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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윤	(2006-08-27 12:30:24, Hit : 509, Vote : 26)

바가지 우물

바가지 우물

- 원화윤 -

1.
고욤나무와 감나무가 성글게 서 있는
산비탈에 앉은 작은집에는 바가지우물이 있었다
작은 돌들이 울타리로 이끼가 도톰하게 낀
바가지우물에는 언제나 물이 찰락찰락 넘쳤다
가뭄에도 물이 줄지 않은 바가지우물에는
언제나 사발만한 바가지가 동동 떠 있었다
물을 먹어 노리끼리 묵직한 작은 바가지는
오고 가는 나그네의 타는 목을 축여 주었다
바가지우물터는 쉬어가는 나그네 뿐 아니라
청솔모나 다람쥐도 놀다 가는 만만한 쉼터였다

2.
이슬이 내린 장독대에 정안수를 올리는
작은어머니를 따라 나오면 바가지우물 속에는
언제나 별님도 달님도 내려와 놀고 있었다
백합꽃이 피어 있는 장독대 오른쪽 옆에는
나이 많은 앵두나무가 있는데 그 앵두나무를 타고
올라간 박넝쿨에는 조롱박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제비도 고향으로 떠나고 박넝쿨이 누렇게 되면
작은어머니는 잘 익은 조롱박만을 골라
작은 톱으로 반을 갈라 영근 박씨를 골라내고
가마솥에 장작불을 듬뿍 지펴 쪽박을 푹푹 삶았다

3.
푹 삶아진 쪽박은 달챙이 놋숟갈로 겉껍질을
모두 긁어 달그락달그락 소리가 나도록 바싹 말려
손잡이에 구멍을 뚫어 줄에 꿰어서 광 구석
시렁에 매달아 놓고 나눠 주며 일년 내내 쓰셨다
작은어머니를 좋아하는 난 작은집에 가길 참 좋아했다
작은어머니를 따라 논에 가서 메뚜기도 잡고
잡은 메뚜기를 강아지풀에 줄줄이 꿰면서
논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허수아비를 바라보면
그 옆에 서 있는 허수어미는 해죽이 웃고 있었다

4.
벼 낟가리가 여기 저기 수북한 빈 논에서
벼를 터는 탈곡기소리가 재미가 있어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새참을 이고 가는
작은어머니를 따라 가다 보면 여름 내내
땡볕에서 애쓴 허수아비가 참 고마웠다
처서도 지내고 가을 문턱에 서니
보고 싶은 작은어머니가 생각나는 이 아침
작은집 뒤뜰에 찰락대던 바가지우물이 그립다
바가지우물에 뱅글 뱅글 노니는 쪽박처럼
세월의 테가 굵어질수록 연둣빛 추억이 맴을 돈다.

2006. 08. 27.

△ -동인지「상황문학」제4집 발표작-

▽ 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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