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밑 장바닥
白蓮 원화윤
구정 명절을 며칠 앞 둔 세 밑, 과일 가게마다 포장된 갖가지 과일상자뭉치가 비닐에 싸여 작은 컨테이너 박스처럼 쌓여있다. 세 밑 장바닥은 장날이 아니어도 며칠을 장날처럼 흥건한 사람냄새에 시끌벅적하다. 두부살결이 파르스름한 검정콩으로 만든 두부며 비닐봉지 속에서 송골송골 땀을 흘리고 있는 굵직한 가래떡이며 평소 장날에 만나는 이름들이지만 명절 전에 만나니 더 정겹게 다가온다.
명절 제사상 차림거리들이 크고 작은 용기마다 수북수북하게 담겨있다. 빈대떡 거리인 곱게 갈은 녹두, 불려서 기피만 낸 통 녹두, 삼색 나물거리, 갖가지 전거리 단내가 풍기는 대추 밤 각종 과일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가지 수다. 각색으로 푸짐한 구정명절 제수거리들이 그득한 땅바닥 좌판을 구석구석 돌아보노라니 어릴 적 어머니 아버지가 명절 제사상 준비에 바쁘시던 모습이 흑백 필름으로 연신 돌아간다.
집 안 일이나 집 밖 일이나 매사 자상하신 아버지는 어머니 일은 많이 도와주시던 애처가였다. 아버지는 병약한 어머니의 손발이었다. 우리 집안의 집사였다. 두부콩물을 끓일 때에도 감주와 조청을 달일 때에도 떡국 국물 사골을 끓일 때에도 불을 때는 일도 아버지가 도맡아 하셨다. 녹두나 두부콩 가는 맷돌작업도 언제나 아버지 몫이었다. 어머니는 틈틈이 준비한 녹두부침개와 갖가지 전들과 산적도 명절 전날 오후에 다 부쳐놓으셨다.
만두소가 놋 양품에 수북이 담겨있다. 언니들은 미리 치대어 놓은 밀가루 반죽에 밀가루를 솔솔 뿌려가며 얄팍하게 밀어 주전자뚜껑으로 꼭 찍어 만두피를 떼어낸다. 저녁 늦도록 빚은 만두를 두레밥상에 한가득 담아 밖에 내놓아 아침까지 얼린다. 앙증한 크기의 동글동글한 만두모습이 눈에 선하다. 적당히 굳은 가래떡 썰기도 이슥한 밤까지 아버지 몫이었다. 제사 때면 아버지가 깎는 밤은 납대대한 모양이 참 예뻤다.
당신이 깎으신 밤처럼 일상의 행동거지가 반듯하시던 아버지, 병약하신 어머니 병시중에 자나 깨나 노심초사하시며 아가 보살피듯 손끝에서 놓질 않으셨다. 가여운 아버지 팔자를 닮았을까. 유감스럽게도 긴긴 세월 지아비 병시중에 창살 없는 감옥의 삶이었다. 때때로 힘들 때에는 어머니 건강지킴이로 고뇌의 삶을 사신 아버지의 노고를 되새기며 아버지 삶을 보상해드리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며 위로하곤 했다.
명절을 며칠 앞 둔 날 이른 오후, 사람 발길 북적대는 세 밑 장바닥을 천천히 돌아보노라니 명절에 제사상 차림에 바쁘시던 부모님 모습이 짠한 가슴에 새겨진다. 그렁그렁 멍울져 젖어든다. 동글갸름한 두상의 쪽머리에 한복 맵시가 단아하시던 어머니, 돋보이던 콧수염을 고수하시던 아버지가 회억 줄 끈에 매달려 한없이 뵙고 싶다. 안쓰러운 그리움이 뻐근한 목울대를 치민다. 부모님 모습 사무치는 구정 명절을 목전에 두니…,
2010.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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