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버무리 떡
산책 길 가 밭둑에 논두렁에는 쑥이 많다. 한적한 들판에 돋아난 쑥은 맑은 햇살에 더 뽀얀 살결이 보기만 해도 그 향기가 느껴진다. 여기 저기 소복 소복한 쑥을 보니 문득 시이모님이 생각난다. 음식솜씨가 구수한 시이모님은 이른 봄이면 쑥버무리 떡을 자주 하신다. 시이모부님 생신 때는 쑥버무리 떡을 잊지 않고 꼭 챙기신다.
방앗간에서 찧어온 쌀가루를 고운 채에 내려 쌀가루보다 쑥을 더 많이 넣어 휘휘 버무려 질시루에 찐다. 쫀득쫀득 향긋한 쑥버무리 떡은 투병 중이신 이모부님이 유독 좋아하시는 떡이다. 봄이면 쑥버무리 떡을 쪄놓고 잊지 않고 전화를 주시는 시이모님, 가끔 찾아가 뵐 때면 그저 뭐든 먹이고 싶어 하시고 또 이것저것 한 아름 싸주시는 친정어머니 같은 분이다.
지척인 서울에 사시는데도 내 일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기를 매번 차일피일했었다. 밥 지을 쌀을 씻을 때마다 생각나는 시이모님, 지난 번 찾아 뵐 때 듬뿍 퍼 주신 찹쌀도 아직 많이 남았다. 바쁜 마음은 이번 주에는 미루던 방문을 서둘러야겠다고 계획만 세우다간 다시 주저앉기를 몇 번이었나. “이모, 맛있는 찹쌀 잘 먹고 있어요.” 입발림 전화로 안부만 여쭸다.
지병인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는 시이모님은 올 봄 거실에서 넘어지셔 허리를 다치셨다. 관절염 통증에도 힘드실 텐데 다치신 허리 수술 후 복대까지 착용하고 지내시니 그 고생 얼마나 크실까. 안 뵈도 뵌 듯 매사 불편하실 일상에 도움이 못 돼 그저 죄송한 마음뿐이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어머니처럼 보듬어주시는 시이모님, 그 큰 사랑에 언제나 부족한 마음은 불에 덴 아픔이다.
교육공무원이시던 시이모부님은 정년퇴직 후 몇 년째 신장투석으로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신장투석 선고를 받으신 뒤 말수가 적어지셨다는 시이모부님, 일주일에 두 서너 번씩 투석을 하신다는 시이모부님의 안색은 항상 창백하고 푸석하시다. 네 다섯 시간이 걸린다는 신장투석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힘드실까. 투석 차 내원하시는 날조차 찾아 뵐 수 없어 죄송한 마음 많이 아프다.
시이모님은 이모부님이 좋아하시는 쑥버무리 떡을 자주 해 드리기 위해 미리 챙겨두시는 봄 쑥, 이른 봄에는 연한 쑥을 삶아 덩이덩이 냉동실에 보관해 두신다. 하체가 냉한 부인병에 산 후 조리에 좋다는 여름 쑥, 오월 단오가 지나기 전 쑥은 시래기 묶음으로 말려 두신다. 하현달이 유난히 맑은 이 새벽, 잔잔한 웃음으로 반겨주시는 시이모님이 뵙고 싶다. 다음 장날 쑥을 한 아름 안고 찾아뵈어야겠다.
2007. 04.
원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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