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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화윤(2006-11-21 11:30:46, Hit : 437, Vote : 29) 
 어머니 그늘






    어머니 그늘


    계절마다 색다른 농산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농산물 공판장에는 가을 문이 열리면서
    월동준비 양념거리가 그득 그득 쌓여 있다
    입동이 지나고 김장철이 되니 산지에서 직송된
    김장김치거리가 무더기 무더기로 어마어마하다
    그렇듯 계절마다 색다른 농산물들이 모여 드는
    공판장은 들어오고 나가는 농산물만큼이나  
    활기찬 왁자함은 질펀한 사람 냄새에 정겹다  
    공판장 옆 정육점에는 도살장에서 잡아 온
    소내장이 고무함지에 가득히 핏물에 잠겨있다

    2.
    핏물에 잠긴 소내장을 보니 매년 김장철이 오면
    식구들이 좋아하는 날배추 된장국을 평소보다
    자주 끓이시던 어머니 구수한 손맛이 생각난다  
    쌀뜨물을 국물로 끓이는 날배추 된장국 재료는
    배추꼬랑이와 소내장을 듬뿍 섞어 끓이는데
    배춧국 부재료인 소내장은 양지머리 허파
    곱창 천엽을 주로 넣기 때문에 그 내장들은
    호렴으로 빨래 빨 듯 한 참을 비비고 주물러
    여러 번을 헹궈서 살짝 끓여 냄새를 다 빼 낸
    달착지근한 날배추 된장국이 먹고 싶은 김장철이다

    3.
    새 국물로 끓일 날배추 된장국을 한 소금 끓여
    적당하게 익은 내장을 잘게 썰어 갖은 양념으로
    조물조물 버무려 펄펄 끓는 된장국에 다시 넣어
    깊은 맛이 나도록 약한 불로 은근히 또 끓인다
    장시간 끓인 날배추 된장국은 구수한 국물 맛이
    먹을수록 참 맛있었던 감회에 김장때가 오면
    어깨 너머로 배운 어렴풋한 그 진맛이 생각나
    단골 정육점에 주문 해 놨던 소내장을 손질해
    어머니 손맛을 차근차근 추억하며 정성을 모아
    끓여도 어머니 손맛이 안 나 매번 아쉬운 맛이다

    4.
    당신만의 솜씨로 계절에 맞는 국거리를 준비하며
    계절에 맞는 밑반찬을 요것조것 갈무리하던 어머니
    정육점에 소내장이 들어오는 날이면 천엽을 사서  
    찬물에 담가 핏물을 빼고 호렴과 밀가루를 섞어
    냄새가 빠지도록 주물러 씻고 또 씻어 잘게 다져
    은근한 불에 폭폭 끓여 흐물흐물하도록 고아 지면
    한약 짜는 베보자기에 쏟아 베보자기 양쪽 끝에
    놋숟갈을 대고 두 손으로 짜면 우윳빛 즙이 쏟아진다
    구수한 천엽 즙을 따뜻할 때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춰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건강식을 잊지 않고 챙기시던 어머니

    5.
    칼바람에 문풍지도 서러운 긴 긴 겨울 밤이면
    고전 얘기책을 가락을 넣어 밤늦도록 즐기시던
    구멍 난 양말에 전구를 끼어 감쪽같이 꿰매 주던  
    당신 광목 버선도 한 땀 두 땀 박음질로 만들던
    우아한 한복 맵시에 쪽머리 두상이 고왔던 어머니
    한복 옷감 명주를 홍두깨 다듬이질로 곱게 다듬어
    골무 낀 손으로 바늘 끝을 쪽머리에 쓱쓱 문지르며
    밤이 이슥토록 아버지 솜바지저고리를 지으시던 어머니  
    살림살이 지침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빈틈없이 일깨워주신
    남편에게나 자식에게나 內柔外剛이던 존경하는 어머니

    6.
    품에 꼭 보듬은 자식 때 맞춰 젖 먹이듯
    소내장 천엽이나 건강식에 좋은 재료를 챙겨
    하늘 같이 높이던 아버지 공경에 거스름 없었던
    맛깔스러운 음식솜씨 맛 노련한 바느질솜씨 멋
    겨울 문이 열리고 김장철을 맞으니
    다시 먹고 싶고 다시 입고 싶은 어머니 마음
    길어지는 상념에 목울대까지 치미는 그리움은
    어둠을 밝히는 새 아침 먼 동 빛살도
    고요를 깨우는 새 아침 기적 소리도
    더 싸늘하게 더 멀게 느껴져 가슴 적신 이 새벽
      
    아늑하고 포근했던 시간 속으로 파고들수록
    한없이 애틋해지는 영원한 그리움 내 어머니 그늘입니다.




    2006. 11. 17.

    원화윤


△ 단풍을 보고
▽ 그 가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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