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보내준 칡뿌리 즙/ 임만빈
"올 초 폐암 재발해 수술 받은 뒤 九旬 노모 아실까 마음 졸였는데 추석 귀성길 무사히 넘어가 어릴 적 ‘간이 부었다’는 진단받고 ‘너희들 두고 어떻게 눈감느냐’며 울던 어머니와 막막한 심정 떠올라 칡뿌리 즙 보내주신 어머니께 ‘그것 먹고 좋아졌다’며 자랑하고파..."
이번 추석 귀성길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구순(九旬) 노모께서 내 건강상태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으실까봐 서였다.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동안, 어머니는 옆에서 하나하나 정검 하셨다. 조금이라도 예(禮)에 어긋나면 호통을 치셨다. 차례가 끝나자 어머니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내 얼굴이 건강해 보였던지 별다른 걱정 말씀 없이 지나가셨다.
지난 성에는 고향에 가지 못했었다. 큰 수술을 받아서였다. 재발한 오른쪽 폐를 수술받고 새로 생긴 왼쪽 것도 수술했다. 명색이 뇌종양을 다루는 전문의인대, 자기 몸의 이상도 눈치 채지 못할 만큼 무감각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어머니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무언가 낌새를 챈 듯했다. 아내에게 전화로 나의 근황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병원일이 바빠서 못 갔다는 핑계를 댔지만 쉽게 수화기를 놓지 않으셨다. 그래서 수술 후 얼마간 회복되었을 때 고향에 갔다. 괜찮다는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여 드리기 위해서였지만, 긴장되고 걱정되었다.
수술 받은 사실을 어머니가 알면 많이 놀라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머니에게 암이나 수술은 생명의 중단을 의미한다. 자동차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마루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셨다. 허리가 심하게 굽어 자라기 고개를 쳐들고 다리를 휘저으며 달려오는 듯했다. 주름진 눈가는 물기로 짓물러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슬펐다. 어머니는 손을 뻗어 내 얼굴을 이리저리 쓰다듬었다. 뺨을 쓰다듬고 귀를 만져보고 목을 더듬었다.
“얼굴이 안돼 보인다. 어디 불편하냐?”
“불편하긴요? 괜찮아요. 감기가 조금 들었어요?
저녁밥은 어머니가 준비해 놓고 있었다. 아내가 급히 부엌에 들어가 저녁상을 차렸다.
“얘야, 네가 좋아하는 어리굴젓하고 갈치를 샀다. 많이 먹어라. 몸이 허할 때는 그저 잘 먹 는 것이 최고다.”
밤에 기침을 많이 했다. 참아도 기침이 났다. 아침이 되자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네가 이상한 것 아니냐? 밤에 그렇게 많이 기침을 하니 말이다.”
“아니에요. 괜챃다니까요.”
어머니는 찜찜한 듯 애매한 표정을 지으셨다. 표정에 금방 윗옷을 들춰 속 시원하게 내 몸을 보고 싶은 궁금증이 들어 있었다. 그렇지만 며느리가 옆에 있었다. 아들 몸은 이미 며느리의 것이 아니던가.
“그려, 너는 원체 거짓말을 안 하니까 네 말을 믿는다.”
한참 만에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잔병치레를 자주 하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 병원에 갔다가 돌아오셨다. 살림방 디딤돌 위에 풀썩 주저앉더니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우리 꼬맹이들을 불러 모으셨다.
“얘들아, 오늘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니 원장님이 내 간(肝)이 부었다고 하시더라. 약을 지어 주시던데 먹는다고 해도 얼마 못 살 것 같다. 어린 너희들을 두고 어떻게 눈을 감겠느냐?”
어머니 두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형제들은 그때 간이 부으면 죽는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같이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후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았고, 돌아가실 것으로 믿었던 우리는 그 사실을 곧 잊어버리고 정신없이 지금까지 살아왔다.
내가 폐암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어머니가 수술 받은 폐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간이 부어 곧 돌아가실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들의 심정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수술 직후 고향에 다녀온 뒤,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얘야, 칡뿌리 즙을 택배로 보냈다. 밥맛도 돌아오고 건강에 아주 좋단다.”
“아이고 그걸 왜 보내세요. 그렇잖아도 몸에 좋다는 것을 이것저것 많이 먹고 있는데,”
결국 어머니가 보내준 칡뿌리 즙을 몇 봉지 먹었다. 감염이 걱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자식사랑의 즙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양팔을 흔들며 자라 같은 모습으로 저의 오리(五里) 길을 한걸음에 달려가 그 즙을 준비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어머니는 이번 추석에 건강한 내 모습을 보고 혹시 아들이 큰 병에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서 벗어나신 것 같다. 당신이 보내준 칡뿌리 즙을 마시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어머니가 만약
“보내준 칡뿌리 즙을 다 마셨냐고” 물으면
“그럼요. 그것 먹고 이렇게 건강해졌잖아요.” 라고
자연스레 선의(善意)의 거짓말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글쓴이 : 계명대 동신의료원 신경외과 임만빈 교수님 글입니다.**
발 췌 : 신문기사
옮긴이 : 원화윤
목메도록 아픈 글!! 모자간의 피차 지극정성인 극진한 사랑!!
위 글 속 노모이신 어머님께서도 절절한 사연으로 세인들의 심금을
울리셨을 아드님께서도 부디 건강한 삶이시길 두 손 모은 마음으로 비는 바입니다.
오, 어머니!!
어머니는 어머니라는 단어만으로도
자나 깨나 눈에 가득 담겨 아릿한 가슴팍에 흥건토록 고이는 그리움멍울입니다!!
2011년. 10월 01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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