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작노트 / 도이 김재권
무심코 넘기어 본 습작노트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도라지 2박스
표고버섯 3박스
소주 3박스
맥주 2박스
닭 50마리
다음 주 월요일에 주문 요함.
-시인의 산채마을-
아, 아 그 많은 시어詩語는 다 어디 가고
짤막하니 주문서만 남았을까.
버거운 울타리에서
지친 모습 또한 역력하다.
뜬구름이던 시계詩界를 떠나
현실에 귀의하니
시상詩想보다 전상錢想이 앞을 흐린다.
이런 게 사는 것이라
이런 게 사는 것이라 했나.
-월간「문학저널」2006년 4월호 ‘특집 상황문학 문인회’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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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나물 애가 / 도이 김재권
1. 씀바귀
시인의 산채마을, 이걸 계속 먹어야 하나 뱉어야 하나, 기왕에 먹었으니 삭혀야 하나 토해야 하나. 생각할수록 입맛은 쓴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갈팡질팡 설왕설래. 분명 우리 몫은 아닐진대, 그러나 어찌하랴! 이제 다시 울지 않으려면 되 물릴 수는 없는 일.
2. 냉이
냉이 한 소쿠리 다듬는데 가슴부터 냉하다. 풋풋한 향내는 좋기만 한데 왜 이리 서글픈지! 지친 손은 냉이뿌리를 솎아내고, 병든 마음은 가슴앓이로 저리 울고 있구나.
3. 달래
달래야, 달래야, 다듬어지는 순간마다 해맑아 좋겠지마는, 가여운 사람의 손을 보는 마음은 기가 막히는구나. 조금만 만지려 해도 아파하니, 어찌 달래보지도 못하는 마음, 그래 가슴만 더 미어지는구나.
4. 돌나물
돌나물을 다듬다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어. 어긋난 라이프사이클! 그 괴리! 아, 아 이제 돌나물은 돌나물이 아니다. 회한의 눈물이 방울방울 매달린 눈물의 나물이다.
5. 만가닥버섯
불과 한 달 새 망가진 고운 손, 그래도 다듬어야만 하는 버섯. 가닥이 많아 만가닥인가, 만 가지 사연 있어 만가닥인가. 다듬느니 버섯이건만 생각 또한 만 가닥이니, 북받치는 일패도지一敗塗地! 절대빈자絶對貧者! 못났음에 어찌 속죄하리.
-월간「문학저널」2006년 4월호 ‘특집 상황문학 문인회’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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