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4일의 휴가장소
정영숙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손녀가 방학하면 할머니 집에 갈 것이라고 전화로 몇 번 말을 하여 아빠가 회사에서 휴가를 받으면 함께 오라고 하였다. 아빠는 아직 휴가 날자가 멀었다며 제 엄마를 졸라 버스를 타고 왔다.
분당에서 이곳 마산까지 두 아이를 데리고 오느라 며느리가 고생은 했겠지만 각자 등에 가방을 메고 들어오는 모습이 참 귀여웠다.
창원에 살고 있는 딸에게 전화를 하여 차를 가저오라 하였는데 그 또한 사정이 있어서 딸도 별란 아들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왔다. 차가 없으면 대가족이 이동을 할 수 없어 부득이 삼일간의 휴가 지는 우리 아파트가 되였다.
우리 아파트는 1층이다. 마음대로 뛰고 굴려도 뉘 아무도 말 하는 이 없어서 좋다. 손녀는 제 아빠의 어릴 때 놀던 그 모습대로 책을 좋아한다. 내 책장에 있는 책을 하나하나 보다가 그림으로 읽는 작곡가 이야기와 과학용어 사전을 찾아서 열심히 읽고 있다.
두 돌 지난 손자와 외손자는 처음에는 발 뒷꿈치를 올리며 살살 걷더니 뛰어도 된다는 나의 말을 듣고 난후론 개구쟁이의 실력을 당당히 나타내며 열심히 놀고 있다.
아이들이 손에 닿을만한 물건은 다 높은대로 올리고 작난감과 매우 큰 사전열권만 내려놓았는데, 그 무거운 책도 둘이서 들며 계단을 쌓아가지고 오르락내리락 한다.
요즘 아이들은 노는 것도 영어를 석어가며 논다. 하나 둘 셋 넷 하다가 원투스리포로 돌아간다. 며느리와 딸은 찬거리를 사려 간다며 나란히 백화점으로 가고 내가 아이들을 살피고 있는데, 노래도 불러가며 잘 놀던 외손자가 갑자기 잠이 오는지 제 엄마를 찾으며 칭얼칭얼 댄다. 따라서 순하디순한 손자도 엄마를 부르며 운다.
내가 아이들 때문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에 둘이서 웃으며 들어왔다. 얼굴은 다르지만 키와 성격이 비슷한 며느리와 딸이다.
같은 교회서 만난 친구를 제 오빠에게 소개한 딸인지라 둘은 사이가 퍽 좋다. 둘째 날 아침부터 마지막 날까지 식사준비도 도란도란 애기하며 정성껏 하였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다 한풀 꺽인 오후. 딸이 낮잠을 잘 동안 나와 며느리는 아이 셋을 데리고 놀이터로 갔다. 그기에는 또래의 한 아이와 어머니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아파트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놀이터는 구색만 갗추어 있을뿐이다. 그렇게 제 구실을 못하고 허전하게 있던 놀이터에 주인공들이 왔다. 꼬마들이 미끄럼타기를 하고 놀 동안 어른 셋은 유리알, 부르진 못. 사금파리 등을 주웠다.
미끄럼놀이, 시소놀이. 그네타기 , 모래집 짖기, 모래위의 뛰기 등 아이들은 그저그저 재밋게 논다. 급하게 오줌을 눈채로 어버정하게 서서우는 손자를 외손자가 모래 묻은 손으로 끌어안으니 오줌과 모래의 범벅이 되였다. 그래도 좋은지 또 안고 장난을 치고 논다. 내 어릴적에도 그렇게 했을 것 생각하니 남모르는 웃음이 나왔다. 손녀의 그네타기를 밀어주던 나는 잠시 쉬고 싶어 정원 쪽으로 왔다
우리 아파트는 정원이 넓고 나무와 꽃이 많다. 봄에는 노란개나리가 치렁치렁 가지를 뻗어 가며 피어 있고 , 자잘한 풀꽃도 노랗게 깔려있어 땅속에서 노란 물감이 솟아나와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5월이 오면 정원과 후원에는 진분홍 철죽꽃이 화사하게 피어 오가는 이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그뿐인가 오뉴월이 되면 여러 빛깔의 장미도 그 아름다움을 뽑내고 피어있다. 칠월 또한 즐겁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면 보라 빛 무궁화가 깨끗이 세수를 하고 서있다. 하얀 천리향도 눈이 시리게 피어 향기를 뿌리는지라 나로 하여금 잠시 사색에 잠기도록 한다.
나는 정원이 좋고 행동에 자유스러운 일층이 좋아서 오늘날까지 살고 있다. 내가 정원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들은 손녀가 “할머니, 할머니를 부르며 곁에 와 질문을 하였다. “할머니, 꽃은 여러색인데 나무는 왜 초록색 뿐이에요? " 나는 답이 막혀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기 때문에 할머니는 모른다고 하였다.
그 외 보는것 마다 꼬치꼬치 질문을 하여 땀을 내였다. 어쩌면 그렇게 제 아빠의 축소판 필름인지!
셋째 날이었다. 나의 여형제들이 아이들 보려 와서 외식도 시키고 놀이도 같이하여 빠르게 시간을 보냈다.
삼박사일의 임시휴가를 우리 집에서 보내고 모두들 떠난다고 시끌시끌 하다. 올때처럼 등에맬 가방속의 물건을 찾고 있는데 손녀는 무거운데도 아동문학과동화집을 넣고 있었다. 그리고 할머니에게 드리는 편지라면서 연필로 뭉캐여 가며 쓴 종이를 주었다. 띄어쓰기는 없어도 내용은 참 기특하다. 책을 많이 읽은 덕일까?
할머니께
" 할머니 그동안 즐거운 나날 잘 보냈죠? 이제 저희가 떠날 시간이에요.저희를
잊지 마시고 행복하게 사시고 몸 건강히 잘 지내세요. 할머니 사랑해요."
모두들 떠나고 난 그 자리는 마치 휴양지에 제멋대로 널려있는 쓰레기와 같이 질서가 없다. 숨겨 두었던 물건을 제자리에 옮겨 놓으며 대청소를 하였다. 어머니가 맞 며느리로서 대가족을 이끌고 한 지붕 밑에서 살았다니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그것도 세상 탓일까.
삶의 호흡과 같은 혈육과의 만남은 신선하다. 깨끗이 청소를 하고 앉으니 또 꼬마들의 모습이 아롱아롱 달린다. 콧날이 오똑하고 피부가 배꽃 같은 질문쟁이 손녀의 모습이 산뜻하게 떠오른다. 귀공자 같은 손자의 생긋 웃는 모습도 가까이 와서 나의 품에 안긴다. 가까이 살면서 자주 오는 기염둥이 외손자도 더 보고싶다.
3박4일의 휴가 장소는 조용하면서 뜨겁다. 꿀맛 같은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온다. 정원의 더위 먹은 나무들이 살 것 같다며 바람에게 가지를 흔들며 환호를 하고 있는데,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는 매미가 찌르릉찌릉 울며 여름을 노래하다 끝났다.
태양은 왼 종일 타고도 모자람인지 서산에 넘어가다가 우리 집의 조용한 거실에 화끈히 들어와 휴식한 후 돌아갔다. 우리 아이들이 도착할 그시간에.
2000년. 글쓴이- 정영숙
흐르는 음악. 정영숙작사.김종덕작곡.소프라노 유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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