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기자,Sitting Next to Hong Myung Bo (with my heart palpitating) 2002-07-04
여러분, 저 어제 히딩크 감독과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 다 만나 봤어요! 홍명보 선수 옆자리에서 식사도 같이 하고요!
오랜만에 찾아 뵙는데,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요. 기분이 좋아서요. 6월 한달 동안 월드컵 경기 정말 열심히 보고, 응원했거든요. 그런데 4강 신화의 주인공들을 만나게 되다니…!
이제 흥분을 가라앉히고 무슨 얘기인지 차분하게 말씀드릴께요.
제가 축구의 ‘축’자도 모르다가 월드컵 직전부터 열렬한 축구팬이 됐다는 건 지난번 뉴스레터에서 말씀드렸죠. 처음엔 아는 분이 월드컵 표를 주시겠다고 해도 ‘저는 축구 안 좋아하는데요’ 하면서 거절했었거든요. 그런데 잉글랜드와의 평가전 이후부터는 대표팀 경기는 물론 하나도 빼놓지 않고 봤고요, 포르투갈과의 대결은 시청 앞에서, 스페인전은 광주에서, 독일과의 준결승전은 상암 경기장에서, 그리고 마지막 터키와의 3,4위전도 시청 앞에 나가서 볼 정도로 열렬한 붉은 악마가 되어버렸답니다. 선수들 등 번호, 키, 몸무게까지 다 외우고 다니며 사람만 만났다 하면 축구 얘기 하고요. (제 후배들이 가끔 이런 저를 놀립니다.) 물론 퇴근 후 새벽 2시까지 축구경기 재방송을 보고, 또 보는 거는 말할 것도 없지요. 뿐만 아닙니다. 대표팀 카퍼레이드가 있었던 지난 2일에는 광화문에까지 가서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 얼굴 좀 보려고 발끝으로 서서 목을 빼고 보다가, 사람들 머리 위로 껑충껑충 뛰어 보기도 하고…내 참, 제가 다 우습더라니까요.
많은 국민들이 그렇듯이 저도 월드컵이 끝나고 나서는 허전해서 무슨 재미로 사나 하며 약간 풀이 죽어있었습니다. 어제도 다른 부서 선.후배들과 축구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최근 히딩크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한 한 후배가 그 프로그램을 히딩크가 재미있게 봤다며 복사본을 원한다고 연락이 왔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오후에 (그러니까 어제인 3일 오후) 히딩크의 마지막 공식 기자회견이 있는데, 거기에 가서 비디오테이프를 전달해주고 그 장면도 취재할까 한다면서요. 새벽부터 근무한 저는 그 때는 퇴근시간이라 같이 가겠다고 했죠.
기자회견은 축구협회 건물에서 5시 10분에 열릴 예정이었는데요, 히딩크가 서울시에서 명예시민증을 받는 행사가 늦어져 5시 반이 넘어 시작했습니다. 히딩크 감독의 기자회견 내용은 이미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보셨을테고, 기자회견이 끝나고 나서는 같은 건물 로비에서 감독과 선수들에게 현대자동차 증정식이 열렸습니다. 증정식장에 온 선수들 얼굴이나 좀 보고 집에 갈 생각이었는데, 마침 정몽준 축구협회장을 현장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정몽준 회장이 그 자리에서 저를 축구 대표팀 4강 진출 축하 연회에 초대했고, 그렇게 해서 어제(3일) 저녁 조선호텔 정원에서 열린 연회에 가게 된 겁니다. 스포츠는 제 취재 분야도 아니고, 연회가 있다는 것도 몰랐는데 말이죠.
연회가 시작되고, 선수들이 도착하는 걸 보니까 가슴이 두근두근 하더군요. 사인을 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는데, 처음엔 연회 참석자들 모두 너무 점잖게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분위기라 도저히 엄두가 안 났습니다. 그런데 시간은 흐르고, 선수들한테 말도 못 붙여 보고 집에 가면 두고두고 후회를 할 것 같아 용기를 내서 자리에서 일어났죠. 손에는 핸드백 안에 있던 구겨진 A4 용지 한 장과 파란색 플러스펜을 들고.
선수들이 앉은 테이블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정몽준 회장이 저에게 옆자리에 앉아있던 홍명보 선수를 소개해 주더군요. 그래서 결국 홍명보 선수 옆자리에 앉아 식사를 같이 하게 됐는데요, 사실 저는 너무 흥분돼서 밥도 잘 못 먹었습니다. 홍명보 선수가 “식사 좀 하세요”라고 할 정도로. (아~ 10대 소녀 같이 이게 웬일입니까. 사실 뉴스 생방송 할 때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는데요.) 홍명보 선수 좋아하는 분들 많으시겠지만 실물을 보니 더욱 멋있었습니다. 키가 크고, 특히 어제는 크림색 정장을 입고 와서 그런지 인물이 훤하더군요. 그런데 저는 무엇보다도 홍명보 선수가 대단히 친절하다는데 감명을 받았습니다. 피곤하고, 귀찮을텐데도 제가 옆에서 묻는 이런 저런 질문에 너무나도 진지하게, 친절하게 답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가까이서 본 그의 눈이 대단히 맑았다는 것도 상당히 인상적이었고요.
제가 피곤하지 않으냐고 물으니까 “좀 피곤하기도 하지만, 국민들의 성원 때문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면서 월드컵 폐막 이후 계속 이어지는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듯 했습니다.
밤이 깊어 가면서 딱딱하게 앉아있던 사람들도 점점 자유롭게 그 밤을 즐기는 분위기가 무르익었습니다. 저도 용기를 내서 평소 제가 보고 싶었던 선수들에게 말도 걸어보고 사인도 받았는데요, 제가 전반적으로 느낀 것은 선수들 모두 화면을 통해 봤던 것 보다 훨씬 호리호리하다는 것입니다. 월드컵 때 열심히 뛰느라 몸무게가 빠진 탓도 있겠지만 (홍명보 선수는 3킬로그램이 빠졌다고 하더군요), 말 그대로 군살은 하나도 없고 단단한 근육만 있어서인지 대단히 날씬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박지성 선수는 어떻게 저렇게 소년 같은 선수가 그 크고 무서운 유럽 선수들과 대등하게 몸싸움을 벌이면서 활약을 했는지 제 눈을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앳되어 보였습니다. 차두리 선수는 평소 껌 질겅질겅 씹으며 그라운드를 누비는 낙천적인 인상대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사인을 해줬고요, 피부가 유난히 하얀 송종국 선수는 어제도 모범적인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최진철 선수에게는 부상을 당해서 너무 안타까웠었다고 말해줬더니 ‘아니에요’ 하면서 쑥스러운 듯이 웃더군요.
저는 항상 눈가에, 입가에 장난기를 머금고 다니는 김남일 선수가 실제로 만나면 어떨지 참 궁금했는데요, 어제 사인을 부탁하면서, “그 가고 싶다는 나이트는 갔어요?”하고 물었습니다. (월드컵 끝나면 어디부터 가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나이트’라고 대답한 적이 있거든요.) 그랬더니 씩~ 웃기만 하더라구요. 그래서 다시 한번 “오늘 파티 끝나고 나이트에 갈 건가요?”하고 물었죠. 김남일 선수 웃으며 왈, “오늘 가면 닷새째 가는 거에요.” 저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특유의 유머감각을 엿볼 수 있었어요.
그럼 여기서부터는 제가 어제 직접 본 히딩크 감독에 대한 인상입니다. From all the press reports I had read and seen, I had a good impression of Guus Hiddink without ever having met him. The fact that he selected the best players for the national team regardless of their school connections or outside influence, then provided them with a systematic, scientific training program, and led them to phenomenal results in the World Cup made me have faith once again that leadership, the right kind of leadership, can still make a difference in any society or organization. I also liked the fact that he stuck to his own methods and philosophy without being swayed by the reactions of the mass media. And I could see traces of all that resolve and solid personality in his face.
He also had a sharp sense of humour as has been depicted numerous times in the media. When he walked into the hot press conference room full of reporters, he said that it was like a sauna. He started the press conference by saying, “welcome and thank you for coming, ladies. To the men’s sauna,” directing his remarks at the few female journalists who were there. The room broke into laughter.
However, as he himself has mentioned in several interviews, he also seemed to have a tough, hot-tempered, and impatient side to his personality (perhaps this is why his favorite Korean word is “빨리 빨리”). During the press conference, when some of the reporters were heard talking among themselves in the corner of the room, he turned to them and said, “if you would shut up over there….” I can’t say whether this is accepted in the field of sports, but it certainly is not appropriate language for an official press conference. And as I observed him throughout the night, I could see that he could be very friendly but also extremely curt and abrupt at the same time (granted that he was molested by a lot of people asking for his autograph, including myself).
It was clear that Hiddink and his girlfriend were having a wonderful time at the party. They mingled freely with friends, going from one table to another. But after a month of seeing him depicted as a hero by the media, I must say that seeing him in person was bit of a letdown.
반대로 저는 그 날 밤 연회 참석자들에게 사인해주고, 사진을 같이 찍어주는 23명의 선수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고나 할까요. 그들의 모습에서 젊음과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고요, 그들이 아니었다면 히딩크의 혹독한 훈련을 참아내지도, 그야말로 꿈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그러면서도 정직하게 그라운드에서 투혼을 불태우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월드컵은 우리 축구가 유럽 축구 같이 상업주의에 완전히 물들기 전에 볼 수 있는 마지막 순수한 월드컵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순수함과 축구에 대한 열정으로만 따지자면 우리 대표팀이 월드컵 4위가 아니라 분명히 1위를 차지했을 겁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K-리그에도, 그리고 앞으로 등장할 새로운 선수들에게도 보다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됐습니다.
끝으로 여러분 궁금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요, 어제 그 자리에 왔던 선수들 대부분의 사인을 받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몇몇 선수들은 피곤한데도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정말 친절하게 사인을 해주더군요. 홍명보 선수는 물론이고요, 이운재, 최진철, 송종국, 차두리, 설기현, 김남일, 박지성, 등등…. 특히 이영표 선수는 맑게 웃으면서 사인을 해줬는데, 백만불짜리 미소였다고나 할까….
참 선선하고, 아름다운 밤이었는데요, 혼자만 경험하기에는 너무 아까워 그야말로 한 여름밤의 꿈을 여러분과 함께 나눕니다. 정해진 뉴스레터 발송시간에 맞춰 쓰느라고 여기 저기 글이 매끄럽지 못 하더라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전해드리고 싶어서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p.s.
히딩크 감독이 연회 끝 무렵 무대에서 가수 유 열씨와 함께 "My Way"를 불렀는데요, 노래 솜씨가 수준급이더군요.
이지현 기자 julianne@sbs.co.kr
[퍼옴] Sitting Next to Hong Myung Bo 작성일 : 2002/08/03 08:04 (2002/08/0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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