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낼 수 없는 편지
- 찹쌀 부꾸미와 지연이
마음만 먹으면 자주 뵐 수 있는데 부끄러운 변명이지. 찾아뵙지 못하고 가끔 입발림 통화로 안부만 여쭙곤 했었지. 친구 첫제사 하루 전날, 그제야 송구스러운 통화로 어머님을 뵈었지. 반색을 하시는 어머님의 첫 말씀은 지연이 얘기였어. 제사 전날 밤, 우리 엄마가 좋아하시던 음식이라며 도우미 아줌마 도움도 거절하고 재료부터 만들기까지 찹쌀 부꾸미를 지연이 혼자 다 만들었다고 하셨어.
그 이튼 날 아침 여섯시, 정성들여 맛있게 부친 찹쌀 부꾸미를 그 작은 품에 꼭 안고 오빠랑 아빠랑 엄마 산소에 다녀왔다는 시어머님의 귀뜸이셨어. 약국으로 출근하는 아빠 시중이나 가끔 주말을 기해 다녀가는 오빠 시중에도 손색없는 지연이는 벽에 걸린 엄마 영정에 “다녀올게요. 엄마, 다녀왔어요. 엄마” 꼭 꼭 인사도 잊지 않는다며 잔잔히 떨리는 어머님의 목소리는 촉촉이 젖어 있었어.
어린양만 보이던 어린 손녀 손자가 목울대까지 차오르는 슬픔을 그렇듯 의연하게 잘 견뎌내는 모습을 지켜보려니 의젓해진 모습이 기특하고도 대견하면서도 가슴이 아리시다는 그 상기된 목소리에는 애석한 며느리에 대한 그리움이 흠뻑 배어 있었어. 사진가이신 시아버님은 그 일에 여전하시고, 지연이 아빠는 봄부터 약국 근교에 위치한 주말농장에서 신종 건강야채를 키운다고 하셨어.
엄마투병의 아픔으로 선망하던 대학 진학을 놓친 지연이는 그 엄청난 슬픔을 겪으면서도 시립 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했지. 성환이는 국방의무를 구청근무로 무난히 마치고 복학한 포항 공대 기숙사에서 남은 학업에 전념하고 있어. 매달 한 번 주말을 기해 밤 기차로 다녀간다는 성환이, 서로 아껴주는 오누이 마음이 얼마나 갸륵한지 내 마음을 더 적시게 했어.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수다로 우린 좀 늦은 점심으로 회전 초밥을 맛있게 먹었지. 고교생 공부를 도와준다는 지연이는 월급을 탔다면서 극구 차를 사고 싶다고 해 명상곡이 그윽한 전통찻집에서 은은한 찻잔을 기울이며 간만의 여유를 마냥 누렸지. 아이스크림을 요리조리 핥아먹으며 환한 미소로 얘기꽃을 피우는 밝은 표정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숨은 그늘이 엿보여 많이 가여웠어.
며칠 전에 지연이와 성환이와 볼거리 많은 인사동 거리를 거닐며 데이트를 했지. 오랜 만에 만난 남매는 마냥 어린양만 피우던 응석받이가 아니었어. 아주 의젓하고 예의 바른 자세가 볼수록 예쁘고 늠름했어. 며칠을 망설 망설이다 어렵게 신청한 데이트를 거절하지 않고 기꺼이 응해 준 고마운 지연이 성환이에게 멋스러운 가방을 선물했어. 좋아하는 표정도 왜 그리 안쓰러운지.
실핏줄 같은 한 가닥 희망도 매몰차게 저버린 그날, 산더미 같은 슬픔에 갇혀 연민에 젖었던 지난 해 오늘, 그 엄청난 충격으로 온 가족들은 몇 날 며칠을 몽유병 환자였다 해도 과언이 아닐 거야. 다행인 것은 차차 현실에 적응하고 있다는 지연이 성환이 아픈 소식을 들을 때면 이메일로 문자로 통화로만 만나곤 했었지. 오늘 상면은 참 오랜 만의 자리야. 밝고 명랑해진 표정에도 자꾸 가엾기만 해.
평소에 엄마가 좋아했다는 찹쌀 부꾸미를 엄마 산소 앞 지석 위에 차려놓으며 울먹이는 지연이가 눈에 밟히곤 했어. 생각할수록 애석한 친구야, 그새 하늘 나이 일주기가 지났구나. 우리가 함께 한 소중한 시간조각을 상기하며 사진첩에 마음 묻으니 환청으로 착시로 미소 띤 목소리가 귓가에 눈가에 촉촉하게 스며드는 이 새벽, 보낼 수 없는 아린 마음은 지면만 채우며 멍 하니 별빛만 헤이고 있어. 저 쪽 별일까 이 쪽 별일까......,
2007. 07. 31.
白蓮 원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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