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식 수필가 결혼식 사진
월간한국수필 2013년 8월호
자연으로 돌아가 復古에서 새로움을 일구는 김진식 수필가
대담: 정목일 이사장 일시: 2013년 7월 22일 장소: 한국수필가협회 사무국
정리: 권남희 월간 한국수필 편집주간
정목일: 요즘은 서울보다 지방에 계시는 듯합니다.
안빈낙도의 근황을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김진식: 편한 길을 택한 것이지요. 번거로운 것 멀리하고 자연을 벗하며 자적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몇 년 전부터 주변의 사슬을 끊으며 나름대로 정리해 왔습니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지요. 무엇보다 살고 있는 산간이 흡족합니다. 숲이 있으니 새들이 찾아들고 바람이 깃듭니다. 한거閑居의 흐뭇함도 반갑습니다. 그러나 힘들기도 합니다. 땀을 흠씬 적셔도 늘 모자라는 밭떼기의 소채나 작물이 그렇고 매도매도 눈에 밟히는 잡초도 그렇습니다. 또한 오랜 숙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뤄둔 책을 읽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날마다 둘레길을 산책하며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새로운 일상입니다. 그러므로 삶이란 단정적으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한가하면서도 바쁘고, 바쁘면서도 여유 있는 삶을 보내고 있다고 할까요.
정: 문학 청년기가 있을 법한데 문학에 뜻을 둔 배경이 궁금합니다. 자세한 에피소드와 당시 같이 활동했던 작가들이 누구였는지요.
김: 문학에 뜻을 둔 배경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이 없습니다. 문학의 불모지에서 자랐으니까요. 그러나 문학에 대한 감수성은 있었던 같아요. 읽을거리라고는 교과서밖에 없었지만 시적 리듬과 내재율의 맛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시에 대한 눈부터 먼저 뜬 셈이지요. 산문은 줄거리가 있고 생각이 깊은 것에 재미를 붙였지요. 이때부터 막연하지만 문학에 대한 동경을 가졌지요. 1957년인가 봅니다. 향토(밀양)문화제의 백일장에 참가하여 시로 입상하면서 당시 문협밀양지부(지부장 유종관)의 회원이 되어 활동하였습니다. 그때 문협밀양지부에는 유종관 박재호 이운성 예종숙 등이 향토문학을 일구고 있었는데 그 영향권에서 문학의 꿈을 키웠지만 군입대로 휴면하였습니다.
이후 1960년대에 청도의 이일기 시인이 「시화詩火동인」을 발기하면서 시작詩作을 하였으나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였고, 1960년대 중반에 신춘문예에 응모하였는데 서울신문에서 마지막 두 작품에 끼었으나 낙방하였고 한국일보에서도 결선까지 갔습니다. 이런 사실은 이일기 시인이 신년특집신문을 구해와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고무된 나는 초등학교 교직을 그만 두고 서울 생활을 하였지만 안정된 직업도 없었고, 문학이란 춥고 배고픈 것임을 절감하였습니다. 이때 자유춘추란 잡지의 편집장의 직함을 가졌는데 이 잡지 또한 정치의 폭풍으로 끝났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잡지 편집일을 하면서 사보지 등에 글을 게재하였는데 어느 날 하유상 작가가 찾아왔습니다. 어디엔가 실린 내 작품을 보고 만나보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독립문 근처에 있던 김창직 시인의 사무실에서 만난 적은 있지만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었을 뿐이었는데 뜻밖이었습니다. 문학의 외곽에서 맴돌던 나에게는 귀인을 만난 셈이지요. 그날 하유상 선생을 저녁식사에 모시게 되었는데 물론 술이 곁들여졌지요. 그분의 거침없는 소리가 나를 당혹스럽게 했습니다. ‘풀꽃을 생각하며’라는 수필을 읽었다면서 대뜸 하시는 말씀이 ‘사주팔자를 속일 수 없으니 글을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정: 선생님의 내면에 눌려있는 감수성을 알고 문학으로 이끈 대단한 분이지요?
김: 그때만 해도 문학에 대한 열정보다 잡지편집을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기회를 활용하는 정도여서 문사의 꿈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꺼져가는 문학의 꿈에 불을 지핀 것이지요.
하유상 작가는 내 수필을 신문예에 소개하여 동인사화집「뜨거운 공백(1980)」에 게재하게 하였고, 의기투합하여「에세이80년대」를 발기하였는데 윤호영 하유상 안도섭 김후란 유경환 김양식 송도 김광협 이문구 정규웅 변해명 등 기성문인과 오도광 황대연 등 다수의 언론인을 동인으로 하여 1982년 1월에 동인수필집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을 상재하였습니다. 이 책이 당시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게 되어 동인들을 고무시켰습니다. 이런 와중에 《시와 의식(1980)》《한국수필(1981)》등에 수필이 게재되고 아동문학도 신현득 시인의 권유로「소년한국(1981)」에 동시를 게재함으로써 문학활동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작품활동은 주로「한국수필」을 통해서였고, 아동문학은「동요문학」을 통해서였습니다. 한국수필의 조경희 회장께서는 책이 나오면 불러서 책 발송의 일을 시켰는데, 그 곳엔 송도 이숙 수필가가 늘 자리를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하유상 작가의 말대로 사주팔자에 의한 것인지 가늠할 수 없지만 문학앓이의 열병을 거쳤음에도 당시 문학을 외면하려 한 것은 그만한 까닭이 있었습니다. 7남매 맏이로서 삶과 문학의 괴리를 쉽게 좁힐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문인들의 무절제한 삶을 지켜보면서 그 좌절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지나친 표현 같지만 빌어먹지 않으려면 문학과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불가사의한 것이 있고 결국 문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지만 집안에서는 낙제를 거듭하였습니다. 이 또한 사주팔자라면 달리 할 말이 없습니다.
정: 선생님만의 수필문학론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김: 나는 문학론을 믿지 않습니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것’ 밖에 지름길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처음 수필에 드는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일러 수필론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수필론은 입문자를 위한 것이지 고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규범에 갇혀서는 규격품 밖의 좋은 작품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필은 다양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형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형식이 없는 장르라고 하지만 이는 타 장르에서 수필의 전문성을 부정하면서 흔히 쓰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정적 접근을 두고 창조성과 거리를 두려는 생각도 그렇습니다. 어떤 문학이든지 그 능력에 따라 품질(문학성 또는 창조성)이 결정되는 것이지 고정된 틀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능력이야말로 창조의 힘입니다. 능력은 얄팍한 재주가 아니라 숙성이 따라야 하고 눈앞의 반짝거리는 잎새가 아니라 꿈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읽고 생각하고 거듭 쓰는 것이야 말로 ‘나의 수필문학론’이라 할까요.
정: 수필 문학인이 되어 활동하다가 이제 은퇴이후의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한다는 의미도 큽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김: 은퇴라기보다 자연에 든 것이지요. 자연은 누구에게나 고향이지요. 때가 되면 돌아가야 할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편안하고 여유가 있습니다. 이를 일러 새로운 인생을 산다고 한다면 그 새로움이 오히려 복고적이지요. 옛 은자들의 자연회귀가 새삼스럽습니다. 자연 속의 절로절로가 순리가 아니겠습니까.
정: 순수문학지를 이끌어간다는 일은 쉽지않습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선수필 편집과 운영을 모두 하고 계시는데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김: 아직 편집인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고 뒤를 봐주기도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모두 서숙 주간을 비롯한 편집위원들의 힘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지켜보면 이들이 잘 하고 있고요. 선수필은 수필문단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해온 것이 자랑스럽고 여기에는 정목일 발행인의 뒷받침도 큰 몫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주어진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수필을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격려와 관심을 부탁합니다.
정: 과거에 비해 수필문학이 활성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수필문학의 미래를 짚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김: 세상에 변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수필도 새로운 모색을 해야 하고 그 변화의 질에 따라 문단적 입지가 결정됩니다. 그동안 수필은 어려운 여건 속에 양과 질을 도모해 왔습니다. 앞으로는 지금보다 향상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 전통이나 추이로 보아서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시아의 문도文道는 시문詩文으로 대표되어 왔습니다. 그 가운데 ‘문文’이 수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시문의 전통을 찾아 새로운 위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이는 오로지 수필인 여러분들의 노력과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정: 늘 감사드립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수필을 위해 애써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김진식 수필가
경남 밀양 출생(1938)
80년대 초반《한국수필》,《시와 의식》등에 수필발표로 문학활동. 에세이 80년대 간사로 동인수필집『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등 4권 상재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회장, 경기대 겸임교수 역임.《선수필》편집인 겸 주간 .경기도문화상(문학), 한국현대수필문학상 등 수상
수필집『잊혀진 이름들』,『혼자 걸어가며』,『수필로 만나기』외 다수. 수필선집『쓰고싶은 편지』
동요시집『내마음 날개 달아』,『예쁜 아이』
저서『한국양복100년사』. 편저『한국고전문학 읽을거리』
영국 캠브리지대학에서 둘째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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