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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2005-12-05 22:42:47, Hit : 510, Vote : 36)

차를 마시며 / 박지혜

차를 마시며 / 박지혜
1
우울한 날에
차를 마신다.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보고 싶을 때
차를 마신다.
찻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입안이 개운하고
마음의 문이 열린다.

차를 마시듯
세상을 살 수만 있다면
어려운 일이 없을 텐데
옹졸한 생각에
아무 때나
찻물을 끓이지 못한다.
찻잔을 늘어놓고도
아무 때나
손이 가지않는다.

2
피를 맑히려
차를 마신다.
핏속의 찌꺼기를 씻어내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꽃가루차를 마신다.

벌들이 나르던 꽃가루를
쉬파리가 나르고 있다
꽃속에 파묻혀
꽃술과 연애하며
쉬파리들이 대신 나르고있다
그 꽃가루차로
내가 피를 맑히고 있다

몸은 이렇게 씻어내는데
영적인 동맥 경화는 어떻게 하나
달콤하고 끈끈한 위선을 버려야 한다
아무런 미련없이
훌훌 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