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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지「상황문학」제8집 2010년 10월 발표작-
1. 전주의 그 겨울밤에는
2. 한벽당
3. 그리운 영암 덕진리
4. 강촌 구곡폭포 가는 길
5. 설야(雪夜)
6. 林
7. 불꽃놀이
8. 물고구마
9. 눈물
10. 밤 고양이
【특집】대표작 선집
그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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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그 겨울밤에는 / 도이 김재권
다시 온고을 가는 겨울에는
함박눈이 내리면 좋겠어
한옥마을 고신의 창가에 앉아
눈 오는 정경 바라보며
한여름 땡볕을 연인 삼아
천년고도를 누비던 이야기
쏜살같이 지난 이야기들에
함빡 웃음 짓는 천사가
곁에 있으면 정말 좋겠어
사랑하고 있어서
따뜻한 사람들
밤눈 맞으며 태조로
은행나무 길을 거닐다
아, 손 시려, 하며
파카 호주머니에 살그미
손을 밀어 넣고는
찰방진 남도 말씨로
워메, 따땃허네요 잉
살갑게 말하는 천사
같은 하늘 아래서
숨을 쉬고 있으니
이 얼마나 설렘이냐고
아, 조타, 조타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정겹게 말하는 천사
괴오쇼서, 괴오쇼서
그 어느 해 겨울
전주의 밤에는
몸으로든 마음으로든
흠뻑 젖을 수 있도록
함박눈이 펑펑 내리면
정말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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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벽당 / 도이 김재권
객아를
버리려고
소 한 마리
몰고 갔다
짊어진
한 마리 소
얼마나
무겁든지
전주천
한벽당 돌에
소 한 마리
묶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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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영암 덕진리 / 도이 김재권
윗입술 살긋하게 감싸던 모란꽃을 잊지 못하여
떠나지 않으려 떠 있는 마음 어찌나 짓눌렀던지
서울 가는 길이 하냥 멀어 눈물을 쏟을 뻔했다
이렇듯 짧은 여정이 지나면 어김없을 이별이라
차마 못 잊을 화밀을 두고 떠나는 싸한 마음에
새벽녘 먼동이 틀 때야 겨우 잠이 들고는 했다
꽃물에 취해 강진으로 영암으로 나든 나날들이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뜨거운 이연이었던 것을
아, 아, 너와 나는 정녕 이리 나뉘어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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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 구곡폭포 가는 길 / 도이 김재권
잠시 머문 대나무집 뜰의 따사함에 몸이 나른하다
떡갈잎 타는 향내에 불현듯이 옛 생각이 났다
그래, 예전에는 저기 디딜방아 하나 있었고
저기 어린 산벚나무는 늘 푸른빛으로 살았지
사랑방 아궁이 장작 타는 소리에 잠 못 이루고
호롱불 춤사위에 반해 밤이 어찌 지나는지도 몰랐지
이제 그 아릿한 외나무다리는 보이지를 않네
구곡의 저 단풍은 내 여인의 붉은 입술이었고
아홉 구비를 거친 저 폭포수는 내 여인의 나신이었어
언제든 소나무에 걸린 물안개의 순정도 변함이 없었지
이제 가을 강을 건너면 겨울 강에는 눈꽃이 피리라
어느 틈에 강마을 산들은 잿빛에 젖어들 터이고
외로움에 떠는 돌이끼 사이 산간수마저도 시리리라
오솔길 따라 숲길을 지나 재 넘어 산을 넘으니
봉화산 검봉산 자락 문배마을은 온통 가을밭이다
오늘은 뉘 사랑에서 이 가을 불을 태울까나
뉘 사랑에서 내 여인 같은 이 가을 물을 마실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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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야(雪夜) / 도이 김재권
"처사님, 처사님, 눈이 와요 눈이요!"
수년 전 산사에 묵언 수행하러 갔을 때
동자승 승아가 달뜨게 외치던
그 해맑은 소리가 다시 들리는 밤
이렇듯 천지간에 하얗게 눈이 내리는데
내 일찍이 꿈길에서 헤맨다면
어찌 시의 사람이라 할 수 있으리
'그래, 승아, 승아, 눈이 온다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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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 / 도이 김재권
아무도
모를
은밀한
수풀
하나
곁에
있으면
좋겠다
생의
끝까지
잔잔한
여운이
환영으로
남을
특별한
사유림
하나
밤새
이슬에
젖어도
아무도
모를
나의
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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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놀이 / 도이 김재권
결코 드러내지 아니한 은은히 비치는 꽃잎 속에는
섬 안 옥석의 불기둥이 하나 가득 들어 있었다
몰랑한 듯 살 물결로 조이는 실린더유의 넘침으로
꽉 찬 듯 오달진 듯 힘찬 피스톤의 용솟음으로
거침없이 열기를 내뿜는 이슬 속 불꽃놀이의 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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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구마 / 도이 김재권
아, 아,
농익은 여인의 몸부림이다
대체 이를 어찌하랴
벗기면 벗기는 대로
손가락 마디마디
끈적이는 이 촉감을
아, 아,
사십 중반의 무르익음이다
대체 이를 어찌하랴
진액이 봇물이 되어
손바닥 가득가득
질퍽이는 이 미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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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 도이 김재권
흐르는 눈물을 보여야만
우는 것이라 하지 마라
흐르는 눈물이 없어도
떨어진 흔적이 없어도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울 수가 있단다 사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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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고양이 / 도이 김재권
봄을 건너뛴 초하의 밤이다
아직은 봄이어야 할 날이건만
갑작스럽고도 엉뚱하게끔
여름비가 후두두 내린다
야우야우
있는 폼 없는 폼 다 재며
그러나 조금은 쓸쓸한 듯한
고양이 한 마리가 밤비를 맞으며
골목길에서 방황하고 있다
야옹야옹
고양이 생이 고달프면 얼마나 고달프겠냐고
네 삶이 내 삶보다 더하겠느냐고
뒤돌아 문뜩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집으로 들어와 냉수 한 컵을 들이킨다
벌컥벌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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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대표작 선집
그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도이 김재권
살다 보면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별 소식이 없는 듯 이리 살아도
마음 한편엔 보고픈 그리움 두어
보고 싶을 때면 살며시 꺼내보는
사진첩의 얼굴처럼 반가운 사람
그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참 동안 뜨음하여 그립다 싶으면
잘 지내느냐고 이메일이라도 띄워
안부라도 물어보고 싶어지는
풋풋한 기억 속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면서 왠지 붙잡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만 잊은 듯하여도
문뜩문뜩 생각에 설렘도 일어
그렇듯 애틋한 관계는 아닐지라도
막연한 그리움 하나쯤은 두어
가슴에 심어두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쩌다 소식이 궁금해지면
잘 있는 거냐고, 잘 사는 거냐고
휴대폰 속에 젖은 목소리라도
살포시 듣고 싶어지는 사람
그 사람이 정말 당신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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