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교실


  수필교실(2017-04-01 15:03:05, Hit : 435, Vote : 28
 바로 잡아야 할 수필의 개념/ 鄭木日

  



바로 잡아야 할 수필의 개념
                                                 정 목 일



수필의 개념과 성격에 대한 정의(定義)로 고정 관념화 돼온 것들이 있다.

'여기(餘技)의 문학', '붓가는 대로 쓰는 글', '산만과 무질서, 무형식의 글', '40대의 문학'등이다.

그러나, 현대에도 수필에 대한 이같은 개념들이 타당성을 갖고 있는가,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

앞서 언급한 수필의 개념들은 30년대에 정립된 것으로, 시인, 소설가, 평론가들이 여기(餘技) 삼아 수필을 써 왔던 때에 이뤄졌다. 당시엔 본격적 문학의 대상이 아니라, 여유가 있으면 쓰는 '붓가는 대로 써지는 글' 쯤으로 가볍게 인식하였던 게 사실이다. 문학평론가 조연현(趙演鉉)씨가 수필은 '비전문 문학'이다 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문단에 수필가를 배출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다. 신춘문예, 종합 문예지들이 문단 데뷔 종목에 '수필'을 포함시켜 전문 수필시대를 열게 되었다. 이 시점(時點)은 우리 수필문학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종전까지 '주변문학', '아웃사이드 문학' '비전문 문학' '여기의 문학'으로 수필을 경시해 오던 문단의 인식변화를 보여준 것으로 대등한 문학 장르로서 공인하는 의식을 보여준 것이다.

현대의 다양한 삶의 양식, 고학력화 속에서 생산자인 작가와 소비자인 독자로 나눠졌던 엄격한 구별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전문 직업인들과 독자들도 자신의 삶을 기록하거나 작품화하여 작가와 독자의 경계가 애매해지면서 생활 속의 문학이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추세 속에서 픽션보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담는 논픽션인 「수필」이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서게 되었다. 수필이 대중적인 문학, 삶의 문학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현대인들의 자의식이 높아진 점, 시와 소설의 중간 위치에서 양 장르의 장점을 취하면서 대중들의 구미를 맞추었기 때문이다. 시의 압축, 비유, 절제, 리듬을 살리면서 소설의 사실, 설명, 묘사, 구성법을 활용하고 시의 난해성과 의사 전달력의 취약성, 소설의 읽기의 시간 부족에서 벗어나 적당한 독서물로써 '수필'이 대중 속에 각광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제 수필문학은 「여기(餘技)의 문학」 「주변문학」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삶과 직결된 문학 장르로서 자리 매김과 함께 미래문학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수필의 양적 팽창에 비해, 질적 향상이 따르지 못한 점, 수필문학을 본격적 문학으로 보지 않는 문단의 사시적 시각을 바로 잡지 못한 데 대해서는 수필문단은 진지한 성찰과 각성이 필요하다.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무엇보다 투철한 작가 정신, 치열한 창작열, 전문성 등과 함께, 고정 관념화 돼 온 수필의 개념 및 정의에 대해 과감한 수정과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첫째, 수필은 「여기의 문학」이 아니다.수필은 '여기의 문학'이라 했던 것은 농경시대의 사고(思考)이며, 당시 시, 소설, 평론을 썼던 문인들이 본업 외 시간이 날 때, 여기로 수필을 써 왔기에 어느새 '수필=여기의 문학'으로 굳어진 것이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수필가가 배출되기 시작했고 오늘의 수필가들은 '여기'로 수필을 쓰고 있지 않다.

시와 소설이 치열한 삶과 다양하고 복잡다난한 시대상, 사회상을 수용하는데 비해, 수필이 다소 느긋하게 한 걸음 물러서 인생을 바라보는 면도 없지 않으나 종전처럼 '여기의 문학'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수필도 시와 소설처럼 치열성, 실험성, 본격성, 전문성, 개성, 참신성을 추구해 나가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여기(餘技)의 문학'으로 안주한다면 생존이 불가능해진다. 무한경쟁과 무한 변화 속의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현대에서 「여기」로 멈춰 있는 것은 생존 이유를 상실하는 것과 다름없다. 시대상과 삶의 변화를 수용하기 위해서 수필은 더욱 치열성, 전문성, 본격성, 개성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수필은 '붓가는 대로 쓰는 글'(김광섭 「수필문학 소고」) 이라는 개념은 수정돼야 한다.

이와 같은 개념은 '隨筆'이란 어원의 해석에서 나온 말이 굳어진 것이다.

수필을 '여기의 문학'으로 알던 농경시대에나 적용될 수 있는 개념이다. 물론 수필의 형식상 자유스러움을 말하는 부분이 있지만, '마음대로 쓴 글' '아무렇지 않게 쓴 글' 로 인식되어 수필을 폄훼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게 사실이다.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이란 오랜 인생수련과 습작을 통해 고도의 구성과 표현 기법과 질서를 획득하여 물 흐르듯 막힘 없이 써 내려가는 경지의 글을 말한다. 그럼에도 누구나 쉽게 마음 내키는 대로 쓰면 수필이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처럼 인식하여, 수필을 경시하는 풍조를 불러왔다.

수필은 소설, 희곡에 비해 비교적 짧은 글이다. 붓가는 대로 쓰는 글은 산만, 중복, 과장이 있기 쉽다. 수필은 짧은 글이기 때문에 보다 치밀, 함축, 사색을 요하는 글이 아닐 수 없다.

셋째, 수필은 '산만과 무질서, 무형식의 글'(김진섭「수필의 문학적 영역」)이 아니다.

시와 소설은 허구(픽션)의 세계지만, 수필은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사실(논픽션)의 세계이다. 진실을 생명으로 삼는다.

작가가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쓰기 때문에, 상상력과 허구를 통해 진실에 접근하려는 시, 소설에 비해. 더욱 적나라하고 진솔하게 자신을 드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명쾌하고 절서 정연하기는 쉬워도 '산만하고 무질서하다'는 말에는 설득력이 없다. 본격 수필 시대에 '산만과 무질서'를 수용할 수필가가 있을지 의문이며, 이는 농경시대 '여기(餘技)의 문학'이라고 인식할 때의 개념인 것이다. '무형식의 글'이라는 개념도 수필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시, 소설, 희곡에 비해 엄격한 형식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스런 표현 형식을 갖는다는 것이지, '무형식'은 아닌 것이다. 수상, 일기문, 서간문, 기행문, 칼럼 등 수필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글들이 많아서, 일일이 형식을 정해 엄격히 적용시키기보다는 작가에게 창의성과 자유성을 많이 부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수상, 일기문, 서간문, 기행문 등이 '무형식의 글'은 아니다. 형식과 구성이 있으되, 엄격한 형식의 틀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자재로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넷째, 수필은 '40대의 문학이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피천득씨는 「수필」이란 글에서 '수필은 서른 여섯 고개를 넘어선 중년 여인의 글'이라고 했다. 또한 수필을 가르켜 '40대의 문학'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수필이 체험을 바탕으로 인생의 발견과 의미를 형상화하는 문학임을 들어, 다양한 체험과 인생적 경지를 담기 위해선 40대가 돼야만 비로소 좋은 수필을 낳을 수 있는 연령이 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해석에 수긍하면서도, 연령이나 성별에 관계 없어야 하며 '40'로 한정하여 고정관념화 해선 안될 것이다.

10대의 순수, 20대의 감수성, 30대의 정열은 수필의 소중한 소재가 아닐 수 없다.

또 수필에 대한 개념으로 '청자연적'이 있다. 피천득씨가 자신의 수필론을 전개한 '수필'에서 수필을 '청자연적'에 비유하였다. 수필을 도자기예술의 백미(白眉)로 꼽히는 '청자연적'에 비유한 것은 기능과 깨달음으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 경지에서 피워 올린 꽃으로 생각한 까닭에서다. 수필의 참모습을 올바르게 평가한 빛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피천득씨의 수필관(隨筆觀)이다. 수필 '토기 항아리', '유리 그릇'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정관념'은 다양성을 해치는 요소가 된다. '수필은 청자연적이다'라는 말은 수필의 고귀함과 높은 경지의 문학임을 일깨워 주는 말로 이해해야 한다. '청자연적'은 피천득씨의 추구 목표이자, 개성으로 보아야 한다. 수필을 쓰는 모든 사람이 '청자연적'을 수필쓰기의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자신의 체험을 통한 발견과 깨달음을 최대한의 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하여 최상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수필쓰기의 방법이 돼야 한다.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서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바르지 못한 수필의 개념들을 깨트려야 한다. 낡은 틀을 벗어 던져야 새로운 세계로 나갈 수 있다.







제9강 수필의 구성과 실제/ 鄭木日
수필에 대해 스스로 던지는 질문들, 그리고 답변/鄭木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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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가면 마음이 한없이 맑아지는, 전화도 들어오지 않는 심산유곡 절간같은 수필공부방을 인터넷에 띄우고 싶었다. 이 교실에 들어오는 자격은 이끄시는 교수님과 가능한한 오프라인에서 인연이 닿아있고, 수필사랑의 뜻을 같이 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고요한 교실에서 좋은 도반들을 만나고 싶다. 이른바 鄭木日과 도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