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댓글.twitterfacebookkakaoband
사상 처음으로 예약제로 운영하기로ㆍ최완수 소장 ‘추사집’ 38년 만에 개정판
간송미술관이 올 가을 전시로 ‘추사정화(秋史精華)’전을 마련했다. 19세기 동아시아 대표 지식인인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추사체 형성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리다.
12일 개막해 26일까지 간송미술관 보화각(서울 성북동)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1971년 가을 간송미술관이 첫 전시를 시작한 이래 처음 관람 예약제로 운영된다.
‘추사정화’전에서는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추사의 서예작품을 중심으로 그림을 곁들여 모두 44점이 선보인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부설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추사는 중국 고대 상형문자부터 전한과 후한·위진은 물론 당~송~원~명~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수천년 이어져온 중국 서법을 다 섭렵한 뒤 법고창신을 통해 추사체를 만들었다”며 “추사체는 서예적 의미를 넘어 지금 이 시대에도 ‘법고창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는 큰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추사가 당시 중국 문화를 수용하면서도 우리 고유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듯 서구문화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도 법고창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최 소장은 “전시회 제목처럼 추사 서예작품 중 정수를 뽑았다”며 “추사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에서 추사의 뼈를 깎는 노력과 타고난 천재성이 얼마나 발휘됐는지 살펴보면서 법고창신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谿山無盡(계산무진)’. 165.5×62.5㎝
<위 이미지>
‘積雪滿山(적설만산)’. 27.0×22.9㎝
<위 이미지>
전시회에는 추사가 30대부터 71세로 타계할 때까지 쓰고 그린 작품들이 나온다. 최 소장은 “추사체의 절정은 68세에서 타계 때까지의 작품으로 본다”고 밝혔다. 30대 추사는 스승인 중국 옹방강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해 “중후한 맛”을 보인다. 그러다 50대에 들어오면서 중국 서법을 나름대로 깨닫고 구양순 등 당나라 3대 서예가의 글을 바탕으로 “칼날같이 날카로운 맛”을 드러낸다. 추사체는 추사가 50대 중반인 1840년부터 8년간 제주도 유배라는 고단한 시기를 보낸 뒤에야 완성된다. 대중적으로 이름난 ‘세한도’ 역시 제주 유배 시절 작품이다.
출품작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은 37세때 쓴 행서대련 ‘직성수구(直聲秀句)’이다. 이어 ‘명선(茗禪)’을 비롯해 원교 이광사의 ‘원교필결’을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내용이 담긴 서첩 ‘서원교필결후’와 ‘서원교필결후’의 앞뒤에 붙어 있는 그림 ‘고사소요(高士逍遙)’와 ‘소림모정(疏林茅亭)’을 선보인다.
‘계산무진(谿山無盡)’은 추사체의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글자를 결합시키는 결구법(자법)이나 글자들을 서로 연결하는 배치법(장법)에서 파격적이면서도 최고의 완성도를 드러낸다. 탁월한 조형성은 모두의 눈길을 잡을 정도로 일품이다.
제자인 침계 윤정현에게 써준 ‘침계’는 추사가 얼마나 철저하고 까다로우며 자신에게 엄정한 연구자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명작이다. 추사는 침계로부터 30여년 전에 글을 부탁받았으나 ‘침’자의 예서 전형을 찾지 못해 30여년이나 고심한 뒤 결국 예서·해서 합체로 쓴 것으로 유명하다.
그림으로는 ‘적설만산(積雪滿山)’이 추사 작품의 특성과 추사의 성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30여년 난 치는 법을 배우고 익힌 추사는 모두 15폭의 난을 쳐 묶은 ‘난맹첩’을 남겼다. ‘적설만산’은 ‘난맹첩’ 상권 첫 폭의 작품으로 난을 통해 이 땅의 특성, 미감까지 표현했다. 마치 억센 잔디같이 강인한 기상을 녹여낸 난은 사계절이 뚜렷한 이 땅의 중부지방 춘란을 담은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추사의 좌우명이자 학문에 대한 기본 자세를 담은 ‘경경위사(經經緯史·경전을 날줄로 하고 역사를 씨줄로 한다)’, 타계하기 두 달 전쯤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예서대련 ‘대팽고회(大烹高會)’ 등도 전시회에 나온다. 문의 및 관람 예약은 070-7774-2523.
한편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전시에 맞춰 추사의 글과 글씨를 뽑아 풀어낸 <추사집>(현암사) 개정판을 38년 만에 펴냈다. 이 책은 1976년 출간되면서 추사의 학문과 예술 연구에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했다. 개정판은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바로잡고 보충한 데다 대중적 이해를 위해 많은 도판과 상세한 주석까지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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