서 동화되어 지내다가 두고 온 애인이나 아내가 그리워지면 말없이 돌아온다. 물론 빈손으로. 몸도 떠날 때의 건장한 몸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맞아준다. 그런가하면 끝내 돌아오지 않는 사나이를 무턱대고 기다리는 여인들은 씻어지지 않는 한을 노래로 달랬다. '검은 돛배'는 '가시리' '진달래 꽃'을 노래했던 우리의 여인들을 생각나게도 하고. 우리의 가락과 어우러져 내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우리는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좁다란 이면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1755년에 리스본에 큰 지진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지진에서 살아남은 지역을 구 시가지로 보존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서 있다. 파괴된 지역은 신 시가지를 건설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리스본은 이렇게 탄생되었다.
구 시가지 건물은 퇴락하고 볼품이 없어 보인다. 우리네 같으면 당장 재개발하여 아파트, 호텔, 빌딩을 건축하여야 할 건물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버스가 다닐 수 없도록 좁디좁은 길을 넓힐 생각도 하지 않고 걸어서 다닌다. 그래도 관광객은 몰려오고 생산품이 거의 없는 그들은 관광수입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30여 평 아파트에서 보통 2~3대가 동거하면서.
좁다란 가게에는 수탉이 그려진 도자기, 타일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고 손으로 뜨개질한 자수제품이 걸려있다. 뚱뚱한 여주인은 뜨개질에 골몰하고 젊은 여인은 순박한 미소로 우리를 맞이한다.
붉은 색 지붕에 흰색 벽으로 된 고만고만한 집들이 늘어서 있다. 관광객이 지나 다닐 뿐 인적이 드문 구 시가지는 어릴 적 추억이 묻어 있는 동네 골목 같기만 하다. 내 어릴 적에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늘 철로 가에서 놀았다. 하루에 한 두 번 지나가는 기차를 보기 위하여 해질녘까지 점심도 거르고.
검은 연기를 토하며 달려오는 기차를 보고서야 헐레벌떡 집으로 달려가는 나를 만나게 하는 구 시가지 풍경이다. 건물은 볼품이 없지만 곳곳에 식물무늬가 정교하게 그려진 푸른빛을 뛴 도기타일 장식이 눈에 들어온다. 사발 깨진 듯한 타일이 보도를 장식하고 있다. 돌담과 타일로 만들어진 문패위로 걸려있는 빨래가 바람에 날린다. '바로 저것들이 리스본의 옛 영화를 보여주는 물증'이라는 설명에 눈이 번쩍 뜨인다. 살다보면 영화는 수레바퀴처럼 돌고 도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구 시가지를 벗어나 벨렝지구로 가고 있다. 리스본의 옛 영광을 보기 위하여. 대 항해의 성공으로 벌어들인 엄청난 돈을 주체할 길이 없었던 국왕 마누엘 1세는 인도 항로를 개척한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는 제로니모스 수도원. 이슬람과 비잔틴 그리고 고딕양식이 한데 어울려 독특한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포르투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으로서 마누엘 1세의 이름을 따서 마누엘 양식이라고 부른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영롱한 빛이 깊고 높은 성당 안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다. 입구 한쪽에는 식물무늬가 아름답게 새겨진 석관에 다 가마가 누워있다. 포르투갈이 그렇게도 열망하던 향료를 손에 넣을 수 있도록 길을 터준 다 가마. 그 옆에는 인도항로 개척을 칭송하고 민족혼을 일깨워준 대서사 시인 루이스 드 카몽이스가 잠들어 있다.
우리는 해양 발견기념비가 있는 테조 강변으로 간다. 그 옛날 먼바다로 떠나갔던 돛배는 보이지 않는다. 여가를 즐기는 요트와 보트만이 보일 뿐이다. 그들에겐 해외 식민지도 없다. 마지막으로 마카오도 중국에 넘겨주고 말았다. 유럽연합에서 그리스와 함께 가난한 나라로 분류되는 포르투갈. 그래도 붉은 색 지붕과 흰색 벽으로 된 집에서 살고 있다. 고도 제한과 증축도 개축도 마음대로 못하면서 볓 백년이 지난, 내용 연수가 수백 번은 지난 집에서 2~3대가 옹색하게(?) 살고 있다. 또다시 태양은 찬란하게 비추일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우리는 이밤이 지나면 스페인을 향해서 떠날 것이다.





sysop (2010-12-02 17:50:28)  
제 2회 에세이아카데미아 수필넷 네티즌 상 이벤트
-
오기환 작가의 수필 <검은 돛배>/FONT>(네티즌 독자 2536 회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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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제목) / (작가) - (등록날짜) - (조회수) - (추천수)

작품보기click~☞검은 돛배/ 오기환 - 2005/08/26 - 2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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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상금,상패는 없지만 네티즌 독자들이 2536 회 click하신 조회수 자체가 상이니만치, 의미깊다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수필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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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환 선생님, 축하합니다! 더욱 문운이 빛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기환 수필가 약력-
충남 대덕군 기성면 봉곡리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였다.
정보통신부와 KT(한국통신)에서 정년퇴임 후
'창작수필'에 '안경다리'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한국수필문학진흥회, 창작수필문인회, 문학의 집.서울회원
특히 목요수필
동인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저서로 '뿌리'에 이어 '여름, 그 뜨거운 여름'을 상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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