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I OPINION》
도이 김재권
시인 / 칼럼니스트 / 시문학 강사
젊은 글지이들에게 보내는 권면
글지이들이 글만을 쓰고 산다는 것은 정말 현실감 없는 정신 나간 짓이나 다름없다. 글 쓰는 것 또한 그만큼의 경제적 뒷받침이 되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글 쓰는 건 정신적인 일이니 전혀 밑천이 안 드는 것이라 여긴다. 그러나 이건 정말 잘못된 생각이다. 더욱이 직접 가서 보고 느끼고 만지고 행하고 이내 돌아와서 쓰는 체험적 글을 중요시하는 경우에는 정말이지 많은 시간과 그만큼의 경비가 따라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시로 참석해야 할 행사와 문인의 교류는 또 얼마나 많은지 그만큼 많이 돌아다니고 또 그만큼 많은 정보수집도 있어야 한다. 그러니 글을 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시간적이든 금전적이든 상당한 노력과 투자가 있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닌 사람이 유명 작가도 아닌 사람이 차마 글을 팔아 나락 한 섬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닐진대, 그런데도 오직 글만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호구지책을 삼겠다는 사람들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쓰는 작업이 극히 일부 베스트셀러 작가나 유명 작가들을 제외하고는 결코 수입원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들 또한 실상은 교수, 교사, 강사, 출판사 발행인, 기업 경영인 등 기타 경제활동과 더불어 겸직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 또한 반드시 작품성에만 의존하는 이상향의 세상에 있지는 않다. ‘베스트셀러 만들기’로 작정하고 출판사와 대형 서점과 작가가 적당히 상업주의에 타협해야 이룰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독자층을 형성하여 왔던 문학 애호가들이 저마다 시인으로 수필가로 소설가로 등단을 하고 있는 시대다. 독자는 점차 사라지고 글지이들은 넘쳐나니 자연발생적인 베스트셀러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큰 잘못이다.
경제활동을 뒤로 한 채 글만을 써서 돈을 벌어 보겠다는 무지한 글지이가 아직도 남아있다면 차라리 잠시 글을 쓰지 않음이 현명하다 하겠다. 그 무력의 허기진 시간보다는 생업에 충실하여 경제적으로 넉넉함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과감히 감성의 틀을 깨고 삶의 현장에서 리얼하게 최선을 다하고 사는 모습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누구든 글을 써서 먹고 살겠다는 환상은 깨라. 오직 글만을 쓰고 강단에 나가 강의를 해서 먹고 사는 글지이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글지이는 그저 쓰고 싶어 쓰는 것일 뿐 거기서 얻어지는 것은 개인의 명예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말로 생존의 위기에 빠져있다면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모험이며 때로는 절필하고 현실에 귀속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시인의 바랑 / 도이 김재권
나락 한 섬도 되지 못하는
시인의 이름이여
시를 써서 버는 것보다
몸을 써서 벌어야 하는
바랑인 것을
너는 언제까지 그 죄를
짊어지고 가겠느냐.
길바닥에 널브러지어 흔한
시인의 허울이여
시와 뒹구는 열정보다야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소중한 것을
너는 언제라야 그 짓을
그만하고 살겠느냐.
지금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보겠다는 헛된 망상으로 글만을 붙잡고 있는 글지이들에게 권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당장에라도 세상 속으로 들어와 직업을 찾고 열심히 일할 것을 권면 한다. 차마 외도하는 짓이라 슬퍼하지 마라. 앞으로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는 터전을 만들기 위한 사전 준비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감성보다는 이상이 앞선 삶, 다시 말해 로맨티시즘보다는 철저한 리얼리즘을 수용하고 살아라. 그리하여 어느 시점쯤 가서 살기가 훨씬 편하여 마음의 여유도 생겨 어디를 훌쩍 떠나도 금전에 구애받지 않을 그런 넉넉한 삶이 되었을 때, 혹여 늦복이 터지어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글을 쓸 수 있는 그만큼의 사치가 조금이라도 허용된다면, 그때 가서 다시 글을 써도 결코 늦지는 않으리라.
아, 아 필자는 문단에 떠도는 슬픈 이야기들을 듣는다. “시집을 누가 돈 주고 사서 보나요?”라는 세인의 비아냥대는 소리에 당황한다. 어렵사리 자비로 출간한 책이 서점을 통해서도 잘 팔리지 않는다. 한편의 글도 읽어 보지 않을 사람인데도 지인이라는 명분으로 책은 주어야 하고 또 거저 주다시피 하는 세태다. 하물며 월간지니 계간지니 반연간지니 연간지니 하며 마구잡이로 난립하고 있는 문예지들의 춘추전국시대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등단을 아니 하셨습니까?” “작품이 아주 좋은데 한 번 등단해 보시지요?” 그렇게 추켜세운 문단 브로커들을 통해 공공연히 뒷거래되고 있는 “문예지 등단”이라는 타이틀. 이로 말미암아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보다 더 흔해져 버린 이 시대의 글지이들이라 애통해한다. 순전히 출판사의 수지 맞추기와 제 식구 숫자 늘리기에 급급하여 투망으로 마구 건져 내는 수준 이하의 글지이들, 한 술 더 떠, 글 쓰는 건 뒤로 한 채 문단의 줄을 찾아 혈안이 되어 있는 저 시정의 잡글지이들의 소리, 경제적 무능의 탈출구로 여기저기 숙주를 만들어 기생하는 더럽고도 추잡한 창녀와 기둥서방의 잡글지이들... 아, 아 그들이 문학을 알기는 아는가?
시인의 고독 / 도이 김재권
아, 아 이제는 돌아서렵니다
시의 사람이라는 허울 버리고
잃어버렸던 본질을 찾아서
그저 쓰고 싶어 쓰는 것일 뿐
예전이나 지금에나
변화는 하나도 없는 것
이렇게 혼곤하다
살그니 슬픈 기별의 낭인 될까
그게 설우니 돌아서렵니다
세상은 너무도 변하여
한 집 건너 이혼한 집이라
두 집 건너 시인의 집이라
첫 만남으로 사랑하던 순수
처음이라 사모하는 설렘
그 마음가짐으로 시 씀을
아, 뉘를 탓할 것인가
그대 시인이어도 덧없음이라
하니 무슨 말로 답하리까
글만을 고집하는 글지이들이여, 세상 밖이 아닌 세상 속에서 더불어 살기를 바란다. 결국은 자기만족과 글을 쓴다는 망상에서 불거지는 껍데기 명함에 불과한 허망한 짓을 그래도 계속 반복하고 있을 것인가? 예전에야 가정형편이 어찌되었든 그저 글 하나에 전 생애를 바칠 수도 있었을지언정 지금은 어디 그러한가? 사람의 성품이 나이 들어 온유해 지는 것과 삭막해 지는 것 또한 경제력과 무관하지는 않은 일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야 마음의 평정을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글 또한 자연스레 유연해 지는 것이다. 더 나이 들어서 써도 무관한 것이 글이란 말이다. 정녕 땀방울을 훔치어 내는 속 울음 뒤로 써야 한다는 일념과 그 열기만 살아 있다면 글은 언제든 다시 써지게 된다. 끊임없이 타오르는 열정과 쓰지 않으면 언젠가는 터지고 말 뜨거운 분화구가 늘 휴화산으로 남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우선은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글지이들이여, 이제는 가난하게 살지 말자!
“글을 쓰신다고요? 하필이면 배고픈 길을 택하셨나요?” 아. 아 시인 이상이 되지 않으려면 시인 영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이 얼마나 어려운 경지인가!
-월간「신춘문예」200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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