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려한 외출(1)/ 白蓮 원화윤
2007년10월 19일 자정
각색 가로등 빛을 밟으며 집결지로 향하는 설렘은 발걸음보다 마음이 앞선다. 자욱하게 깔린 어둠살조차 그윽한 이 새벽, 총총한 별빛은 더없이 예쁘다. 자정이 좀 지나자 하나 둘 모여드는 글벗들을 태운 승합차는 새 아침(20일)의 어둠살을 밀어내며 행선지를 향해 남쪽으로 쉼 없이 달렸다. 따끈한 커피로 목을 축이며 잠을 쫒았다. 땅콩을 곁들인 오징어 맛은 씹으면 씹을수록 새로운 감회다. 라이트 빛이 인도하는 조용한 도로는 거의 독무대였다.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 빛살은 지상의 별 밭을 연상케 했다. 05:50여분 경에 이르니 어둠살에 묻혔던 산들은 수줍은 윤곽을 들어낸다. 상념 깊은 산하, 가슴 속에 고여 있던 그리움을 토하듯 가을 산은 색 고운 옷을 갈아입으려 바스락바스락 술렁거림의 모습이다. 행선지에 다다르니 마음이 더 바쁘다. 저 만치 한 눈에 드는 비취빛 수평선은 짜릿- 온 몸에 전율적인 미소 꽃을 피운다. 씩씩한 글벗들이 번갈아 핸들을 잡아 시간 내에 행선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감사한 마음이다.
약 06:00시간 소요로 만난 바닷가, 차창 문을 활짝 열었다. 늦가을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리운 밤바다에 안기고 싶었다. 그렇듯 오매하던 바다, 그것도 섬 속 가을 바다에 안기지 않았는가. 호수 같은 잔잔한 은빛 물결이 손짓하며 반기지 않는가. 들숨날숨의 깊은 호흡은 폐부 깊숙이까지 뻐근하다. 바다 냄새에 회억의 편린들이 명치끝을 꼭꼭 찌른다. 내 삶 마음을 읽을 수 있기에 눈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는 이렇듯 가슴을 저민다. 행사 시간은 약 7, 8시간의 여유가 있다. 우린 바로 해수탕으로 직행 해 여장을 풀었다. 해수욕과 찜질 방에서 누적된 피로를 다독이며 “세월아 네월아 그대가 좀 먹나” 느긋한 여유를 즐겼다. 몸도 마음도 여유로워지니 문득 시장기가 돈다. 09:00 경, 통영바닷가에 위치한 해장국집 콩나물 해장국 맛은 시원했다. 식사 후, 시간의 여분을 알차게 활용하기 위해 장승포로 행했다.
바다의 금강산
약 00:45분 소요로 구조라 선착장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던 거제문학 선생님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린 따뜻한 배려에 감사한 마음으로 유람선에 승선했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는 시린 눈에 이슬을 맺히게 했다. 출렁 출렁, 유람선이 움직이면서 마이크에서 울리는 뱃고동 소리는 기계적 뱃고동 소리와 흡사해 정겨웠다. 능숙한 해설을 참고하는 비경의 사색, 기암괴석의 기이한 형체의 조화로움은 각양 각체의 모습이다. 바다의 금강산이라 일컬은 해금강은 1971년에 명승 제2호로 지정됐다고 한다. 하늘을 치솟듯 위풍당당한 유형의 기암절벽은 억만 겁 해풍이 빚은 신비의 산물이었다. 저 만치 은빛 반짝임의 수평에 사색이 된 물살을 밀어내며 삶을 낚는 어선들, 청 옥빛 바닷물 요소요소에 배치된 각종 어류양식장이 이채롭다. 어민들의 생활터전에 일렬 중대로 줄지은 부이의 윤곽은 마치 해군 사열단의 늠름한 모습으로 힘찼다. 볼수록 아름다움의 정취는 눈길을 놓아 주질 않는다. 굽이굽이 숨어있는 비경의 진면모를 절감하는 값진 이 시간, 기다리는 다음 코스에 설레는 마음은 하선하는 발걸음에 리듬이 실린다.
외도 해상농원
수료한 기암절벽으로 둘러싸인 한려해상국립공원, 거제도 안의 작은 거제도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섬, 1970낸대 초부터 개발한 섬은 외도해상문화시설지구로 지정됐다고 한다. 외도에 위치한 아열대식물원, 아, 여기가 바로 지상낙원이요 무릉도원이었다. 세계 속 작은 세상을 연상케 하는 신비의 정취였다. 자연의 빛과 인간의 혼이 빚은 거대작품은 거제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의 영광이 아닌가. 잔잔한 바다물살처럼 그윽하도록 감미적인 선율이 마음을 잡는다. 세우 같은 음계에 젖어 햇살 방석 벤치에 앉으니 설레는 마음은 색채의 향기에 마냥 혼곤해진다. 이국적 정취 속에서 요소요소 객체의 미모를 찍고 또 찍었다. 사진첩 갈피마다 채울 추억을 마음껏 담았다. 그 경이로움을 담는 순간순간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단 눈물을 곱씹었다. 목울대가 뻐근한 행복감에 젖어 향취의 여운을 안고 승선했다. 다시 만나도 비경의 정취는 여전히 마음을 빼앗았다. 늦을세라 우린 세미나 시간에 맞춰 행사장으로 향했다.
한국전쟁문학세미나
02:30분 경. 행사장 내는 숙연한 분위기 속에 전쟁문학에 대한 질의가 시작됐다. 세부적인 질의로 주고받는 토론은 분분했다. 진지한 표정인 질의자들의 질의는 다양한 색깔 론을 필역했다. 조용한 분위기의 긴 시간 질의의 토론은 밀려드는 피로감에 손에 든 책자도 놓치게 했다. 책자를 놓칠 때마다 깜짝- 아, 죄송했다. 피로의 무게는 어둠을 밀어내며 달려온 장거리 피곤의 여파이리라. 행사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거제 포로수용소 외부는 귀모가 매우 컸다. 그 웅장함이 상상 외였다.
18만 명이나 되는 포로를 수용했던 아픈 역사의 현장에는 몇 줄 역사와 기념관의 유품 정도뿐이라는 거제 포로수용소에는 교전 중에 사로잡힌 포로들은 적과 아군이 공존하고 있었으며, 그 속에서 좌익과 우익의 포로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또 다른 전쟁터였다고 증언했다. 비인간적인 살육과 만행으로 친공 반공으로 싸움만 없었다면 거제 포로수용소는 포로들의 천국이었다는 증언, 포로들은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연극공연이나 음악회도 열며 각종 운동경기로 대대적 시합도 열었고 개인별 수준에 맞춰 한글공부나 영어공부로 향학열로 여가를 즐겼다는 포로들, 그 포로들의 대우가 경비병인 한국군보다 더 좋았다는 증언과, 거제원주민들의 삶터인 농토를 빼앗기 일쑤였다는 포로수용소는 거제원주민들에게 악랄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위풍당당하게 늠름한 해송들은 아픈 역사의 현장을 호위라도 하듯 검푸른 표정으로 병풍을 이루고 있었다. 우린 묻힌 역사의 현장을 배경으로 한 컷 추억을 담았다. 그 지역 문학회 회원들과의 교감의 시간이자 저녁 식사는 간단한 상견례로 시작됐다. 산지의 각종 메뉴로 푸짐한 저녁상은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산지 맛의 느낌에서일까 새로운 별미였다. 만남의 기쁨을 더 돈독키 위한 막간 시간의 여유, 그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다. 아쉬운 여운은 포장마차에서 잠깐, 주최 측 거제문학 배려로 거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첫날 일정은 그렇게 설렘 속에 접었다.(계속)
= 화려한 외출(2)
한산도 진두
10월 21일 아침 09:00시 경, 한산대첩격전지를 돌아보는 내내 불을 뿜는 포탄 속 포연에 갇힌 아우성이 느껴져 마음 숙연케 했다. 그 시대 아픔을 잠재우 듯 한산도는 은빛 반짝임으로 호수처럼 잔잔했다. 한산도 해변을 돌고 돌아 몽돌 해변에서 막간 휴식시간은 평화로웠다. 쪽빛 바다의 그 청청함은 온몸을 짭짜름하게 절이고 싶었다. 새로운 세상의 사색, 빠듯한 일정은 못내 아쉬웠다. 여운을 안고 추봉동 동방령에 위치한 예곡마을로 들어섰다. 120여 가구에 인구는 450여 명이라는 조용한 마을은 쪽빛 바다를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어촌이었다. 각색 지붕이 야트막한 집들은 한 폭 정물화였다. 언덕 위에는 작은 보건소가 있었다. 가정 집 같은 보건소는 지극히 소박했다. 눈길을 끄는 ‘추봉동 보건소’ 라는 질박한 간판은 빛바랜 멋에 더 정겨웠다.
마을 뒤 쪽 경사로로 올라가니 호수 같은 쪽빛 바다가 열두 폭 치맛자락처럼 펼쳐있다. 그 망망대해에 눈부신 은빛 물결은 옥색비단 자락이다. 잔잔히 흐르는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뙈기밭에는 마늘이 한 뼘 크기로 자라고 있었다. 은빛 반짝임을 가르는 한가로운 어선이며 바다 주위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아름드리 해송들이 도열 해 있었다. 병풍을 이룬 해송의 검푸른 빛 그 기상은 하늘을 뚫을 듯 위풍당당했다. 가슴 이 터질 듯한 그 늠름함의 정기는 허약한 정신에 비타민이었다.
용공포로수용소
한국 전쟁(6･25) 발발 당시 세워졌다는 수용소는 자리만 쓸쓸히 남아 있었다. 그 시대 상흔의 족적은 세월의 테에 묻히고 현장의 증거물인 돌담만이 덩그마니 서 있었다. 아픈 역사의 시각을 일깨워 주는 포로들의 손 때 묻은 돌담은 세월의 겹겹 테에도 한 톨 흐트러짐 없이 고스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월의 칼날에 깎이고 깎여 시퍼렇게 멍이 든 원한들은 그렇듯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반세기를 훌쩍 넘어가는 세월에도 흐트러짐 하나 없는 돌담 안에는 잡초들만 무성했다. 생기 잃은 잡초들 군데군데 섞여있는 억새무더기는 가을 속 햇살을 서럽게 맞고 있었다. 이 가을, 억새무더기가 흐느끼는 포로수용소에 유일한 흔적인 돌담, 핏빛 역사의 현장을 대변하는 돌담은 그렇듯 처연했다.
12:30분 경, 점심 식사는 석화탕이 나왔다. 별식에 반가웠다. 가마솥 같은 넓은 조리기에서 굽듯 끓인 석화탕 맛은 도심 속 맛과는 사뭇 달랐다. 새삼 느끼는 산지만의 참맛이었다. 왼손에는 면장갑을 끼고 오른손에는 창칼을 쥐고 석화 입을 짝 벌리면 우윳빛 국물에 잠긴 오동통한 굴 맛, 쪽빛 바다가 한 눈에 보이는 갯내음 속에서의 깊은 맛에 주위 의식 아랑곳 않고 칼슘 섭취를 위해 게걸스럽게 먹었다. 산지만의 특권의 맛은 그야말로 진미였다. 씹을수록 매력 있는 맛, 그날 그 맛의 여운은 입안 가득 단침이 고인다. 교감의 돈독을 위한 “위하여~” 술잔을 바라보는 눈빛들은 그렇듯 정겨웠다.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행복한 포만감을 안고 거제도로 달렸다. 한산도 가는 뱃길에 저 만치 해송 밭이 한 눈에 든다. 줄지은 해송 상가지 끝 여기저기에 한가로운 갈매기 때는 마치 활짝 핀 설화의 아름다운 진풍경이다.
청마 생가
02:10분 경, 청마 생가에 도착했다. 청마 스승님의 내년 100주기 탄신일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는 ‘동랑청마기념사업회’, 세월의 테가 두터운 돌담 울타리가 정겹다. 질박한 돌담을 에워 싼 호박 넝쿨과 박 넝쿨에는 호박과 박이 달려있었다. 서로 얽힌 넝쿨에는 몸을 덩그마니 들어낸 호박과 박이 누렇게 하얗게 맛을 들이고 있었다. 울타리 안 정면에는 둥그런 우물이 있었다. 거울 빛 물 속에는 가을 하늘이 빠져 있었다. 작은 장독대를 에워싼 울타리에는 팔뚝만한 수세미들이 주렁주렁 씨앗을 익히고 있었다. 목단 꽃이 그려진 사기요강이 눈길을 잡는 쪽마루 위 서까래에는 보릿짚으로 엮어 만든 여치집이 여러 개 매달려 있었다. 지극히 소박한 초가의 면모는 그 시대의 근면성이 엿보였다. 세월의 검버섯이 돋은 댑싸리 대문 건너편에는 청마 기념관 건축이 활발했다. 현대식 건축으로 마무리 작업이 한참인 청마 기념관은 완공을 앞두고 있다고 했다. 자못 기대가 크다.
자연 예술 랜드
섬 속 섬 명당자리에 위치한 ‘자연 예술 랜드, 자연이 빚은 갖가지 형상석과 석, 목부작의 품격 높은 조화미’, 세월의 테가 빚은 자연석에 인간의 혼을 가미한 사랑의 결정체, 다양한 면모의 표정, 세월의 테를 가름케 하는 상서롭고 경이로운 아기자기 거대한 작품이었다. 특히 눈길을 잡아 발걸음을 멈추게 한 작품, 삶의 길에 희･로･애･락의 물증, 밭과 종자를 표현한 인체의 상징 ‘남근석과 여근석’ 의 형체는 실로 실물 같았다. 그 흡사함은 볼수록 경이로웠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전시장 안 성석들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유형인 거작들의 아름다움에 전율적인 몸과 마음은 신음 같은 감탄사를 토하게 했다. 축소판 세상의 겸손한 시각, 과거사를 돌이키게 하는 현세를 응시케 하는 미래사를 내다보게 하는 대자연의 표현, 그 숭고한 표정은 미색의 극치였다. 머문 곳마다 상경한 정취에 마음 한 자락 내려놓고 집결지 거제포로수용소로 향했다.
1박 2일 코스의 일정
하늘이 바다를 안은 바다가 하늘을 안은 쪽빛 사랑, 호수 같은 잔잔한 바다 살결, 은빛 반짝임의 그 아름다운 속삭임, 눈부신 창공을 수놓는 무희들의 결 곱고 우아한 자태는 마치 승무의 춤사위를 연상케 했다. 마음 열어 몸담았던 값진 시간은 행간마다 새로운 의미를 부여케 했다. 눈으로 마음으로 먹는 산해진미의 그 성찬, 매사 좁은 소견에 양질의 견문을 넓힌 뜻 깊은 여정이었다. 거제도가 품고 있는 거대한 자연, 망망대해처럼 펼쳐진 대자연을 숙지하며 그윽한 사랑에 빠졌던 1박 2일 코스의 여정, 건강치 못한 삶 그릇에 모르핀이었다. 가을은 이렇듯 석양허리를 넘실거리는데 거제도 나무들 모습은 검버섯 한 점 없는 건강한 표정으로 검푸른 빛 관능미였다. 선이 고운 조경으로 아름다운 몸매에 등불처럼 수줍은 동백꽃 미소는 초경 빛깔이다. 늦가을 속 외롭게 핀 동백꽃은 볼수록 경이 그 자체였다.
한국전쟁문학세미나 참석 차, 최남단 거제문학협회와 최북단 동두천문학협회와의 상호 간 교류의 향연인 그 나래, 바다의 금강산이라는 해금강, 외도 해상농원, 한산도 진두, 추봉도 동반령, 용공포로수용소, 청마 생가, 마지막 코스 자연 예술 랜드를 돌아볼 때까지 일정 내내 맞춤의 날씨였다. 두루두루 감사한 마음이다. 석별의 시간이 다가 온다. 못내 아쉬운 마음 한 자락 뚝 떼어 몽돌 해변에 내려놓았다. 48시간의 감미는 색다른 세상의 그윽한 미로였다.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시종 일관 웅숭깊었던 거제문학협회 선생님들의 한결 같은 마음. 설렘 속에 새로운 인연으로 뜻 깊었던 거제도 기행, 다채로운 행사에 동참 차, 오랜 만의 외출은 그렇게 그렇듯 화려했었음을.
2007.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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