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데라 아저씨 1 / 도월화
- 사로잡힌 자들 -
사람들은 누구나 무언가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로잡힌 자들. 사랑에 사로잡히고, 재물이나 명예에 사로잡히고, 운명에, 혹은 나름대로의 신념이나 신앙에 사로잡혀
살아간다. 모두가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나 슈바이처 박사처럼 숭고한 인생의 목표에 사로잡힌다면 위대한 세상이 도래하겠으나 그런 분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아무튼 인간을 사로잡은 어떤 거대한 존재가 한 번 그의 활시위를 당기면 화살은 날아가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다. 나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은 후 마구 읽고 싶은 책들이 잇달았고, 수필도 몇 편 쓰게 되었다.
나의 글쓰기에 있어서, 쿤데라가 활이라면 나는 화살이었다고나 할까. 당시 쿤데라는 나로 하여금 글을 쓰지 않고는 참을 수 없게 만들었다. 밀란
쿤데라의 문장이나 표현을 마음속에 계속 상기하고 있으면 나도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터무니없는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도
절실하게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은 멀리는 사춘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가까이는 역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을 무렵부터 이고, 나의 인터넷 사이트에도 쿤데라 아저씨의 방이 두 개나 있으니 이건
보통 인연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쿤데라 게시판 글을 올리신 분이나 쿤데라 자료를 찾아 홈을 방문해 주신 많은 쿤데라마니아들과 사이버
스페이스에서 친분을 쌓게 된 것도 다 쿤데라 아저씨 덕분이 아니겠는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으면서
주인공, 토마스의 수많은 여성편력에도 불구하고 쿤데라 소설이 그야말로 키치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몹시 궁금했는데 쿤데라
게시판 19번게시물(서평-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게시자: 김태훈 님)에서 해답을 발견하고 무척 기뻤다. 그것은
바로 '주인공 토마스가 처한 상황 역시 사회 전체가 관료주의적 시스템이며, 구체적이고 진정한 삶이 거절당한 추상적이고, 비인간적인
그로테스크(grotesk)한 상황이다. 쿤데라를 읽는다는 것은 결국 이 그로테스크하고 허무주의가 짙게 깔린 키치의 상황들을
<사탄적>관점에서 철저하게 파헤치고, 파괴함으로써, 그 뒤에 감추어진 진실 된 세계를 발견하고, 놀라워하는 작업이다.‘라는 글귀에서
분명해진다.
언젠가 이 책으로 제작한 영화를 보고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쿤데라는 소설을 쓸 때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들 속에
"수많은 실험적 자아라고 할 수 있는 여러 인물"들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듯이, 그는 인생의 빛과 어둠, 믿음과 배신,
무거움과 가벼움 등의 다면성과 그 한계를 소설 안에서 넘나들며 진실에 근접하고자 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극히 한쪽으로 치우친 부분만을 뽑아
나열해 놓은 것 같았다.
내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빠져든 이유 중의 하나는 문체 때문이다. 여 주인공,
테레사가 우연히 사랑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우연의 새가 그녀의 어깨 위에 모여 들었다'라고 표현했다. '테레사는 영혼의 승무원이 육체의 갑판
위로 뛰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라는 글귀도 기억에 남는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시처럼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때로는 작가 자신이
해설자로 등장하여 에세이를 읽는 듯 작가와 독자 간에 가까운 거리에서 귀를 기울이게 한다. 쿤데라 자신도 언젠가 매스컴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난 각각의 장이 한편의 시처럼 하나의 전체가 되는 것을 좋아해요. 각각의 장이 단순히 서술적 사슬 속에서
하나의 고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게 되었으면 해요. 아니 그 이상이에요. 그 같은 선택은 나의 소설미학과 일치합니다.
각각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장들은 독자가 이야기의 흐름에 정신없이 떠밀려가는 것이 아니라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한
권의 책 속에 서스펜스가 너무 많으면 그건 제풀에 소모되고 소비되는 거예요. 소설은 빠른 속도를 싫어해요. 독서는 느릿느릿해야 하고 독자는 한
페이지, 한 문단, 심지어는 한 문장의 매혹에 사로잡혀야 돼요."라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주인공인 체코
외과 의사, 토마스와 식당 종업원, 테레사는 우연히 보헤미아의 식당에서 만나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사랑과 성행위는 별개라고 생각하는
토마스는 테레사를 만나 처음으로 동정이나 책임감 같은 것을 느낀다. 그는 동정이 사랑과는 다른 것이긴 해도 동정을 느낄 수 있는 상대와는 다른
여러 가지 감정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테레사는 모든 면에서 토마스보다 열등하다. 테레사는 토마스의 여성 편력으로 고통 받고 질투를
느끼며 잠을 잘 때도 그런 심정과 관련된 꿈을 자주 꾼다. 토마스는 그녀의 질투를 부담스러워하지만, 테레사는 어쩌다 토마스가 질투의 감정을 갖게
될 경우 당신 노벨상 받았어, 라는 말을 들을 때만큼 기뻐한다.
러시아의 침공을 피해 스위스로 가서도 토마스의 방탕은 계속되었고,
괴로워하던 테레사는 프라하로 되돌아간다. 토마스는 자신의 위험을 알면서도 테레사를 뒤따라 프라하로 돌아오고, <정상화>라는 허울 좋은
압력에 눌려 외과의사라는 직업을 박탈당한다. 책 끝 부분에 오로지 테레사 때문에 의사 직업도 포기하게 된 토마스는 테레사와 행복하고 고요한
전원에서의 삶을 살아간다. 자동차 사고로 함께 죽는 순간까지 테레사는 짧은 기간이나마 서로 사랑을 확인하고, 더 이상 질투하지 않아도 되는
평온한 생활을 한다. 마지막의 평화로운 전원생활이 두 사람에게 없었다면 나는 작가인 쿤데라에게도 실망했을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이 소설에서 [초벌그림은 항상 무엇인가에 대한 밑그림, 한 작품의 준비 작업인데 비해, 우리 인생이란 초벌그림은 완성작 없는 밑그림, 무용한
초벌그림]이라고 쓰고 있다. 토마스가 되뇐 독일 속담같이, 과연 한번뿐인 인생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의미한 것인가. 오히려 더욱 키치 문화에
휘말려 대중 속에 주인의식 없이 흘러갈 수는 없지 않는가. 작가는 말미에서 테레사와 토마스가 자동차 사고로 죽기 전의 행복한 전원생활과 그들의
죽어가는 개, 카레닌에게 보내는 사랑과 생명의 소중함을 통해 한 번뿐인 ‘미경험의 별’(쿤데라가 이 소설 제목으로 선택할 뻔 했던)에서의
따뜻함을 독자에게 보여주며 방향을 제시해준다.
테레사는 질투심으로 악몽을 꾸게 될 만큼 토마스에게 사로잡혔다. 제 1부와 동일한
제목이 붙은 제 5부 ‘가벼움과 무거움’에서는, 토마스의 여전한 여성 편력 중에도 [뇌 속에는 시적 기억이라 일컬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지대가
존재하여 우리를 매료시키고, 감동시키고,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을 주는 것을 기록하는 모양이다. 토마스가 테레사를 알고 난 뒤부터 어떤 여자도
그의 뇌 속에 있는 이 지대에 아주 사소한 흔적조차도 남길 권리가 없었다.]라고 나오는데, 이는 토마스도 테레사에게 사로잡힌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작가의 새로운 탐사의 결과물이 아니겠는가.
인간은 거대한 우주 속의 한 점 먼지 같이 작은 존재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조차 고독과 불안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인간인가. 실존의 가치가 흔들리는 암담한 현실의 허공에 뜬, 먼지처럼 가벼운 존재라는
것이 참을 수 없지만 무언가에 사로잡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아주 매력 있고 기묘한 선물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다만
저마다의 인생 목표에 따라서, 그 선물 내용의 질적인 차이는 천차만별이겠지만.
(계속)
 
----------------------------
쿤데라 아저씨 2 / 도월화
- 쿤데라 방과 이벤트 방 -
밀란 쿤데라는 대학시절 프라하의 잡지
<리스티listy>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논문들을 읽었다고 한다. 쿤데라와 카프카는 둘 다 체코 출신이다. 나 같은 아줌마가 나이도
잊고 후덕한 삶의 실천에 눈 돌리기보다는 이런 얘기에 빠져 있다가, 나도 혹시 카프카의 중편소설에 나오는 그레고르 자무자처럼 벌레로 '변신'
하면 어떻게 하나, 에구, 이왕 변한다면 나비나 새가 된다면 모를까, 아니, 그 보다는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들어진 한 마리 잠자리가 되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모시 옷 같은 잠자리 날개 은빛으로 반짝이며 사과나무에도 날아 앉고, 탱자나무에도 살포시 앉고, 가을
하늘도 유유히 날아 봤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내가 깊이 빠져들어 읽은 한 권의 책이다. 책을 통하여
동서고금을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상상 속의 날기에는 비행기 표 예약할 필요도 없고
일등석도 따로 없으며 남녀노소나 인종의 차별도 없이 자유롭다. 나는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외출만 하면 집에 들어올 생각부터 하게 되는 20년
이상의 습관에 얽매여있다. 그런데 지난 5월 인터넷에 초가집 한 채 띄운 이후로 자유를 되찾은 느낌이다. 나의 홈페이지에는 내가 좋아하는 쿤데라
관련 게시판이 2개나 있다.
이벤트 게시판이 쿤데라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해 하는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맨 첫 줄부터 쿤데라는 니체의 영원회귀사상을 언급하고 있다. 쿤데라 게시판 제목에 니체도 들어가게 된 이유가 된다. '영원회귀'
란 독일의 철학자 F. W. 니체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내세운 사상으로 '영원한 시간은 원형(圓形)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일체의 사물이 그대로 무한히 되풀이되며, 그와 같은 인식의 발견도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내용이다.'(두산세계대백과 인용) 니체의 '영원 회귀'에
관심이 많아 니체 관련서적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몇 권 들춰보다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발췌하여 나 나름대로 각색한 것이 이벤트
게시판 설문 문제 내용이다.
참고로 그 부분의 니체의 글을 타이핑
해보았다.
'.....................................
우리가 멈춰선 곳에 출입구 하나가
있었다. "이 출입구를 보라!"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이 출입구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두 개의 길이 여기서 합쳐지고 있으며 아무도
그 두 길의 끝까지 가 보지 못했다. 우리들 뒤에 있는 이 긴 길, 이 길은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 앞에 있는 저 긴 길-- 그
길은 또 다른 쪽 영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두 길은 서로 상반되어 있다. 그들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리고 이 두 길은 이 출입구에서
만난다. 이 출입구의 이름은 그 위에 씌어있다. '순간'이라고. 그러나 누군가가 이 두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걸어갔다고 가정하자. 난쟁이여, 이
경우 그대는
이들 두 길이 영원히 합쳐지지 않으리라고
믿겠는가?
.........................'(니체/'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는 '순간'이란 이름의 출입구라는 글귀에서 나름대로 생각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이벤트게시판 설문 문제를
만들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설문은 윤회 사상에 관련한 문제가 아닐까 한다. 두 나그네가 산길을 가다가 동굴 앞에 다다랐다. 그 동굴 앞에는
순간이란 이름의 출입구라고 씌어 있었다. 출입구를 지나 앞으로 나가면 미래로 영원히 이어지는 길이 뻗어 있다. 출입구에서 등 뒤로 돌아서면 길은
과거로 영원히 이어졌다. 두 사람 중 한사람은 출입구에서 앞으로 나가 미래로 영원히 걸어갔다. 남은 한 사람은 오던 방향으로 되돌아 과거로
영원히 걸어갔다. 자, 두 사람은 까마득히 먼 언젠가 만나질까요? (단 두 사람의 수명이 영원하다고 가정할 때)라는 것이 바로 이벤트 게시판
설문 문제이다. 나의 질문 의도는 시간은 평행선인가, 원 모양으로 순환하는가, 인데 시간이 평행선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못 만난다, 순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만난다,를 택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 설문을 98년부터 통신바둑 동호회 게시판에 내었는데 도무지 호응이
없어서 대답해준 분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2000년 5월, 홈 개설하면서 넓은 인터넷 바다에서는 좀 다르겠지, 했는데 역시 마찬가지로 홈
게시판 중에서 제일 인기 없는 곳이다. 그래도 나처럼 쓸데없는(?) 얘기 즐기는 이들이 있어서, 한 두 해 지났을 무렵 11명이 답변을
올려주셨고 그 이후로는 다시 뜸하다. 설문에 등장하는 두 사람이 만난다고 하신 분이 7명, 못 만난다고 대답하신 분이 2명 중간입장에 서신 분이
2명이다. 애초에 설문의 정답이란 있을 수도 없고 문제도 말도 안 되지만, 답을 알기 위해서 라기 보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구체화 시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문제도 조금씩 변하게 되었고 홈페이지에 오신 분들과 함께 시간을 두고 오래도록 지켜보려고 한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리며 관심
보여주신 분들께 이 기회에 감사드린다. 아울러 쿤데라 아저씨에게도 할 수만 있다면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PS:
제 홈에 오신
나그네님들, 이벤트방 설문조사에 많이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짜 아이디로 글을 올려도 되오니 기탄없는 의견을 개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벤트방
가는길
------------------------------
|
|
Home우송해주신 신간을 전시합니다. 우편주소:
서울 영등포구 선유동2로6 서울영등포우체국 사서함 821호 우편번호: 07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