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인지「상황문학」제4집 2006년 8월 발표작 10편-
1. 몽중 녹차夢中 綠茶
2. 폐시총廢詩塚
3. 한얼산 산상기도
4. 회진포구에서
5. 그런 사람
6. 설유해 석화雪有海 石花
7. 극락조화極樂鳥花
8. 애련愛戀
9. 산채마을 애수
10. 순애純愛
※ 8.의 시는 기(旣) 발표작을 재(再)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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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중 녹차夢中 綠茶 / 도이 김재권
아주 먼 옛날 내 할아버지께서 건국하신 남도의 땅.
춘분이 지난 다음날, 그곳 가락국에서
‘夢中 꿈에 본 차’가 선물로 왔다.
티백을 컵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부어 우리니
우러나오는 것은 녹차가 아니라
아늑한 전설 같은 그리움이었다.
그윽한 향이라, 담백한 맛이라, 꿈을 실은 차라,
그것도 해발 432m의 몽중산 기슭에 자리한
보성 몽중산 다원의 차라니,
마치 옥빛 구름을 만난 듯 설렘이고 기쁨이었다.
본디, 마음이 어질고 아름다우면
보이는 것마다 아름다운 것이요,
깊고 넓음의 속내 또한
고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라 했다.
정성으로 보내온 마른 대추와 포도씨油까지
마음으로 건넨 선물 가슴으로 받으니
이 어찌 설렘이고 기쁨이지 아니하랴.
어느 해 초가을날, 살포시 미소 짓던
현모양처의 따스한 인품을 첫눈에 헤아렸으니,
그 풋풋한 기억을 새길 수 있도록
이 밤도 옥빛 구름인 듯 몽중 녹차를 마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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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시총廢詩塚 / 도이 김재권
차마 쓰지 못하는 시가 남아 서럽게 한다. 더 이상 쓸 수 없는 시가 되어 죽어만 간다. 사라져 가는 것이 어디 시뿐이랴, 나의 사랑은, 너의 그리움은 빛을 잃은 아득한 노래가 되어 이미 생명을 잃어버린 폐시廢詩의 무덤과 같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폐선廢船 속에 나뒹굴고 있을 그 차디찬 폐시들을 모다 걸러내어 분시焚詩하리라. 다시는 샘이 끊어지는 시는 쓰지 않을 일이며 그리고는 옛일처럼 총塚에 묻어 아주 잊혀야 하는 일이다.
*폐시총廢詩塚: 버려야 할 詩들의 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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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산 산상기도 / 도이 김재권
주님이 주신 사랑이 어디
저 골짜기에 흐르는 생명수뿐이겠습니까
산딸기 붉게 익은 풍성함도
주님이 주신 은혜요
베들레헴 성전에 둘러 핀
저 자귀나무꽃도
주님이 주신 가지로되
주여! 주여! 주여!
‘성령으로 뜨겁게
말씀으로 새롭게
은사로 강하게 하여지이다.’
주님이 주신 소망이 어디
저 아름드리의 단풍나무뿐이겠습니까
초록이 짙게 물든 온유함도
주님이 주신 은혜요
잣나무 숲을 이뤄 그윽한
저 기도의 동산 야외 성전도
주님이 주신 가지로되
주여! 주여! 주여!
‘너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주님이 주신 믿음이 어디
저 구름 새 빛나는 별뿐이겠습니까
새벽녘 산봉우리 휘도는
저 구름안개의 오묘함도
주님이 주신 은혜요
산상에 울려 퍼지는
저 종탑의 복음도
주님이 주신 가지로되
주여! 주여! 주여!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오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성령이 충만하시어
찬송 때마다 눈물을 흘리더이다
통한의 눈물이옵니다
거듭남의 눈물이옵니다
하오니 주여,
은혜의 가지에서
떨어지지 않게
영적의 중심을 내려주소서
가는 길을 열어주시고
밝게 비추어 주시어
영영히 구원하소서
‘주여! 주여! 주여!
할렐루야! 아멘!’
*한얼산: 경기도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한얼산기도원’이 있는 은혜의 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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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포구에서 / 도이 김재권
회진가는 길에는 유난히 소나무가 많다. 장흥에서 출발하여 솔치고개를 넘으니 관산읍. 거기 관산에는 봉우리마다 천자의 면류관을 쓴 천관산이 있다. 빛고을의 여린 새 한 마리 억새평원으로 날아들던 천관산. 삼산방조제를 지나니 검은빛 벌의 갯마을이 열리고, 한적한 포구의 정경에 갯바람도 살갑다.
회진초등학교 산자락 아래 트인 바다와 꼭꼭 숨은 갯마을 선생님! 빈 고깃배에 펄럭이는 깃발은 소랭한 그리움만 더해 가슴이 시리다. 두렵다고 했던가? 자꾸만 자꾸만 망설여진다고 했던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빈 공간 같은 거. 겨울바다의 빛은 결코 푸르지 않다. 그 푸르지 않은 은빛 바다에 유정한 이름 불러 본다.
하얀 파도가 슬픈 바다의 메아리. 사랑이라 말하지 말아요. 끝이 보인다면 말이어요. 오늘은 사랑한다 하여도 내일은 아니어요. 영원이라 말하지 말아요. 그 말을 믿을 수 있나요. 지금은 사랑이라 하여도 언젠가는 변하는 걸요. 그립다 하지 말아요. 소식이 끊기면 어쩌겠어요. 지금은 사랑인 듯해도 스쳐 가는 인연인 걸요.
거기 회진포구에는 여린 새가 있다. 관산을 돌아 닿은 회진초등학교. 존재하는 그 모든 사랑은 변한다 하는 여린 새는 지금 출장 중이다. 여린 새는 참 좋겠다! 푸른 바다 애인 두어 은물결에 그리움도 삼키니. 짱구 분식집 표구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이것까지 참으라 -눅22:51-” 아, 아 삭금의 바다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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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 / 도이 김재권
내 비록 부족하여도
끝까지 곁에 있어 줄
그런 사람 내게 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
‘부디’라는 말이
필요치 않은 헤아림으로
‘정녕’이란 말이
무색한 여백의 사람.
“꼭이어요?”라고
주고받아야 하는
그런 공식의 관계가 아닌
언제든 내 안에 머물러
평안하다 느낄 수 있는
살가운 사람.
하루 이틀
사흘 밤을 꼬박 새워도
지칠 줄 모르는
격렬한 감정의 소유자,
친구 같은, 애인 같은,
부부 같은 사람.
언제든 내 편이 되어
따뜻한 가슴으로 감싸주는
온유한 사람,
세월이 가면 갈수록
나를 닮아 간다면서
“당신이 곁에 있어
참 행복하다!” 말하는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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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유해 석화雪有海 石花 / 도이 김재권
그래요, 남도에서부터
불덩이 잡고 오느라 애먹었지요
서울은 다가오는데
식을 줄 몰라 하니
그러니 어찌하겠어요
한강의 동쪽 갯벌에서
석화라도 구워야지요
뜨거워 벌어진 석화를 보니
어찌나 물이 흐르든지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고요
그러니 어찌했겠어요
싱싱한 굴 한 보시기
그리운 조갯살에 쏟고서야
아흐으! 으흐으!
조타! 조타!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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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조화極樂鳥花 / 도이 김재권
그녀는 비천
하늘의 선녀
고혹적 자태
성숙한 몸매
초록빛 여음
핏빛 불두덩
주홍빛 음순
보랏빛 음핵
촉촉한 살잎
천연의 수액
그녀의 몸은
온통 성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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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愛戀 / 도이 김재권
밤새 그리움 쌓여
눈이 되었나 봐
저 눈에
이 그리움 실어
남도까지 갈까
저 눈에
이 사랑 실어
남해까지 갈까
가다 눈물 되어
사라지면 어떡해
그 빈 세월
혼자인 사람
가슴 아파 어떡해
살 에이도록
차가운 겨울
살빛 그리워
눈물 지낸 밤
차라리
저 눈밭에
이랑 이랑
뒹굴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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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채마을 애수 / 도이 김재권
1. 생고生苦
'이건 아니었어요...' 독백처럼 내뱉는 그녀의 말은, 어쩌다 '후우～' 하니 길게 뿜는 나의 한숨과 무엇과 다르리. 악! 아악! 무시로 손이 마비되는 절규와 뼈가 부딪치는 아우성! 주야신음晝夜呻吟에 자반뒤집기조차 버거운 우리는, 우리는...
2. 피어避語
지금은 잠시 말을 외출해야 한다. 한마디 말끝에도 날이 서 있어 자칫 상처 줄까 말 없음이 더 낫다. 언힐言詰이 본심이 아니거늘 무심코 내뱉는 말이 극약이 되어 차마 설워할까 말 잊음이 더 옳다.
3. 취기醉氣
일일시주일日日是酒日! 취했으나 마음만은 몽夢하지 않아 이를 취했다 해야 하는지 아니 취했다 해야 하는지, 사랑에 취했으나 궁핍하기만 하니 이쯤에서 연緣을 접어야 하는지 아니 모르는 척 살아야 하는지.
4. 애수哀愁
하나를 얻으려다 그만 많은 것을 잃어버렸어. 자신의 최면과 독려가 그만 한계에 부딪힌 거지. 내심內心 외심外心을 못 맞추고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리도 진저리나게 헤매기를 반복하는지. 그저 살아감이 급급한 처연한 나날들에 자꾸만 가슴이 아파!
5. 종극終極
아직도 거기 강기슭에는 보라붓꽃이 피어 있을 테고, 대성리 저편 어딘가에는 청초한 순수가 남아 있을 터, 그러나 그냥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 사랑도 보내고 그리움도 버리고 세연世緣도 여기까지. 마침내 긴 안식을 찾는 마침표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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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애純愛 / 도이 김재권
천 년 동안 연모한 당신입니다
현세에서야 연이 닿았습니다
세세생생世世生生
세세생생世世生生
또다시 천년이 흐른다 해도
부부의 연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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