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름띠 닦아내며 마음을 씻자
- 태안반도 기름 방제 자원봉사자들에게
鄭 木 日 (수필가)
이제 우리가 바다를 닦아내고 씻어내야 할 때가 왔습니다. 기름 범벅이 된 검은 바닷물과 갯벌, 바위와 모래밭을 닦아내야 합니다. 갯벌이 기름벌이 되자 조개, 게, 낙지들이 숨을 쉬지 못하고 기름을 둘러쓰고 죽어갑니다.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가창오리들이 새까만 기름을 뒤집어 쓴 채 울부짖습니다.
푸르고 맑은 바다는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철새의 아름다운 군무 속에 황금빛으로 하루를 장식하는 해넘이의 장관도 볼 수 없습니다. 낙원은 어느새 기름 냄새가 코를 찌르는 죽음의 암흑으로 변하였습니다.
텔레비전으로 이런 광경을 본 우리는 그냥 눈뜨고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노인들로부터 초등학교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바다의 기름띠와 해안의 기름 덩이를 제거하기 위해 태안반도로 몰려들었습니다.
2007년 12월 7일 거센 풍랑 속에 골리앗 같은 크레인을 실은 바지락선이 지나가다가 크레인이 부셔져 떠내려가면서 떠 있던 정유선의 기름 탱크를 찢어, 1만 9천 톤의 기름이 바다로 쏟아졌습니다. 태안반도의 400리길 해안선을 먹빛으로 물들여버렸습니다.
하늘이 주신 맑고 아름다운 바다는 단숨에 기름덩이의 죽음 바다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청정바다가 죽음의 바다로 변하자, 태안 바닷가 방제작업을 위해 전국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사고 발생이후 한 달 만에 50만 명이 넘는 봉사자들이 현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노인들에서부터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봉사자들은 태안반도 해안선에서 인간 띠를 만들었습니다. 하얀 방제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고 가져온 타올, 메리야스, 기저귀, 홑이불, 면옷들로 기름을 닦아내었습니다. 바위와 돌 하나씩 구석구석에 묻은 기름을 제거해 나갔습니다. 돌 틈새, 바위 틈새로 끼어든 기름 자국을 일일이 손으로 닦아냈습니다. 면으로 된 부드러운 속옷으로 기름을 닦아내고, 날마다 얼굴을 닦던 타올로 바위에 묻은 기름 덩이를 닦아냈습니다. 달콤한 잠자리를 마련해주던 헌 침대 시트로 검게 물든 바다의 기름을 적셔 내었습니다. 어린이들은 손바닥만 한 것에서부터, 어른들은 제각기 가져온 면 종류의 방제 물로 바다를 메우다시피 하고 갯바위와 돌 하나에 이르기까지 흰 천으로 감싸고 마음으로 눈물의 기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하느님! 제발 바다를 다시 푸르게 만들어 주십시오!’
‘하느님! 제발 갯벌이 다시 살아나게 하고,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게 해주십시오.’
봉사자들은 얼굴을 닦던 타올, 잠을 청하던 홑이불, 아기에게 채워주던 귀저기, 입었던 속옷으로 정성껏 바다의 기름띠와 해안의 기름 덩이를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죽음의 재앙을 걷어내기 위해 모두 힘을 합쳤습니다.
아, 바닷가의 바위와 돌 하나씩이 이처럼 귀하고 소중한 줄 몰랐습니다. 모래알 하나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바위와 돌들을 어루만지고, 쓰다듬고, 닦아주고 씻어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번 서해 바다 기름 유출사고는 인간이 일으킨 문명 재앙이었습니다. 안전에 대한 사전 예방 대책의 부족과 방심이 재앙을 자초하였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 인한 재해를 복구하기 위해선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연생태계가 완전 복구되기까진 10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어부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청정바다는 굴, 우렁쉥이, 김 양식장이었고 어부들의 생활터전이었습니다.
인간의 방종과 방심으로 일어난 재앙,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만반의 대비와 예방대책을 수립해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으로 하늘이 주신 천혜의 바다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손으로 바다와 해안과 갯벌을 씻어내고 닦아내야 합니다. 본래의 모습으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타올 한 장씩으로 면 옷 한 가지씩으로 바다 한 뼘씩의 오물을 닦아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거대한 인간 띠를 만들어 마음과 정성을 바쳐 기도와 참회로서 검은 기름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봉사자들은 미래와 꿈이 담긴 생명의 기도를 드리면서 바다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한 번의 실수로만 여길 수 없는 일입니다. 편리, 집착, 이기, 방종을 일삼아온 우리 삶에 대한 경고입니다. 자연 경시에 대한 형벌입니다.
돌 하나씩을 닦아내면서 우리의 마음을 닦아내어야 합니다. 이기와 탐욕으로 물든 마음의 때와 얼룩을 지우고,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사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자연을 가꿀 책임이 인간에게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태안반도를 휩쓴 기름띠는 파도를 타고 먼 해안까지 밀려가고 있습니다. 해조음을 실어오던 푸른 파도는 기름 파도가 되어 절망과 탄식을 쏟아놓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대로 물러서거나 바라만 볼 수 없습니다. 전 국민들이 탄식하며 바다를 살려야 한다고 힘을 모았습니다. 끼리끼리 자원 봉사자단을 모아 현장으로 떠나고, 갈 형편이 못된 사람들은 성금과 방제물품들을 모아 보냈습니다.
인간의 모든 배설물과 더러움은 바다가 씻어주지만, 인간이 일으킨 바다 오염은 사람들이 닦아내고 씻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태안 바다를 씻어내면서 갯가의 바위와 갯벌을 닦아내면서 우리는 눈물로 마음의 거울을 닦아내야 합니다. 세상은 자신만을 위한 곳이 아닌 모든 생명체의 삶의 터전입니다. 맑음과 조화로 공생공영의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루 빨리 서해가 청정 바다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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